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by 자강


새해가 되어도 휴전은 여전히 되지 않았고 38도선 부근에서는 국군과 북한군의 고지전은 계속되었다. 내가 있는 부산은 봄이 일찍 찾아왔고,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피난민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도 광복동을 다녀온 수간호사 말로는 거리가 예전보다 한산해졌다고 한다. 바깥은 봄꽃이 피고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벗은 채로 다녀도 될 정도로 날은 많이 푹해졌다. 창 너머로 보이는 연둣빛 옷을 입은 나무들이 경쾌해 보이고 이른 꽃을 피운 꽃나무들도 아름답다. 오늘은 햇볕도 좋으니 병원의 중정 산책을 권하는 수간호사의 말을 듣고도 나가지 않은 이유는 허벅지 아래로 잘라져 없어진 나의 왼쪽 다리를 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재활을 위해서라도 자꾸 침상을 벗어나 움직여 보라고 권하는 의사의 말도 무시한 채 난 침상에 누워 누렇게 바랜 천정만 보며 하루를 보낸 날들이 많았다. 여름엔 장맛비를 핑계로, 겨울엔 눈을 핑계로 미루던 재활 운동을 이제는 해야 한다.





윤가 놈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간지도 3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이도 없는 터라 낯선 도시 부산에서 나는 그저 외롭고 쓸쓸한 이방인이었다. 가끔씩 수간호사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사실 내 관심은 온통 내 다리에만 쏠려 있었다. 왜 하필 그때 그 시점에서 정찰을 가야 했는지, 그리고 왜 나만 불구가 되었는지, 고향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등과 같은 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히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경무대 소속인 윤가 놈이 난생처음 부럽기까지 했다. 정치 실세 옆에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 비위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윤가 녀석을 혐오까지는 아니어도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 같다는 생각을 해오던 내가 그를 부러워한 이유는 오직 하나. 멀쩡한 그의 몸이었다. 나도 윤가처럼 멀쩡한 다리가 있다면 세상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고, 허드렛일을 한다 치더라도 행복할 것 같았다.


전역하는 상이군인 (출처 국가기록원)



남한은 휴전을 반대하고 미국과 중국은 각각의 국내 정치 상황과 지루한 전쟁 탓에 휴전을 종용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시내에서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휴전을 반대하는 궐기대회가 매일같이 있었고, 고등학생들까지 동원되어 휴전 반대 혈서 쓰기까지 벌어진다는 소식도 들렸다. 완전한 휴전이 되면 나도 이곳에서 퇴원을 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될 것임에 나 역시 이 시점에서 휴전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었지만 병원 사람들은 나와 또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953년 7월 27일 남한 정부만 빠진 채로 미국, 중국, 북한의 대표들이 모여 휴전에 합의를 했고, 결국 휴전이 되었다.

그에 따라 나도 퇴원을 준비를 했고, 나는 상이군인의 신분이 되어 3년 가까운 부산 병원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갈 준비를 했다. 난 전쟁 전부터 직업 군인이었으므로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상이군인으로 전역을 한 것이고, 윤가 놈이 작은 배려로 편하게 병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역 당일 병원에서 준비한 작은 행사에 참여했다. 화동들이 전역하는 상이군인들에게 꽃을 전달하고, 군의관을 비롯한 간호사들의 배웅이 전부였던 행사는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끝이 났다. 그리고 부산역으로 가는 군용 트럭에 오르면 끝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성한 몸이었으면 날쌔게 뛰어오르고도 남을 것이었지만, 다리 하나를 잃으니 모든 게 장애물이 되어 돌아왔다.

2층에 있던 병원 침상을 벗어나 1층으로 내려오기 위해 목발에 몸을 의지해야 했고,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기에 온 정신을 쏟아부어야 하니 신경이 곤두섰다. 계단을 내려오니 현관문을 빠져나오는 것조차 버거웠다. 밀면 열리는 문조차 그 회전력으로 다시 안으로 되밀려 들어오는 바람에 두 개의 목발에 의지한 나의 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체면도 체면이지만 나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자괴감에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순간 나는 누굴 위에 싸웠고, 누굴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게 되었다.

어렵사리 트럭에 몸을 싣고 부산역에 도착하니 또 다른 계단들과 조우했다. 그 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플랫폼에 정차된 기차를 탔다. 오전에 출발한 기차는 저녁나절이 되어 서울역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밟아 보는 서울 땅인가? 오늘은 이렇게 날이 저물어 윤가가 있는 종로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종로행 전차에 또 몸을 실었다. 전차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이 밤안개에 묻혀 뿌연 빛을 발하고 있다. 정처 모를 내 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