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1

by 자강

윤가 조카가 갖다 준 식혜를 단숨에 마시고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노니는 암탉과 병아리를 보고 있자니 고향 집 생각이 났다. 큰형수와 태환이, 인환이 그리고 막내, 다섯째 형님과 그 식솔들도 잘 있는지 궁금하고 그리워지니 나도 어서 집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섯째 형님도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쟁 전에 들었으나 그 얼굴을 보지 못해 몹시 궁금했다. 형수님이 큰형수만큼 곱지 않으니 딸보단 아들이 낫다 싶다 하다가도 그 고집쟁이 형님을 그대로 닮는다면 그 또한 좀 어렵다 싶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뭘 생각하고 그리 웃남?"



"이잉, 우리 조카 말여. 다섯째 형님 장가든지 얼마 안 되고 아들 낳았는디 내가 아직 못 봤잖어. 그래서 그놈 얼굴 어찌 생겼나 상상하다 웃음 나왔구먼."



"그랴, 행님 아들 얼굴 말고 니 아들 낳을 생각이나 해라. 니 나이 이제 몇 이여? "



"내 나이 알믄서 왜 묻냐? 윤가야. 시방 니는 장가갈 처자도 있다고 위세 떠는 겨?"



"하 모르겄다. 일 핑계로 자주 못 보니께 자꾸 토라져서 올겨울 안으로 얼릉 혼사를 치러야지 싶다. 그나저나 최가야, 내 부탁이 하나 있는디 들어줄 수 있남?"



윤 가는 매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내게 하나 부탁을 했다. 그것은 큰 조카가 있는 안면도 쪽의 암자에 함께 가 줄 수 있냐는 것과 언변 좋은 내가 조카를 설득해 환속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고, 금세 그러마 하고 답을 했다. 윤가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상을 차렸다고 막내 기창이가 우릴 불렀다. 윤가의 매형과 윤가와 나는 사랑채에서 윤가의 조카들은 안채에서 밥을 먹었다. 명색이 손님이라고 나를 위해 사랑채에 저녁상을 차린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군식구인 나만 아니었다면 가족끼리 도란도란 저녁상을 함께 했을 텐데 말이다. 윤가의 누이 집에서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 같은 밥을 먹고 행복감마저 들었던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



제법 쌀쌀해진 아침 공기와 함께 아침 짓는 냄새가 코로 들어와 잠을 깼다. 냄새로 봐서 달걀찜을 한 모양이다. 엊저녁에 마당에서 놀던 암탉이 낳은 달걀로 만든 것이겠지. 가만히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 나를 윤가가 툭 친다.



"뭐 하는 겨 시방?"



"밥 냄새 맡는다."



"그려 병원 생활 오래 해서 집밥이 그리웠재? 밥 먹고 길을 나서려면 서둘러야겄다."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달리 안채의 대청마루에서 모두 다 함께 밥을 먹었다. 새우젓을 넣은 달걀찜과 화로에 구운 김은 입맛 없는 서늘한 아침에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아침부터 갈 길이 먼데 조반까지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설거지는 따로 할 것 없이 서둘러 출발해라."



윤가 매형이 딸에게 이르는 말에 윤가가 대답을 헌다.



"그래야겠지요. 안면도까지 가려면 배도 타야 하고 배 시간도 알아봐야 하니까 유."



설거지도 하지 말라 했는데 윤가의 조카는 뭘 하는지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윤가와 담배를 태우며 잠시 기다리자 조카가 나왔다. 그렇게 셋이서 윤가의 차에 몸을 싣고 안면도까지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광천 독배로 향했다. 우리가 배를 타는 독배는 옹암리 포구가 원 지명인데 이곳 광천 사람들에겐 독배로 더 알려졌다.

