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나만 남았을 때 시작되는 이야기
강남 한복판, 전철역에서 불과 1분 거리인 역세권 영화관임에도 상영관 안의 관객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다. 아무리 OTT 스트리밍이 대세라지만, 텅 빈 좌석들을 마주하니 이러다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마저 고개를 들었다.
물론 평일 오전이라는 시간대와, 천만 관객을 노리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대중의 시선에서 조금 비껴간 영화 <햄넷>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단 세 명의 관객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 호사인가를.
혼자 극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다. ‘세 가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1. 영화와 나, 온전한 '일대일'의 대면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면 나의 감각 중 일부는 반드시 옆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데 할애된다. 웃음 포인트에서 같이 웃는지, 지루해하지는 않는지 신경 쓰다 보면 영화와의 밀도는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혼자일 때 영화는 오직 나에게만 말을 건다.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과 소리는 다른 누구도 거치지 않고 내 감각에 직접 와닿으며, 그 순간 영화와 나는 완전한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다.
2. 취향의 합의가 필요없는 시간
영화 취향은 저마다 다르다. 머리를 비우고 즐기는 오락 영화를 선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즐기는 이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먼 영화를 고를 때마다 동행의 눈치를 보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부담을 느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혼자 영화를 보면 영화가 좋든, 별로이든 아무래도 좋다.
3. 일상과 단절된 짧은 ‘고립'의 미학
스마트폰 알람과 메시지에서 잠시도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서, 극장의 암전은 자발적 고립을 선사한다. 특히 관객이 적은 평일 오전의 극장은 고요한 명상실과 같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적막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일상의 소음에서 잠시 로그아웃한다. 이 120분간의 고립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에너지를 채워주는, 무엇보다 값비싼 정서적 사치다.
<햄넷>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조명이 켜졌을 때, 나는 극장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세계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붐비지 않는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일. 그것은 어쩌면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정적인 사치일 지도 모른다.
표지사진: Unsplash_Jonatan Mo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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