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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an 01. 2023

겨울 예찬  

영원보다 순간을 믿어요. 

연말에 제주에서 사는 친구 부부가 서울로 놀러 왔다. 친구들을 챙긴다는 핑계로 나도 덩달아 이틀간 관광객 모드로 보냈다.  서울 한복판 가장 화려한 백화점 앞 크리스마스트리 앞, 명동 성당 앞에서 사진도 찍고, 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유명한 칼국수도 먹고 남산에도 올라갔다.  운이 좋게 파란 하늘 아래 서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한겨울 날씨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겨울을 찾아온 동남아 관광객들 무리가 듬성듬성 보일 뿐이었다.  남쪽 나라에서 온 손님들이라 추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겨울날 햇살을 머금은 밝은 얼굴들이었다. 


 ‘그래, 코끝이 시린 겨울날이 없는 시간은 얼마나 나른했던가.’  


꽤 오래전 장기 출장으로 두 달여간 싱가포르에서 지내던 날들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세상 사는 일이 긴장과 이완의 반복일터인데 계속 이어지는 무더운 날씨로 이완만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엿가락처럼 한 없이 늘어지는 듯한 시간이랄까. 


나와 친구 부부는 동남아 관광객들과 더불어 사랑의 열쇠 광장에 이르렀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서로의 이름을 적고 단단히 걸어 놓은 열쇠 뭉치들이 그 자체로 볼거리 된 지 꽤 되었지 아마?  이 전에도 산책 왔을 때 몇 번 본 적 있지만 열쇠 뭉치들을 이렇게 가까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뜨거운 사랑의 메시지가 빼곡히 담긴 열쇠들은 낡고 더러워진 채로 차갑게 매달려있었다.  친구 부부는 가장 오래된 열쇠를 찾아보자며 열쇠에 적힌 연도를 확인했다.  


“이 커플들 대부분 헤어졌겠지?” 친구가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모르지 뭐…” 나는 대답했다. 


사랑을 지키겠다고 열쇠를 걸어 두는 일은 생각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스스로 유한한 존재이면서 영원을 꿈꾼다?  


잡히지 않는 영원이라는 신기루보다 숨결을 나누는 찰나와 순간의 마법을 믿는다.   이 세상에서 오직 두 사람에게만 조명이 켜진 듯 온전하게 너와 나로서 존재하는 그 순간, 아낌없이 서로를 찬미하는 사랑이라는 눈부신 그 찰나의 기적말이다.  그래서일까 따스한 손길 하나가 위안과 안식이 되는 겨울이야말로 영원한 낭만의 계절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을 것이다.  여름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 지를 새삼스럽게 깨우쳐준 게.  신영복 선생은 가족에게 보내는 엽서에 아래와 같이 썼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으로 만듭니다." 


이상 기후로 뚜렷한 사계절도 옛말이 되었다고 들 한다.  다행히 올 겨울은 겨울답게 영롱하고 차갑다. 사랑하기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겨울#사랑#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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