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 가셨던 큰 형님이 집으로 돌아오신 때는 막내 형님이 징용을 가고도 한참을 지난 그 이듬해였다. 큰 형님은 막내 형님이 징용 간 사실을 아시게 되자 우선 하신 일이 면사무소를 찾아가 형님이 징용 간 곳을 알아보시는 일이었다. 막내 형님은 형제들 중 덩치가 제일 컸지만 공부머리는 없어서 그런지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동네 훈장님이셨던 아버지께 나보다 먼저 배우기 시작한 천자문도 끝내질 못해 매일 회초리를 맞았고, 그런 형님을 보면서 난 회초리가 무서워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런 형님이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농사일이었는데 절기 때마다 무얼 어찌해야 하는지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그런 형님이 농사를 배웠던 마름의 귓속말에 속아 징용에 선뜻 나섰던 것도 면서기의 거짓말 때문이었다는 것을 큰 형님이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때문에 어머니는 무지했던 당신을 자책하시면서 더욱 안타까워했다. 큰 형님이 알게 된 정보는 막내 형님이 목포 어디쯤에서 큰 선주로 있는 주인의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큰 형님은 그 소식을 접한 후 당장 짐을 꾸려 목포에 다녀오기로 하시고 다음날 기차에 몸을 실으셨다. 그리고 그 전날 밤 어머니와 밤늦도록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지 늦게까지 어머니의 방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때쯤 우리 집엔 시집을 갔다가 애를 못 낳는다고 바람난 남편에게 소박 맞고 집으로 돌아온 쌍둥이 누이 중 큰누이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엔 어른이라고는 어머니, 큰형수, 큰누이 이렇게 여자만 셋이었다. 광산 일을 하시는 넷째 형님은 강원도에 계시고, 쌍둥이 누이 중 작은 누이는 3년 전 시집을 가서 첫아이를 낳고 산후병으로 돌아가셔서 애처로운 어머니는 이제 의지할 사람은 큰 형님 내외와 소박맞은 누이뿐이었다. 그래서 아직 중학생인 나는 뭘 해드리고 싶어도 힘도 없고 아직 배움이 짧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 제일 속상했다. 나도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일본 놈들의 짓거리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다. 아침마다 외워대는 황국신민서사도 싫고, 기미가요 부르기와 궁성 요배도 싫다. 왜 우리나라님은 힘없이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겨서 요렇게 날마다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형님이 간밤에 어머니와 긴 말씀을 나누시고 목포로 가신 후 우리 동네 마름을 자주 부르신다. 막내 형님이 농사짓던 땅 얘기도 하는 것 같고, 선산 얘기도 하는 것 같고 영 궁금했으나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다. 막내 형님 일로 목포를 갔던 형님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막내 형님이 가신 곳은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소재 미쓰비시(三菱) 탄광주식회사 다카시마(高島) 탄광이라고 했다. 배치된 곳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막내 형님이 탈출을 시도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큰 형님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큰 형님은 막내 형님 일을 알아본 후 꽤 오랫동안 집에 머무셨는데 큰 형님의 존재만으로 어머니를 비롯해 형수님과 큰누이가 든든해하시는 것을 볼 때 큰 형님이 안 계실 때의 생활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형님이 집에 머무는 동안에 우리 집은 여전히 손님 방문이 잦았고 큰형수님도 손님 대접으로 더 바빠졌다. 그런 평온한 시간이 흘러 내 나이가 열아홉이 되던 해 큰 형님은 만주에 다녀올 일이 생기셨고 나와 동행을 하기로 하셨다. 난생처음 조선을 떠나 타국 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사뭇 떨리기도 하고 겁도 났던 나는 형님을 조용히 따라나섰다.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와 큰형수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큰 형님은 우선 경성에 들려 내게 양복을 해주시마 약속을 했고, 경성을 도착해서 번화가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이라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3층에 위치한 신사복 매장에서 양복을 사주셨는데 나는 백화점이라는 곳도 처음이거니와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신기해서 정신을 홀딱 뺏기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처음 본 남대문과 남산부터 때맞춰 지나가는 전차 구경한 것이며 백화점 옥상의 난생처음 보는 카페라는 곳까지 경성은 그저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백화점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형님과 나는 늦은 오후에는 원각사라는 절에 있던 탑이 있는 곳까지 가서 탑을 구경했다. 가는 길 내내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맥고모자에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와 한껏 멋을 내고 양산을 쓰고 가는 아가씨들도 보았다. 그중에는 누더기를 걸친 더벅머리 어린아이들도 보였는데 동냥을 하는 아이들 같았다. 그 거지 아이들을 보니 고향에 있을 조카들이 생각났다. 큰 형님은 그 아이들이 눈에 밟히지는 않는지 궁금해졌다.
해가 지고 형님과 나는 방을 잡고 술자리 약속이 있어 피맛골 골목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형님의 친구분들은 나를 보곤 단번에 이름을 아시는지 내 이름을 반갑게 불러주셨다. 내심 형님께서 내 얘기를 하셨나 싶어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나는 형님이 그간 무얼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되었다. 집안 어른 중에 을미년에 의병을 일으켰던 아버지의 육촌 형님 이야기를 듣고 자란 탓에 형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술자리를 파하고 다음날 아침에 타야 할 기차 시간을 확인 후 형님 친구분들과 헤어지고 형님과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모석아, 너도 이미 술자리에서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군자금을 조달하고 독립군에게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비가 삼엄해서 의심 사지 않기 위해 특별히 너를 데려온 것이야.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데 미안하구나."
"형님, 아버님께서 눈을 감기 전에 소원이 나라를 되찾는 것이었는데 그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에 제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괜찮습니다. "
"네가 그리 생각한다니 기특하구나. 우린 내일 경성에서 출발해 신의주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단동으로 이동해 대련까지 가는 게 목표다. 그곳에서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할 우리나라 청년들의 입학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그것만 잘 전달하면 이젠 내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내 형수 보기도 미안하고 어머니 걱정도 크시니 고향에서 다른 방법으로 독립을 위해 힘쓰기로 했다. 너도 그리 알고 있거라."
"네, 형님."
큰 형님과 대화 후 잠자리에 드신 형님과는 달리 난 생각이 많아져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어느새 잠이 들어 형님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깊게 잠이 들었다.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기차 플랫폼에 열차가 도착하고 형님과 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길고도 먼 여정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