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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Dec 25. 2022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생계형 통역사의 소비 방식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사실 스스로 선택한 체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던져진 것이기에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보다 구체적으로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일 해서 돈을 버는 방법 이외에는 별 다른 소질도 없고 관심도 적은 지라 (투자한다고 이런저런 지표를 보고 시황을 살피는 일은 도통 체질에 맞지 않는다. 이재에 밝은 것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게 아닐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해서는 딱히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  


하지만 많건 적든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나름의 원칙을 정해보고 싶다. 단순히 절약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를 앞두고 매번 하게 되는 고민 단계를 줄이고 싶었다.  매번 지키지는 못해도 대원칙이라도 정해두면 돈보다 중요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을 테지.  



아껴야 할 것


1.    과시적 소비

사람은 누구나 돋보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번쯤은 좋은 옷, 가방, 장신구 등이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시기를 거친다.   뛰어난 능력이나 훌륭한 성품을 드러내는 방법보다 쉽고 빠르니까.  나도 그랬다.  다행인 것은 그 시기를 금방 빠져나와 단순한 사실을 마주하게 됐다.  성별을 떠나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 청결함, 잘 단련된 몸과 바른 자세, 온화한 태도임을.  여전히 가끔 흔들릴 때가 있지만 ‘필요’가 아니라 ‘과시’가 주목적인 물건은 사지 않기로 정해두자.


2.    할인 제품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단지 싸다는 이유로 사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결국 버리고 만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싸다고 조악한 제품을 열개 사는 것보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좋은 제품 하나를 구비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다.  싼 물건을 사지 않으면 왠지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신 차리자. 절약은 할인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아예 안 사는 것이다. 한 발짝 물러나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이라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경을 보면 기묘하다.  다들 파격 할인가에 열광하면서도 파격 할인가로도 기업들은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파격 할인가가 파격 인건 ‘정상가’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면 평소는 물론 할인기간에도 구매 의욕이 뚝 떨어진다.


그렇다고 늘 아끼는 것만은 아니다.  아낌없이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구비하는 것들도 있다.


1.    피부에 닿는 모든 것

뽀송하고 도톰한 타월, 포근하게 안아주는 적당한 무게감에 바스락 거림과 보드라운 감촉의 배합이 절묘한 이불과 베개, 여린 살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순면 속옷…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추상적인 느낌만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부에 닿는 타월, 매일 밤 최소 5~6시간씩 나를 덮어주고 쉼을 주는 침구류들이 야말로 행복을 가장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2.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것

1번의 연장선상에서 내 몸에 들어가는 것에는 가능한 한 최상품을 고집한다.  식재료는 가능하면 유기농 제품을 구매한다.  특히 거의 매일 먹는 우유와 달걀은 반드시 최상급으로 산다. (달걀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인지도 확인한다. 달걀 위에 찍힌 일련의 번호 ‘난각코드’에  산란 일자와 생산자고유번호, 사육 환경번호를 담겨 있다. 사육 환경번호는 1~4로 구분되는데 1은 방사, 2는 축사 내 평사, 3은 개선된 케이지, 4는 기존 케이지를 의미한다. 출처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http://www.consumernews.co.kr) 유기농 제품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매일 점심 먹고 카페 가서 커피 사 먹는 돈에 비하면 결코 높은 가격이 아니다.  외식할 때도 가격을 보고 주문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으로 주문한다.  


3.    경험

물건을 사고 느끼는 만족감은 금세 사그라든다. 너무 좋아서 곱씹고 또 곱씹는 물건은 거의 없다.  반면 거의 모든 여행, 미술관, 공연 등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하나하나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의 관점을 넓혀준 경험이었다.  전에 한 번도 미국에 간 적 없으셨던 엄마와의 시카고 여행, 밤새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열흘 동안 틀어박혀 책번역을 하며 그 재미에 희열을 느끼던 치앙마이 여행, 동생과 반 고흐 자취를 따라 파리에서 니스까지 누비던 기억,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엄, 파리와 비엔나 미술관들에서 인상파 그림과 클림트 그림 등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순간들, 하일리겐 슈타트 베토벤 하우스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매료되어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그날 아침의 기억.. 런던에서 혼자 봤던 <레 미제라블> <오페라 유령>, 그 외 수많은 콘서트와 공연들.. 앞으로도 경험에 드는 돈을 아끼지 말 것, 우리 인생은 결국 시간을 경험으로 바꾸는 것 아닌가.  


4.    선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이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원했던 선물을 소소히 챙기거나 때로는 꽤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게 꽤나 즐겁다. 특히 늘 베풀기만 하고 스스로에게는 검약하기만 한 엄마한테는 좋은 선물을 해드리는 편이다.  본인을 위해서는 결코 사치품을 사지 않으실 분이기에 딸인 내가 챙긴다.  올여름에는 비엔나를 다녀오면서 버버리 스카프를 사다 드렸다.  엄마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뭘 이런 걸 사 왔냐고 투덜 대시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언젠가 엄마가 우스개 소리로 했던 말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쓰라리다.  어쩌면 엄마는 그 말을 했던 사실조차도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른다.  (옛날 스타일 남자였던) 아빠에게서 평생 장미 한 송이 못 받았다는 말…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뭔가 교통정리가 된 느낌이다.  2023년도에도 즐겁게 일하고 현명하게 쓰자고 다짐해 본다. �

#소비#돈#선물#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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