지속되는 연결을 위한 작고 다정한 기술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하던 그녀에게서
오늘은 왠지 모를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뾰루퉁한 표정, 시큰둥한 반응.
남자는 아리송할 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나온 지도 수십 년이 지났건만
그 간극은 아직도 쉽사리 메워지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익숙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 전혀 다른 사전을 품고 있다.
문제는, 서로 그 사전을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데 있다.
여자에게 ‘뾰루퉁함’은 사랑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유 없는 뾰루퉁은 없다.
분명 어떤 작은 트리거가 있었고,
지금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살아 있는지
오늘도 같은 감정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사소한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번은 유명한 여성 가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코미디언 남편과 냉면을 먹고 있었는데,
자신이 아직 먹는 중인데도 남편이 먼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 순간,
“음식을 먹는 데 기다려주지 않는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일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냉면 사건 하나로 모든 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 전에도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들’이 조용히, 묵직하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연애 초반, 우리는 서로에게 세심한 안테나를 켠다.
상대의 말투, 표정, 템포에 집중하고,
미세한 기류도 감지하며 끊임없이 조율한다.
하지만 관계가 익숙해지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 안테나는 하나둘 접히기 시작한다.
당연함이라는 이름 아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거니 하며 서로의 감도를 낮춘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소통은 종종 와이파이 같다.
늘 켜져 있고, 말없이 작동하며, 당연히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와이파이도 가끔 끊긴다.
신호가 약해졌을 때
그걸 가장 먼저 감지하는 쪽은 대개 여자다.
그래서 여자는 묻는다.
“지금... 우리 연결 상태, 괜찮나요?”
사랑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기술이 필요하다.
서로의 언어 체계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한쪽은 ‘신호 없음’이라 뜨고,
다른 한쪽은 “잘 되는데 왜?”라며 당황한다.
이건 애정의 농도가 다른 게 아니라,
애정의 언어가 다른 것이다.
‘진짜 사랑이면 말 안 해도 안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틀렸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특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랑은,
매일 자동 번역기를 조금씩 수정해 가는 일이다.
남자가 자신의 어깨가 다 젖어도 여자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준다면
그건 ‘사랑해’라는 말로 번역해줘야 하고,
여자가 갑자기 뾰루퉁해진다면
그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통신 점검 중’임을 이해해야 한다.
사랑은 매일 묻고, 매일 답하는 감정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싱거워질 것 같지만,
사랑은 그 반복 속에서 더 깊어진다.
말이 줄어드는 걸 편안함이라 착각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둘 사이에 조용한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막는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사소하지만 다정한 반복이다.
사랑은 완벽한 연결이 아니라,
끊어질 때마다 다시 찾는 끈이다.
본문 사진: 사진: Unsplash의Everton 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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