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

by 자강



오늘은 칠월 칠석 며늘 아이의 기일이다. 며느리의 제사상 차리는 것도 오늘을 끝으로 이젠 더 이상 못할 것 같다. 삼 년의 세월이 흘러 탈상도 했으니 아들이 새 장가를 가도 뭐라 할 명분도 없지만 내 맘은 편지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얼마 전부터 아들이 재 건넛마을로 외출이 잦아지더니 어젯밤에 대뜸 하는 말이 새사람을 들이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내심 서운했다. 새사람 될 사람을 나에게 먼저 보이길 하는 맘도 있었으나, 아들도 나처럼 며늘 아이를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사내들이 생각하는 부부애가 우리 아낙네들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것 같아 내 아들이지만 못내 서운하고 서럽다. 게다가 새로 올 그 사람은 4살 배기 딸을 데리고 온다고 한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과부인 것이다. 과부라는 것보다 내 맘을 심란하게 한 것은 자기 딸이 있는 그가 우리 아이들을 살갑게 키워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다.


제사는 배 서방네 어멈과 함께 준비를 하여 조촐하게 지냈다. 큰 손녀와 두 손자와 함께 지내는 제사상 앞에 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 나를 큰 손녀가 꼬옥 안아준다. 어미 잃은 손녀딸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있다. 눈물도 오늘까지 만 이라 생각하고 아이들과 함께 제사상 음식을 나눠 먹고 잠을 청했다. 아들은 여전히 귀가를 하지 않았나 보다. 초저녁에도 꺼져 있던 사랑채 불이 아직도 꺼진 채로 컴컴하다. 내 마음도 덩달아 컴컴해진다.


며느리의 마지막 제사가 있던 날로부터 달포 뒤 아들의 혼례식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가 재혼이다 보니 혼례는 간단히 하고 싶었으나, 새사람이 욕심을 내어 동네잔치가 되어 버렸다. 집안 어른들을 비롯해서 인근 유지들부터 면장까지 동네에서 한자리하는 이들은 죄다 불러 잔치를 했다. 시절도 시절이거니와 이게 맞나 싶지만 아들은 이미 새사람에 푹 빠져있어 귀머거리에 장님이 되어 버렸다.


새 며느리는 키도 크고 눈도 큰 데다가 손발이 크니 웬만한 사내보다 더 힘이 세어 보였다. 게다가 날 닮아 키 작은 아들이 옆에 서면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람이어서 나는 왠지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방을 꾸며주고 새 이불을 꾸리면서 한숨을 쉬는 날 배 서방네 어멈이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마님, 너무 걱정 마셔요. 새사람도 딸이 있는디 같은 어미의 마음으로 아기씨랑 도련님들 잘 보살피것지유. 안 그러면 쓰간디유."


"그려 자네 말마따나 자기 딸 생각하면 그리해야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그래서 더 제 딸만 위할까 걱정이네...."


칠석이 지난 지 달포가 되고 가을이 드니 풀벌레가 장독대에서 구애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내일 밤도 모레 밤도 여전히 저 풀벌레의 구애하는 소리는 내 귀청을 때릴 것이고, 그 소리에 예민해진 난 잠을 좀처럼 이루지 못할 것이다.


혼례를 치른 지 이레가 되던 날부터 새 며느리가 부엌에서 조반 짓기를 배 서방네 어멈과 함께 했다. 그때부터였다. 배 서방네 어멈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은. 나나 아범 모두 짠 음식을 싫어하기에 나물이며 국이나 찌개까지 심심하게 간을 하는데 새 며느리가 싱겁다며 간을 자꾸 짜게 만들며 참견을 하는 통에 어멈이 당최 아침밥 짓기를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님, 아니 새사람은 왜 그리 참견을 한대요. 본시 조반朝飯 짓는 일은 지가 허던 일잉게 그냥 맡겨두면 될 것을 자꾸 싱겁네 밋밋허네 하면서 참견을 해대는 통에 정신이 없어라. 모든 지 헤퍼서 고춧가루고 깨소금이고 푹푹 들어간다니께요. 지는 첨말로 못 해 먹겄어유."


"그래, 어멈이 고생했구먼. 내가 따로 새 아기한테 일러둘 테니 염려 말어."


이리 일러두고 어멈을 달래 놓았지만 실상 나도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범을 통해 말하면 싸움만 날 것이고 살짝 불러 이야기할라 쳐도 날 대하는 태도가 데면데면한 본새를 보면 귓등으로 들을 듯하여 걱정이 앞선다. 이 걱정은 다음 날 현실이 되었다. 내가 새 며느리에게 배 서방네 어멈 이야기를 먼저 하기도 전에 아들이 먼저 며느리의 편을 들며 곳간 열쇠와 집안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게 해 달라는 청을 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이내 새 며느리의 청을 들어주었다. 새 며느리가 탐탁지 않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집의 안주인이 된 이상 난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렸음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새 며느리가 집안의 대소사를 맡으니 당장 몸은 편하나 아랫사람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평상시 해왔던 모든 일의 절차와 방법을 새 며느리 맘대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철마다 담그는 장부터 시작해서 뒤뜰 텃밭에 심어 먹는 푸성귀며, 소작농들 집안 문제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간섭이 계속되다가 좀 잦아들기 시작한 시점은 새 며느리의 산 달이 다가올 쯤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시집온 지 다섯 달 만에 산달이라는 것이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어멈 말에 따르면 혼례를 치르기 전부터 부부의 연을 맺어서 그런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배 서방네 어멈이 재넘어 마을 아는 이에게 듣기로는 과부 된 지 석 달이 안 되어 아범을 처음 만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했다. 의심은 계속되었으나 달리 확인한 방법은 모른 채 새 며느리는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아들 셋 딸 둘을 둔 집이 되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돌림자 항렬 쓰기를 끝내 반대했고, 아들과 새 며느리는 나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 해는 저물어 갔고 나의 근심은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