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여정 때문이었는지 기만이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는지 어젯밤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삼촌과 친구는 사이좋게 면도를 하고 있었다. 하얀 비누 거품을 턱에 바른 채 서로의 얼굴에 장난을 치며 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소년들이다. 나도 얼릉 나가 씻어야 하는데 다 큰 어른 둘이서 저리 놀고 있으니 나서기가 좀 그랬다. 문풍지를 바른 문에 작게 낸 유리 너머로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데 삼촌 친구가 내가 있는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내 눈동자에 그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무슨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러섰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삼촌이 큰 소리로 내가 있는 방 쪽으로 말을 했다.
"일어났는 감? 내외하지 말고 어여 나와 씻고, 밥 먹으러 가자."
삼촌의 말에 난 우리 동네를 포함해 인근 마을까지 천상 여장부라 불리는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이러고 있나 싶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끼 옆에 개어져 있는 수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날은 가을이 깊어 코끝이 살짝 시렸고, 어촌 마을답게 공기 중에 떠다니던 비릿한 바다 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 게국지라는디 아침으로 먹고 가자."
"아 게국지 싫은데, 뭐 다른 거 없어요?."
"바닷가 사람들이 니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겄냐? 기냥 먹고, 기만이 데리고 집에 가면 소고기 끊어서 니가 잘하는 육개장 해 먹자. 워뗘? 괜찮지?"
"알겄어요. 좀 기다려 줘요."
내가 씻는 동안 삼촌과 친구는 짐이라고 할 것이 없는 짐을 꾸리고 나서 툇마루에 걸 터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입술연지라도 챙겨 올 걸 하는 후회를 하였지만, 삼촌한테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지금 내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삼촌이 데리고 간 밥집은 우리가 잠을 잔 집주인의 안사람이 하는 밥집이었다. 포구 앞에서 음식을 제일 잘한다는 그 집은 술과 밥을 함께 파는 밥집이었다. 삼촌은 게국지와 막걸리 두 잔을 주문했고, 밥을 먹고 난 나는 낯선 게국지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게국지의 맛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뭍으로 들어온 뱃사람들에겐 엄마가 해주는 맛난 집밥처럼 따습고 맛났을 거 같았고, 안주인의 손맛은 그들을 위로해 주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절까지 걸어서 두어 시간이 걸린다 하니 출발하기 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을 때 어제 타고 온 배의 선주가 찾아왔다. 선주는 마침 우리가 가려던 절에 주지 스님을 만날 일이 있어 새우젓 트럭을 타도된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 덕에 우리는 걸어가지 않고 새우젓 트럭을 얻어 탈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삼촌과 친구는 새우젓 도라무깡을 싣는 짐칸에 타고 나는 선주가 운전하는 운전석 옆에 앉아 절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한 선주는 호미로 이랑을 파놓은 것 같은 깊이 팬 이마의 주름과 짙은 눈썹에 강하고 넓은 하관을 하고 있어서 뱃일을 하기에는 딱인 그런 인상이었다. 힘든 뱃일을 30여 년을 했다는 그의 손등은 우리 집 가마솥보다 두꺼웠고, 손등 위 팔뚝은 긁히고 찢어졌다 꿰맨듯한 상처 투성이었다. 그 손등만 보아도 고단했을 선주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 고명딸 나이쯤 돼 보이는디 시방 처자는 올해 몇 살이요?"
"예? 계유생이어유."
"그럼 스무 살이겠구먼. 우리 딸보다 한 살 위여."
"네, 그러셔요."
"딸 위로 아들이 하나 있었는디 전쟁 때 군대에서 죽었어. 삼대독자여서 애지중지 키웠는디 전쟁이 나 부려서 징병으로 군에 입대한 지 3개월 만에 죽어 부렸어. 시신도 못찾았는디 내가 눈 감기 전에 아들 찾고 죽는 게 소원이여."
"......."
"초면에 내가 말이 많았네. 처자는 절에는 왜 가남? 뭔 사연이여? 저 뒤 사내는 삼촌인 것 같던디... ."
"네 제 동생이 지 멋대로 출가해 버려서 설득해서 집에 데려가려고 왔어요."
