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방정식: ‘충분하다’는 감각에 대하여

<돈의 방정식>, 부(富)는 ‘가진 것에서 ’원하는 것‘을 뺀 것이다

by 루이보스J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실루엣을 마주쳤다. 5분 거리에 살면서도 각자의 분주함에 밀려 얼굴 보기 힘들었던, 나의 유일한 조카다. 15년 전, 오빠의 결혼 후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아기’라는 존재가 찾아왔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한다. 꼬물거리던 그 작은 생명체는 어느덧 훌쩍 자라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세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습관처럼 지갑을 열었다. 빳빳한 현금 5만 원권 한 장을 꺼내며 덧붙였다.


“고모한테 지금 5만 원뿐이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


하지만 돌아온 조카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이는 손을 내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저 돈 필요 없어요. 엄마한테 용돈 받아요, 충분해요.”


한 달 용돈이 2만 원이라는 아이. 5만 원이면 두 달 치가 넘는 큰돈일 텐데, 조카는 미련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이 떠올랐다. 명절에 친척들이 용돈을 줘도 식탁 위에 대충 올려두고 며칠째 쳐다보지도 않던 모습들. 나는 그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돈의 가치를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것은 결핍의 부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만족 지점을 아는 선명한 태도였다는 것을.


만족을 모르는 숫자, 만족을 아는 마음

요즘 읽고 있는 모건 하우절의 책 <돈의 방정식(The Art of Spending Money)>에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대목이 나온다.

“물건의 가치는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The value of anything is its ability to help you live the life you want."


우리는 흔히 돈이 많을수록, 소비의 단위가 커질수록 행복의 크기도 비례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하우절은 말한다. 소비의 기술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골대(Goalpost)를 옮기지 않는 것’이라고.


남들과 비교하며 더 큰 액수를 갈구하는 순간, 돈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트레드밀이 된다.


중학생 조카에게 5만 원은 객관적으로 큰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미 엄마에게 받는 2만 원이라는 ‘충분한’ 기준이 있었다. 그 아이에게 돈의 가치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해 주는 만큼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돈의 액수가 아닌 ‘사용의 예술’

돈이 없어도 행복했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때 우리가 행복했던 이유는 돈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관계’와 ‘충만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절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부자로 ‘남는’ 것, 그리고 그 부를 ‘사용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카의 거절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돈을 위해 삶을 소모하고 있는가?’


내가 조카에게 건네려 했던 5만 원은 어쩌면 아이를 향한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한 고모의 미안함을 덮으려 했던 편리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돈보다 귀한 ‘충분함’이라는 감각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돈으로 채워주려 했던 것이다.


나만의 방정식을 찾아서

내가 원하는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우절의 말처럼 물건의 가치, 그리고 돈의 가치는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카의 “충분해요”라는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끊임없이 커지는 욕망의 방정식을 풀기보다, 내 삶의 크기에 딱 맞는 나만의 방정식을 찾아야 할 때다.


돈은 결코 다가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는, 곧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표지사진: Unsplash Adam N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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