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보다 키가 큰 새엄마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도 안 되어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 말로는 내 동생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아버지나 나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새엄마를 닮지도 않았다. 아이는 난생처음 본 얼굴을 한 사내아이였다. 할머니는 웬일이신지 이 아이의 이름을 내 동생들과 같은 돌림자 이름은 안 된다고 하셨고, 그리하여 새로 태어난 아이 이름은 '성훈'이가 되었다. 물론 성(姓)은 나와 같은 김 씨다.
새엄마는 아이를 낳은 지 보름도 안 되어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원래 우리 집 집안일은 밥이며, 빨래며, 청소까지 모두 배 서방네 어멈이 도맡아 했는데 새엄마가 온 뒤로 자꾸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배 서방네 어멈이 해준 조반이 좋은데 짜고 맵기까지 한 새엄마의 음식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신 아버지가 꾸지람을 하시지만, 난 할머니께 허락을 받고 아침밥을 거르고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사실 내가 아침밥을 거르고 학교에 갈라치면 어찌 알았는지 배 서방네 어멈이 나를 따라와 먹을 것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사실 아침을 먹은 거나 진배없었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3년이나 흘렀고, 38도선이 그어지고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어도 나아진 게 없는 내 삶은 농지개혁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운 아버지의 걱정 많은 일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없이 새엄마라 부르는 키 큰 아줌마 때문에 우리 삼 남매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할머니가 초파일(初八日)이나 칠석, 백중날 같은 날에 이모할머니가 계신 암자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오시는 날이면 무섭게 변하곤 하는 새엄마라는 사람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나보다 어린 옥희라는 계집애도 그렇다. 자기보다 오빠인 우리 막내 기창이를 몰래 꼬집어 울려놓고, 아버지나 새엄마 앞에선 시치미를 떼며 모르쇠 한다. 그때마다 내가 혼을 낼라치면 아버지는 언니인 나보고 참으라고만 하시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서 커서 저 새엄마보다 키가 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게다가 내년엔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중학교가 있는 군 소재지에서 나 홀로 지내야 한다. 그런데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와 동생들과 헤어져 살 생각을 하니 상급 학교로의 진학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나이도 내년이면 환갑이 되시니 건강이 걱정이 되고, 아직 어린 동생들도 내가 없으면 새엄마의 괴롭힘이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새엄마는 아버지가 농지개혁 문제로 바쁘시니 우리를 구박하는 일을 낙으로 여기는 것처럼 매일같이 우리 삼 남매를 괴롭혔다. 둘째 기만이에게 나무를 해오라고 한다거나, 외삼촌이 사다 준 막냇동생의 구두를 성훈이에게 신게 하는 등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할머니가 계시니 할머니 앞에서 대놓고는 하지 못하지만, 귀도 어두워지시고 눈도 잘 안 보이신다는 할머니께서 바깥출입을 잘 안 하시니 새엄마가 할머니를 눈속임하기에는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난 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말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저녁나절까지 귀가하시지 않는 아버지를 사립문에 기대어 기다렸다. 해는 저물어 뒷산 너머 달이 뜨고, 어둠이 무섭게 이리 떼같이 몰려드는 밤이 되자, 아버지는 약주를 드셨는지 배 서방 아저씨께 의지해 비틀거리며 집에 오셨다.
"아부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유. 지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셔유."
"오호, 우리 딸 아비 걱정하느라 여적 잠도 안 자고 있었는감?"
"아녀유, 드릴 말씀 있어서 기달렸우."
"그려? 뭔 얘기인 겨?"
아버지가 배 서방 아저씨께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시며 내게 물었다.
"새엄마 말이어유. 자꾸 기만이한테 나무 해오라 시키고, 옥희 년은 기창이 괴롭히고, 외삼촌이 경성에서 사다 준 기창이 구두도 성훈이한테 줘버리고...."
아버지는 몸을 가누기가 힘드신지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으시며 내게 손짓하는 것이 내일 얘기하자는 뜻으로 보였다. 나는 지금 얘기해도 소용이 없겠다 싶어 아버지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다행히 할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할머니께 속상한 맘을 털어놨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사랑채로 나를 부르셨다.
"아비가 요즘 나라에서 농지개혁한다고 해서 많이 바쁘다 보니 너와 기만이 기창이를 신경 쓰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
"그리 생각하고 계셨으면 전 괜찮아유. 아버지께서 새엄마가 오신 뒤로 변했다고 생각해서 많이 서운했구먼유."
"니 서운한 건 배 서방 통해서 들었다. 새엄마도 본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자식을 낳고 보니 욕심이 생기는가보다."
"......."
"그란디 농지개혁법이 뭐 여유?"
"소작농에게 더 많은 지분이 돌아가게 하려는 법인데, 그리되면 지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적으니 지주들의 반발도 심하고... 마름인 내가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노릇이 되었다."
"소작농들이 그래서 우리 집으로 찾아왔던 거여유?"
"그런 데다가 이북에선 사회주의다, 공산주의다 하면서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해버리는 바람에 일이 더 복잡해졌단다. 아, 니는 걱정 말고 동생들 잘 건사만 해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니들도 잘 보살피라고 잘 일러둘 것이니 염려 말구."
아버지의 약속은 들었으나, 난 그 문제가 아버지 생각처럼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을 거라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농지개혁법이나 새엄마의 못된 짓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건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사랑채에서 나왔다. 엄마가 무지 보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