독배까지 가는 길이 멀다 보니 차멀미를 한다는 조카가 걱정이 되었으나 어느새 잠이 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독배까지 가는 길은 신작로가 나지 않은 길이어서 생각보다 길어 1시간도 넘게 걸렸다. 가는 길에 윤가와 나는 둘째 조카 기만이의 출가 이야기를 나누며 갔고, 큰 조카는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잤다. 독배에 다다랐을 때 덜컹거리는 차 유리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잠에서 깼다.



"깼구먼. 고단했던 거여? 코 골고 자드만."



"삼촌, 무슨 소리 하셔요? 전 자면서 코 안 골아요."



"지금 내 거짓말이라도 한 줄 아냐? 야, 최가 니도 들었제?"



"......."



나는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고 이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차에서 먼저 내렸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윤가와 조카가 남매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도 저런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윤가가 배편을 알아보러 선착장으로 갔다. 그리고 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조카가 있는 차로 다가갔는데 그런 나를 그 아이가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 걱정 많이 되지? 살다 보면 세상과 등지고 싶은 때가 있지. 나도 전쟁통에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근데요. 왜 반말해 유?"



"친구 조카인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내 큰 형님 큰 아들이 조카님 큰 동생이랑 나이가 같은데 ..."



"그래요? 그 조카는 지금 뭐 해요?"



"전쟁 전 군입대하기 전에 보고 여태 못 봐서 잘 모르지만, 멋진 청년이 되었을 거야."



"그걸 어찌 알아요? 7,8 년을 못 봤는디."



"큰 형님 닮아 키도 훤칠하고 형수 닮아 잘생긴 데다 심성도 올곧은 아이였거든."



나는 큰 형님이 없는 하늘 아래 힘들게 자라 온 내 조카 태환이 얘기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걸 눈치챈 윤가의 조카는 말이 없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르고 윤서가 왔고, 갈 길 바쁜 우리는 안면도에 새우젓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를 타기로 했다. 승객을 태우는 목적이 아니니 배는 마땅히 앉을자리도 없었다. 뱃사람들에겐 파도 위에서 출렁거리는 배가 일상일 터이지만, 배를 처음 타는 윤가의 조카는 심하게 출렁거리는 작은 배에서 멀미를 허는 듯했다.



"니 옹암리 포구 처음 와 봤지?"



"그렇지. 내가 사는 장곡에서 옹암 포구꺼지 올 일이 뭐 있겄냐? 엄니가 독배에서 나는 새우젓이 최고라고 김장 때마다 독배 새우젓 사 온 것 먹어 봤어두 직접 오진 않았지."



"그려 그 독배가 옹암리 포구여. 광천 사람들은 독배라고 더 많이 부르지만 옹암리 포구는 강경이랑 서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수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여. 글구 특히 독배 토굴 새우젓은 조선 시대 임금님께 진상되었을 정도로 그 맛이 좋은 거 니도 알지? 우리 넷째 형님이 이곳에서 토굴 새우젓 만드는 데서 굴을 파는 일 허다가 우리 부대가 있는 옹진 광산에 간 거구먼."



"그려 셋째 형님은 지금 워디 계신겨?"



"전쟁 전에 폐병 나서 고향 내려가신 뒤 소식 끊겼지."



윤가와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안면도가 섬이 된 사연을 말하다 보니 어느덧 배는 안면도 작은 포구에 도착을 했다. 윤 가는 새우젓 배의 선장에게 우리 세 사람의 배 삯을 지불했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절을 찾아가기 위한 차편을 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편을 구하지 못했고, 이 오지 섬에서 절까지 가는 방법은 오로지 두 발로 걸어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전처럼 몸이 성할 때는 몇십 리를 걸어도 끝덕없었으나 다리 하나를 앓은 채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어야 한다는 걱정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해는 이미 저물기 시작해 땅거미가 스멀스멀 드리워졌고, 윤 가는 우리 일행이 잠잘 방을 잡았고, 그렇게 그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절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믐을 지난 초하루 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으나 나는 내일 아침이 더디 오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