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아침이 더디 오기를 바라며 뒤척이느라 깊은 잠을 못 잤음에도 일찍 눈이 떠졌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 맞는 일출은 농촌 마을에서 바라보는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푸른 바다를 빨갛게 물들인 해는 그 시뻘건 얼굴을 쏘옥 수평선 위로 들이밀더니 급기야 푸른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을 허물어 버린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관이라 생각하던 차에 변소에 들렸다 나온 윤가가 다가왔다.
" 머리털 나고 첨 보는 바다 일출이다. 니는 전에 본 적 있냐? 최가야."
"전쟁 나기 전 옹진 초소에서 본 적이 있다만 서해에서 뜨는 해가 동해에서 뜨는 해처럼 느껴지는 건 처음이여."
"그렇구먼, 워따 참으로 멋진 장관이다. 그나저나 우리 면도 좀 허자. 니나 나나 면도 며칠 안 했다고 도적놈 다 돼 부렸어."
윤 가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방에서 면도칼과 손거울을 챙겨 왔다.
"그런 것까지 챙겨 오고 정신이 좋구먼."
"말 말어라. 내 장가들라고 외모에 신경 좀 많이 쓴다. 서울 여자들은 우리 고향 순박한 여자애들 하곤 달라서 행색이 추리라면 싫어한다니까. 좀 있어 보이려면 머리며 수염이며 관리해야니께 들고 다니는 겨."
자 이리 와봐 턱에 거품부터 바르고 밀어야제 안 그럼 피부 까지단 말이제."
윤 가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내 얼굴에 비누 거품을 발라댄다. 나도 이에 질세라 윤가 녀석 얼굴에 거품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을 때였다. 방에서 자고 있던 조카가 깨었는지 인기척이 났다. 나는 곧바로 방문 한구석에 낸 유리로 장난치는 우리를 지켜보는 눈을 발견했다. 윤가의 조카였다. 윤가도 그 인기척을 들었는지 조카를 향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일어났는 감? 내외하지 말고 어여 나와 씻고, 밥 먹으러 가자."
윤가의 말을 듣고 놀랐는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조카아이가 나왔다. 윤 가는 아침밥으로 게국지를 먹자고 하는데 조카가 좋아할는지 모르겠다.
"여기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 게국지라는 디 아침으로 먹고 가자."
"아 게국지 싫은데, 뭐 다른 거 없어요?."
윤가의 조카는 마름 집 딸로 곱게 자라서 그런가 게국지가 싫은지 육고기를 찾는다.
"바닷가 사람들이 니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겄냐? 기냥 먹고, 기만이 데리고 집에 가면 소고기 끊어서 니가 잘하는 육개장 해 먹자. 워뗘? 괜찮지?"
"알겄어요. 좀 기다려 줘요."
조카는 방에 들어가고도 한참이 지나서 나왔고, 우린 아침밥을 먹기 위해 윤가가 안내하는 곳으로 갔다. 윤 가가 데리고 간 밥집은 우리가 잠을 잔 집주인의 안사람이 하는 밥집이었다. 포구 앞에서 음식을 제일 잘한다는 그 집은 술과 밥을 함께 파는 밥집이었다. 윤 가는 게국지와 막걸리 두 잔을 주문했고, 조카는 공깃밥에 게국지만 먹었다. 그런데 배가 고팠던 건지 윤가의 조카는 게국지를 아주 맛나게 먹었고 흡족해했다.
밥을 먹고 나니 내가 어젯밤부터 걱정하던 일이 눈앞에 닥쳤다. 이젠 절까지 걸어서 두어 시간이 걸린다 하니 출발하기 전 허리띠를 고쳐 매고 지팡이를 단단히 챙겼다. 그때였다. 어제 타고 온 배의 선주가 우리가 있는 식당에 찾아왔다. 선주는 마침 우리가 가려던 절에 주지 스님을 만날 일이 있어 새우젓 트럭을 타도된다면 같이 가자고 했다. 이는 천우신조(天佑神助) 인가? 그 덕에 우리는 걸어가지 않고 새우젓 트럭을 얻어 탈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윤가와 나는 새우젓 도라무깡을 싣는 짐칸에 타고 조카는 선주가 운전하는 운전석 옆에 앉아 절로 향했다. 30년은 족히 더 되는 세월 동안 뱃일을 한 선주는 깊이 팬 이마 주름과 상처투성이인 팔만 보아도 힘겹게 살아왔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선주와 조카는 절까지 가는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듯했고, 나와 윤 가는 윤가의 생질을 설득한 묘책을 의논했다.
"최가야, 니가 알다시피 우리 누이 큰 아들이 머리 좋고 글공부도 많이 한 인재인디 바닷가 암자에서 머리 깎고 불경이나 외우고 있을 건 아니잖어."
"......."
"내 죽어서 누이 보기도 그렇고 매형이 누이 죽은 뒤로도 나 몰라라 안 허고 내 뒷바라지해 준 것 생각해서라도 저놈의 자식 꼭 집으로 데려가려 하는데 니가 꼭 좀 도와줘야겄다. 긍께 니도 어찌할 방도를 찾아봐 주라. 내 이 번 일은 꼭 갚을 건 게. 알았지."
"그럼 니는 왜 생질이 중리 된 거 같은디? 알만한 거 있남?"
"글씨, 그렁게 매형이 시대에 안 맞은 글공부만 시키고 지들 엄마 죽고 새엄마 들어와 힘들게 한 게 힘들지 않았나 싶은데..."
"그럼 윤가 니가 생질들 데리고 서울 올라가야겄다. 서울에서 가술을 배우던 공부를 허던 신식 공부도 시키고 집을 나놔야 하지 않겄냐?"
"그럼 우리 큰 조카만 남는디 우짜냐?"
"그 애는 시집가면 될 것 아녀. 동생들 니가 서울 데리고 가서 잘 건사하면 오히려 맘 놓고 시집가두 될 것 같은디."
"듣고 보니 그라네, 사돈어른이랑 매형 잘 설득해 볼 테니께 넌 우리 생질 맘이나 돌려놔 봐, 알았지."
윤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생각보다 빨리 암자에 이르렀다. 우린 트럭에서 내려 바닷물이 빠진 길을 따라 암자로 들어섰다. 선주와 윤 가는 암자의 주지 스님을 찾으러 갔고, 적막한 암자 마당에 나와 윤가 조카는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입구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윤가의 조카눈 등에 지게를 매고 있는 스님의 이름을 불렀다.
"기만아."
"누나."
남매의 상봉이다. 서로를 부른 뒤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어붙은 모습에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몸을 하고 돌아가기는 더욱 싫지만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니 부처님 공양 전에서 마음을 다잡아 봐야겠다. 때마침 윤 가와 선주, 주지 스님이 밖으로 다 같이 나왔다.
"워메, 경주 김 씨 장손 김기만이 워쩐 일이여? 나무를 다 해 오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윤가 녀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지 스님이 합장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린다.
그렇게 오늘 만나야 할 이들은 모두가 모이고 부처님 전에 공양을 드리러 법당에 모여 절을 올린다. 선주는 명부전(冥府殿)에 올린 죽은 아들을 보러 온 것이라고 했다. 오늘이 그 아들의 생일이라고 했다. 각자가 바라는 바를 빌어 보는 이 자리 부처님이 들어주시라 믿는다.
* 다음 이야기는 <역사 앞에서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