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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an 15. 2023

소설[실낙원]과 영화 <화양연화>를 추억하며

서른일곱의 두 여인, 린코와 리첸 이야기


유행이 한창 지낸 책을 꺼내 들었다. [실낙원](1997)


사랑에 빠진 기혼의 남녀가 정서적, 육체적인 교감 끝에 동반 자살까지 이른다는 줄거리다.  출간 당시 도발적인 소재로 큰 화제가 되어 영화화되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책표지에 점잖아 보이는 중년남자가 초연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고 단아해 보이는 단발머리 여인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다.  무슨 절절한 사연이 있어서 함께 죽음을 결행한 것일까?  죽을 각오까지 했으면 둘이 새로운 인생을 찾아 여생을 함께 하면 될 것을… 그렇게 책 첫 페이지를 열게 되었다. 듣던 대로 성애 묘사가 여러 번 나온다.  다행히 여성 독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묘사는 아니다.  오히려 여성 독자라면 소설 속 린코가 점점 부러워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구키는 정숙한 유부녀였던 린코가 자신을 통해 점점 성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한다.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탐미주의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여체의 아름다움과 여성의 쾌락을 찬미한다. 더 나아가 남녀 간의 가장 깊은 대화로서의 사랑 나누기를 지상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구키와 린코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 따지자면 자살은 린코의 제안이었다. 두 사람 사이가 탄로 나면서 구키도 회사에서 쫓겨나고 궁지에 몰리긴 했지만 사랑하는 린코의 소원을 들어준 측면이 더 크다.  그럼 린코는 처음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와의 결합으로 헤어날 수 없이 빠져드는 일체감을 느끼게 됐으면서 왜 자살을 결심한 걸까?


린코는 사랑의 변덕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뜨거웠던 사랑도 세월의 부식작용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를 너무나 아끼는 구키지만 언젠가는 구키의 마음도 식고 말 것이라는 것을.  영원할 것 같았던 구키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언젠가는 과거형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구키와의 사랑 덕분에 요염한 여인이 된 린코지만 결국엔 그녀의 아름다움도 지고 말 것이라는 것도 자살 결심에 한몫한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영원히 동결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만다.  서른일곱에 구키를 만난 린코는 그렇게 서른여덟에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쾌락의 절정에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린코의 나이를 서른일곱으로 설정한 것 같지는 않다.  풋풋한 여자에서 여인으로, 흔히 말하는 원숙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동시에 소멸을 생각하는 나이다.  아직 먼발치에 있지만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소멸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는 시기말이다.



<화양연화>

린코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왕가위 영화 <화양연화>(2000)가 떠올랐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 (왕가위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다 가장 좋아하는 홍콩배우 양조위 장만옥에 냇킹콜 음악까지… 나에게는 종합선물 같은 영화이다.)  개봉 당시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었다.  어학연수 시절이었는데 <아시아 영화제>가 열려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때 나는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간호사 부부 낸시와 크리스가 주인이었다. (캐나다에는 남자 간호사가 드물지 않다. 낸시는 여섯 살에  크로아티아에서 캐나다로 온 이민 왔다고 했다.  낸시보다 키가 두 배쯤 큰 크리스는 일찍 퇴근해서 매번 아내를 위해 저녁을 차려놓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


낸시는 내가 보러 갈 영화 제목을 듣고 B사감처럼 눈 쌀을 찌푸렸다.


Aren’t you a little too young for such a film?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은 다름 아닌 <In the mood for love>였기 때문이다. 번역하면 ‘사랑을 나누고 싶은 기분’쯤이 되겠다.  영화는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그리고 있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애절하고 안타까운 사랑말이다. 사실‘이루어진 사랑’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결혼에 골인해서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면 사랑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그들도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영화의 백미는 두 사람의 이별연습 장면이다.  준비 없는 이별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차우(양조위)가 리첸(장만옥)에게 이별연습을 제안한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이별을 연습한다. 리첸은 결국 아이처럼 울음을 쏟고 만다. 그 장면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은 가슴이 아렸을 것이다. 사랑으로 고통받는 두 사람의 느린 동작이 잊히지 않는 화영연화에서 장만옥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그녀 역시 서른 일곱 즈음이었다. 미스 홍콩 출신의 여배우니 어련하겠냐 마는 영화 속 장만옥의 아름다움은 슬픔이 가득한 고혹미 그 자체였다. 몸에 밀착된 화려한 무늬의 치파오는 그녀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포착한다. 남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절제된 사랑의 동작들.  수년 전에 장만옥의 최근 근황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았다. 안쓰러울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연하의 프랑스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실의에 빠져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사진에서 세월이 흘러도 차우를 잊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있는 리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게 왜 감당하지 못할 이별을 했어? 그때 차우의 손을 잡지…


#실낙원#화양연화#소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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