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추억 속 애인발견과 아줌마
일반화의 오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 기준은 제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시대에 번득이는 천재성과 동성애 스캔들로 이름을 날린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 사람들을 '매력적인 사람들'과 '지루한 사람들'로 나눈 바 있다.
좋고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또한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
It is absurd to divide people into good and bad.
People are either charming or tedious.
역시 오스카 와일드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따분한 사람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그의 촌철살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식으로 목록화한 적은 없지만 나도 나름의 기준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호칭으로
'아주머니'를 쓰는 사람인지 '아줌마'를 입에 올리는 사람인 지다.
성별 구분 없이 '아주머니'를 쓰는 사람은 달리 보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번째 남자친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비범할 정도로 총명한 사람이면서도 세상 물정에는 걱정이 될 만큼 어두운 순수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순수함을 넘어 바보스러웠다.
총명할 것으로 치자면 공대생신분으로 공익근무하면서 몇 달 책을 보더니
처음 보는 사시 1차에 덜컥 붙어놓고는
막상 2차 시험 때는 시험 날짜를 까먹어버리고 어이없이 기회를 놓치는 식이었다.
남들 같으면 그런 중대한 실수를 애초에 하지도 않겠지만
귀하게 얻은 시험기회를 그렇게 허공에 날리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을법한데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오늘이 시험인 지 몰랐네 허허" 하며 해사하게 웃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이미 이십 대에 (노자, 장자에 몰두하더니)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외모에는 관심도 없고 자기 관심 분야에만 깊이 몰두한 나머지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는 건 일상다반사고, 양말 뒤꿈치에는 늘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그 무렵 나는 노래방에서 자우림의 <애인발견>을 자주 불렀다.
바보 같다 생각했어
너를 한 번 봤을 땐
멍청한 눈 헝클어진 머리 마른 몸
착하다고 생각했어
너를 두 번 봤을 땐
상냥한 눈 귀여운 머리 날씬한 몸
사람들은 너를 몰라
안경 너머 진실을 봐
어리숙한 모습뒤에
천사 같은 네 영혼을
나 밖에는 아무도 모를 거야
바보 같다 생각했어
너를 한 번 봤을 땐
어눌한 말 촌스러운 표정 어색했지
착하다고 생각했어
너를 두 번 봤을 땐
솔직한 말 신선한 표정 좋았지
오빠는 식당에 밥먹으러 갈 때면 일하는 분들께 항상 정중하게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장난으로라도 '아줌마'를 입에 올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말에서 '아줌마'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아줌마: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
그러면 '아주머니'의 사전적 정의는?
1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2 남자가 같은 항렬의 형뻘이 되는 남자의 아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아줌마'가 '아주머니'를 단순히 낮추어 이르는 호칭뿐만이 아니라는 걸.
실제 우리 생활에서 '아줌마'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가장 적확하게 포착한 것은 작가 정유정이다.
그녀의 소설 <7년의 밤> 중에 대목이다. 벌써 한 참 전에 읽은 소설이라 플롯마저 흐릿하지만 이 대목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작가의 예리함에 탄복했던 기억말이다.
"그녀가 아는 아줌마란,
유부녀에 대한 은근한 경멸과
억세고 질긴 생명체에 대한 부당한 혐오,
친근함을 가장한 젊은 것들의 무례함이 뒤섞인 호칭이었다."
표지 사진: Unsplash의 Lea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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