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 그 유혹의 이름

1956년 영화 <자유부인>을 보고

by 루이보스J

1956년 한국 고전 영화 <자유부인> 을 보았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원본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해서 유투브 채널로 공개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1953년에 전쟁이 끝났다고 배웠지만, 영화 속 서울은 폐허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눈앞에 펼쳐진 건 고급 향수와 양장 투피스, 카페와 레스토랑, 눈이 번쩍 뜨이는 댄스홀의 불빛과 현란한 춤사위다. 한국고전영화 자유부인(1956) 저세상 미친 텐션 50년대 파워댄서


도입부와 엔딩을 장식하는 고엽(Autumn Leaves)의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도 인상적이다. 전쟁이 끝난 지 고작 3년, 그 짧은 시간 안에 이토록 소비적이고 세련된 풍경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한형모 감독 <자유부인> (1956)

영화는 당시 중산층 여성들이 누리던 도시적 삶의 양식을 카메라에 담는다. 외제 화장품, 핸드백, 카페 문화, 남편이 아닌 '댄스 파트너'와 함께 가는 사교계의 댄스파티까지.


1950년대 서울이 이랬다고?


당혹스럽지만, 묘하게 익숙하다. 왜일까.

아마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로운가?'


주인공 선영은 대학교수의 아내이자, 조신한 한복차림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가사에 성실하고, 아들 경수에게는 살뜰한 엄마이며, 남편에게는 다소곳한 아내다. 그러나 양품점에서 일을 시작하며 그녀의 세계는 결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직업을 갖고 사회와 접촉하면서, 선영은 더 이상 ‘조신한 아내’의 프레임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처음엔 생계를 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점차 그녀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어떤 감각에 눈을 뜨게 된다.


영화 속 대사도 당대 기준으로는 꽤나 파격적이다.


“남편의 폭정에서 벗어나려면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야 해.”


“남편과 추는 춤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


1956년에 이 대사들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도발적이다.


선영의 ‘자유’는 단순한 외출이나 쇼핑의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욕망할 수 있는 자유이며, 그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다. 순종과 절제, 가족 중심의 여성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짓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어떤 자유도 완전히 손에 넣지 못한다. 욕망의 끝에서 그녀가 도달한 곳은 다시 ‘가정’이라는 경계선이다. 이는 1950년대라는 시대의 한계를 반영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자유부인’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


-조신한 아내, 헌신적인 엄마라는 고정된 역할로부터의 자유

-가부장제의 질서로부터의 자유

-욕망할 수 있는 자유

-소비하고 표현할 자유

-심지어 타락할 자유조차 선택할 수 있는 자유



7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되었고, 경제력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올바른 여자’,

‘지혜로운 아내’, ‘

‘헌신적인 엄마’라는 기준에 부합하는가를 끊임없이 점검당한다.


욕망을 드러내면 이기적이라 낙인찍히고, 소비를 즐기면 허영스럽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유부인>은 단지 과거의 풍속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반복 재생되는 질문이다.

1956년의 선영이 갈망했던 그 자유는

2025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문 사진: UnsplashRowan Heuvel


#영화#고전#한국고전영화#자유부인#정비석소설#1950년대#자유#가부장제#독립#여성#주체#경제적독립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은 와이파이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