"아이고, 얼마나 사는 게 심 들면 출가를 결심한 거여?"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왔는디 우리 삼 남매를 좀 힘들게 했유.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생각이 많아 그런 거 같아유."
"에구, 내가 괜한 소릴 했네. 사람 사는 거 별것 없는디, 왜들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건지 시상이 참 어려워졌어. 전쟁이 다 이리 만들었제. 내처럼 가족을 잃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불구가 되기도 하고, 재산도 잃고 했으니 말여."
"네...."
그렇다. 전쟁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선주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우리가 간 절은 물때를 잘 맞춰야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썰물 때여서 다행히 절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닷물이 빠진 절 입구에 쪽배가 묶여 있었고, 갈매기들이 그 배 위에 앉아 절 손님을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절은 말 그대로 작은 암자여서 다 돌아보는데 30분도 채 안 걸릴 정도로 작았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암자는 어디에서 보아도 바다가 보였다. 삼촌이 선주를 따라 이 암자의 주지 스님을 만나러 법당 쪽으로 갔고, 난 삼촌 친구와 암자 앞에 넓게 펼쳐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다 저 끝 수평선에 시선이 머물고, 내 어릴 적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기만이와 함께 놀던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기만이가 글공부를 많이 하여 군수(郡守)라도 되기를 바라셨는지 천자문(千字文)을 시작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을 공부시키고 소학(小學)에 대학(大學) 중용(中庸)까지 한문 공부를 고집스럽게 시켰셨고, 그 어려운 공부를 기만이는 군소리 없이 해냈다. 난 그때 기만이를 따라 소학언해(小學諺解)를 읽곤 했다.
" 바다 해(海)에 앞에 있는 물 수(水) 변을 나무 목(木)으로 바꾸면 무슨 자(字) 게? "
"응, 뭐여? 생각이 안 나는디?"
뭐긴 뭐여 엄니가 좋아하는 꽃 있잖여."
"음 매화(梅花)?"
"그려. 맞구먼 매화 매(梅) 구먼. 한자 참 재밌지 않어?"
기만이가 나뭇가지로 마당에 한자를 써 가며 내게 신이 나 설명을 했고, 난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대청마루에서 곧 새로 태어날 아기가 입을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계신 어머니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엄마도 그립고 기만이도 얼릉 만나고 싶다. 그때였다. 암자 입구 쪽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기만이었다. 내 동생 기만이는 나무를 하러 갔다 왔는지 지게에 기만이 키보다 더 높이 가지런히 잘린 나무 가지들을 지고 있었고, 파랗게 보일 정도로 짧게 밀어버린 머리에 동자승들이 입는 승복을 입고 있었다.
"기만아."
"누나."
우리 남매는 두 마디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부르기만 하고 돌처럼 서 있었다. 때마침 삼촌과 선주 아저씨 그리고 주지 스님이 밖으로 다 같이 나왔다.
"워메, 경주 김 씨 장손 김기만이 워쩐 일이여? 나무를 다 해 오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삼촌의 다소 경망스러운 말투에 주지스님이 합장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읊조리셨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는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려 눈물을 훔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그저 나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해는 어느덧 기울어 서쪽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곧 바닷속으로 풍덩 자맥질이라도 할 것처럼, 파랬던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밤은 이곳 암자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밤새 기만이와 못다 한 이야기 하느라 잠을 못 잘 것 같다. 어떻게 기만이를 설득해 집으로 데려갈지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아름다운 서해 바다의 일몰도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삼촌이 준비한 공양미와 과일들을 법당 위에 정성껏 잘 차려 놓고, 절을 올렸다. 주지 스님과 기만이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供養)을 준비하는 보살님, 삼촌, 삼촌 친구, 선주 아저씨, 나 모두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각자의 마음속 소원을 빌어 본다. 선주 아저씨는 명부전(冥府殿)에 올린 죽은 아들을 보러 온 것이라고 했다. 오늘이 그 아들의 생일이라고 했다. 모두가 무얼 바라던 모두의 소원을 부처님이 들어주시면 좋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