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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올것이다

(필사) <파과>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의 의미

by 루이보스J

"언젠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중략)

"그리고 어쩌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알기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네가 발로 치고 짖어대도

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도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그녀는 자신이 무용을 데려와 이름을 지어줬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구나 선뜻 데려가고 싶어 할 만큼 작거나 귀엽지 않았다는 기억만은 남아있다.

아니, 기억보다는 지금의 외모로 보아 그때라고 썩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소급에서 비롯된 사고로,

어쩌면 아무도 데려갈 것처럼 생기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집어왔을 것인데,

당시 정황의 세부를 되살리지는 못하나 자신이 살아있는 걸 주워왔다는 데 대한 당혹감,

살아있는 것에 마음이 움직여 충동만으로 예정에 없던 행동을 한 데 대한 낭패감만은 선명하다.


무용에게 수시로 일깨우나, 그 두 가지 경우 모두 비교적 높은 확률로 가능성이 있음에도 실제로 발생하기 전까지 그녀는 변함없이 같은 인사를 할 것이다.


다녀왔다. 잘 잤니. 다녀오마.


하루에 열 마디도 채 건너지 않고 대부분 그저 응시할 따름이지만 역시 이렇게라도 말할 것이다.


아무 데나 싸지 말고 욕실에. 먹으렴. 마셔라. 산책 갔다 올까. 짖지 마라. 수상한 사람이 아니다. 가스 검침이다. 택배 기사야. 네 밥 배달 온 거라고.


그녀가 무용에게 건네는 말들은 대개 이렇게 십여 종류 안팎으로 한정되어 있다. 집 안에서 자신 말고도 살아있는 누군가가 존재해서 그것에게 인사를 하게 될 줄은,


집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또는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봐 초초해질 줄은.


자기 인생에서 그런 날이 다시 올 줄은. 무용을 데려오기 전에는 몰랐다.


(중략)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가벼운 인사일지라도 언제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곧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마는 일상이니까.

그녀는 무용의 머리를 서너 번 쓸어내리며 한 음절씩 확고하게 말한다.


"다녀. 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올것이다.

손발이 움직이는 한은, 언젠가 이 녀석이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그 존재를 인식조처 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그녀는 현관문을 닫는다.

표지 사진: UnsplashKevin Gr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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