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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Sep 17. 202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 에세이에서 읽는 '온전히' 사는 방법


좋아하는 작가와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겠다.  한때 소설가를 꿈꾼 문학 전공자로 좋아하는 작가가 여럿이지만 작품 말고 작가 자체에 관심이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작가와 독자로서 활자로 소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느 정도는 우러러보고 있는 인물들의 실체를 보고 환상이 깨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루키는 예외다.  

 ‘인간 하루키‘가 몹시 궁금하다.


하루키 작품은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 <댄스 댄스 댄스>,  <양들의 모험> 같은 소설로  처음 접했지만 <해변의 카프카> 이후부터는 주로 에세이를 보고 있다.  비단 하루키 작품뿐이 아니라 전보다는 확실히 에세이나 사회과학서 같은 비소설 쪽으로 독서 취향이 바뀌었다.  여전히 책 읽기를 즐겨하지만 독서의 결이 달라졌다. 비소설류로의 몰입이 더 쉬워서다.  바다로 비유하자면 에세이나 사회과학서는 바깥공기라는 현실과 접해있는 바닷물 표면이요, 소설 같은 픽션은 숨을 참고 헤엄쳐 들어가야 하는 심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내가 통과하고 있는 인생의 단계가 소설 읽기라는 한가로움을 오롯이 만끽하기 어렵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독서 습관이 게을러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그에게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는 대단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삶에 대한  성실한 철학부터 재즈와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는 물론이고 ‘삶을 어떻게 온전히 살아낼 것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내는 특유 문체까지.  그렇게 나는 하루키 에세이를 시차를 두고 곱씹고 또 곱씹는다. 하루키가 고픈 날에는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책들 중에서 그날 나를 유혹하는 제목을 꺼내든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9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목 그대로 이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 그렇듯 무심한 듯, 하지만 단단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표현대로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인 셈이다.  나는 언제   <직업으로의 소설가>(2016)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 에세이인 이 책을 다시 꺼내 들게 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느슨해진 육체와 정신의 탄력을 되찾고 싶을 때.


이 책을 썼을 때 오십 대였던 하루키는 어느덧 칠십 대가 되었다.  나이로는 나에게  아빠뻘이지만 정말이지 한 번도 그에게서 ‘나이 듦’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의 ‘정신의 탄력’ 덕분일 테다.  그리고 그 정신의 탄력의 토대는 수십 년간 다져온 '육체의 탄력'임이 틀림없다.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적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 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대로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설계하는 것 말고는 달리 '온전하게' 살 방법이 없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느슨한 삶은 내 선택지가 아니라는 걸.

  생기 넘치는 삶의 환희로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채우고 싶다.

그 환희는 내가 기꺼이 감내하고 싶은 고통을 통과할 때만 맛볼 수 있으리라.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려있다.


  표지사진: UnsplashIsaac Wendland

#하루키#무라카미하루키#에세이#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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