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 리뷰,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 <햄릿>의 이 유명한 독백 뒤에는
사실 더 시린 대사가 이어진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마음속으로 참는 것이 고귀한가,
아니면 고난의 바다에 맞서 싸워
그것을 끝내는 것이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뿐 아닌가.
잠듦으로써 마음의 고통과 육신이 겪는
천만 가지 고뇌를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간절히 바라는
최상의 결말이 아닌가.”
(뒤에 이어지는 대사도 명문이다)
https://brunch.co.kr/@f82067b2d4274ec/102
도대체 어떤 생의 파동을 겪었기에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라 노래하며 이토록 지독한 실존의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까.
영화 <햄넷>은 그가 숨겨두었던
슬픈 수수께끼를 가만히 들려준다.
클로이 자오, 신비로운 응시의 힘
몇 년 전 <노매드랜드>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감독 클로이 자오
자연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깊은 온기가 있다.
최근 NYT와의 인터뷰를 들으며
그 묘한 ‘신비함’을 또한번 느꼈다.
그 매력에 이끌려
<햄넷>을 상영중인 극장을 혼자 찾았다.
카메라는 인간의 운명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그저 자연의 섭리처럼 묵묵히 따라간다.
영화 속 아녜스(제시. 버클리)는 마치 숲의 정령처럼
신비한 생명력을 머금고 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윌리엄(폴 메스칼)의 시간은
푸른 숲과 흙냄새로 가득하다.
숲에서 아이를 낳고 자연의 순리대로
길러내는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 평화로운 빛줄기 사이로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스며든다.
‘햄넷’의 상실이 ‘햄릿’의 불멸이 되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Hamnet)은 고작 열 한살의 나이에 흑사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참척(慘慽)의 고통. 그 절망적인 상실 이후, 셰익스피어의 펜촉은 비로소 비극의 심연을 향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유쾌한 희극에 몰두하던 그는, 아들을 잃은 후 비로소 <햄릿>을 집필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뿐 아닌가”
라는 처절한 독백은 어쩌면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의 통곡이자, 가혹한 운명에 맞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아들의 이름 ‘햄넷’과 비극의 주인공 ‘햄릿’ 사이의 기묘한 닮은꼴은, 죽음을 예술로 부활시키려는 한 남자의 절박한 애도 방식이었을 것이다.
연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 무거운 서사를 너무나 유려하고 신비롭게 빚어냈다. ‘연출’이란 단순히 스토리를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공백을 이미지와 소리로 채우는 본업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영화 <햄넷>은 한 천재 작가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상실이라는 구멍 난 가슴을 안고도 기어이 삶을 이어가려 했던 부모의 이야기다. 슬픔의 심연으로 소리 없이 침잠하며 아들을 기억하는 아녜스와,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불멸의 문장으로 치환해낸 셰익스피어. 서로 애도하는 방식은 달랐을지언정,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들의 이름을 영원에 새겨 넣었다.
두 주연배우의 열연, 특히 아녜스역의 제시 버클리의 처절한 연기는 가슴을 울린다. 더불어 햄넷 역의 아역 배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유려한 연출, 16세기 명화를 보는듯한 풍경,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에,
막스 리히터의 묵직하고 웅장한 음악까지.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
<햄넷>
표지사진: Unsplash_Giuseppe Pel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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