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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an 08. 2023

재능, 그 신기루에 대해

글쓰기 재능에 의심이 들때   

생계형 통역사가 가장 좋아하는 이메일은?  물론 통역이든 번역이든 일을 의뢰받는 메일이다. 전에 일했던 곳에서 또 연락이 오면, 그것도 내 통역 덕분에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고 협상이나 계약이 성공적으로 체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흐뭇함, 뿌듯함, 보람이 버무려진 뜨거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기분이다.  더불어 새로운 일까지 의뢰를 받으면 또다시 온정신을 쏟을 주제가 생겨서 신이 난다.  


‘우리 일이 은근 마약 같단 말이지.’ 


그런데 연말에 그 보다 더 기분 좋은 이메일을 받았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흥분이었다. 


바로 ‘원고청탁’ 이메일. 


모 월간 매거진으로부터 받은 메일로 1월 말까지 자유주제로 일정 분량의 에세이를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소정의 원고료도 책정이 되어있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해를 원고 청탁으로 시작하다니... 오래 동안 미루기만 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브런치였다. 아직 초보라 쓴 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노출시키는 지도 모르고 구독자 수를 늘리는 일에도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고 있던 터였다.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생각지도 않던 원고청탁이라니? 너무 기쁜 나머지 늘 내 글쓰기를 응원해주는 두 어명의 지인들께 바로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내 일처럼 기뻐해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 날부터 ‘자유 주제라.. 대체 뭘 쓰지?’ ‘원고를 청탁한 곳에서 내 글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독자의 반응이 좋아야 할 텐데..?’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몇 가지 주제를 구상하고 머릿속으로 얼개를 잡아보다 맘에 들지 않아 지우고 또 지우 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는 돌아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그 우물로 빠지려는 나를 발견했다.  '글쓰기에 과연 재능이 있는가'라는 무섭도록 컴컴한 우물말이다. 


며칠간 그 우물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나에게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띈 것은 당연했다.  인터뷰 제목이 "재능 고민하지 말고, 해야 할 일 먼저 생각해야' 였으니까.  꽤 긴 인터뷰였지만 버릴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작가로서의 통찰과 관록이 눈부셨다.  그중에서도 재능에 대한 작가의 답변은 일순간에 평온과 안식을 주었다. 


-재능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재능을 의심하고 자기 비하를 통과해내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독특한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동안 재능에 의심이 들 때는 어떻게 이겨냈나요?


“집중할 수 없을 때는 밖을 걷거나 요리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책을 읽습니다. 다정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소하지만 좋은 일을 하려고 꾸준히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단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해요. 만약 제게 재능이 있다면 제가 하는 일에서 드러나겠지요.” (출처: ChosunBiz 2022년 12월 24일 이민진 작가 인터뷰) 


주말 동안 오랜 친구 두 명과 친구들의 아이들까지 집으로 초대해 1박 2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 글이 술술 써지는 걸 보면 이민진 작가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재능에 의심이 들 때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재능이라는 신기루 같은 두 글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할 일을 하는 것. 


#글쓰기#재능#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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