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난 다음날 큰형수를 모시러 형수님의 친정집을 가기로 했다. 태환이와 인환이 두 조카도 함께 데리고 가자니 아침밥을 먹고 가야 해서 막내 형수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데 불만이 가득한 형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시방 니 큰형수 친정집에 간다고 한 겨?"
"예."
"아니, 넘들 보는 눈도 있고, 당장 살 집도 없는디 어떻게 하려고 그리 서두르는 겨?"
"아니, 형님. 그라믄 큰형수가 눈이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디 자슥들하고 생이별 헌 채로 사는 게 맞는 거유?"
"아니, 그건 아니다만 당장 대책을 세워놓고 가야지 우짤라고 그러나 싶어 그러지."
"형님, 원래 이 집은 큰 형님이 살아 계실 적엔 큰 형수가 안주인 아니었든 감유? 큰 형님 돌아가시고도 우리 집 제일 어른이었는디 전쟁통에 변고로 그리된 사람을 위로는 못 해주고 친정으로 보낸 사람이 누군디 그리 말씀 허시는 거유. 참말로. 그러면 안 되지유. 아니 막내 형수가 그런 일 당해도 그리 헐 참이유?"
"뭐여? 니 시방 뭐라 하는 겨? 니가 애들 앞에서 못 허는 말이 없다잉?"
"잘못은 형님이 먼저 했잖유. 그러지 마슈
형님 징용 갔을 때도 큰 형님이 어떻게 하시었는지 알기나 허고 그러시는 거여유? 제발 그만 좀 허슈."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겨? 이놈아."
"자, 태환이 인환이 그만 가자. 엄니 모시러 가야지."
나는 막내 형님의 가당치도 않는 소리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아이도 나를 따라나선다. 그런 나를 막내 형수가 잡아보지만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형님과의 사이는 당분간 좋아질 것 같진 않았다.
"태환아, 인환아 니들 많이 놀랐지? 작은 아버지가 헌 말 맘에 담지 말고 삼촌 말만 믿고 따러 와라 잉."
"예."
큰 형수가 있는 친정집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날은 11월로 들어서 바람이 부니 좀 찼다. 나는 아이들이 감기라도 들면 안 된다 싶어 솜을 넣어 누빈 바지를 챙겨 입게 하고 길을 나섰다. 아이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장성하여 나보다도 더 잘 걸었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걷는 내가 오히려 뒤처졌다. 그런 내가 걱정되는지 큰 아이가 나와 보조를 맞춰 걷는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난 둘째 인환이는 껑충껑충 거리며 한참을 앞서가고 길가 도랑을 따라 실개천 물이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가다 보니 해는 중천에 걸렸고, 큰 형수 친정집이 있는 마을 초입에 다다랐다.
"삼춘, 벌써 엄니 집 다 왔는데 유. 저 느티나무 지나면 외갓집이 보이는 구먼유."
"그래 우리 조금만 힘을 더 내자."
아이들은 실상 지친 기색이 없다. 지친 건 나뿐이다. 지팡이 짚은 손은 굳은살이 배겨 딱딱해지고, 의족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모든 것이 내겐 아직도 힘겨운 것이다.
아이들이 말한 느티나무까지 가는 데는 몇 분이 더 걸렸고, 느티나무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립문이 있는 작은 초가집이 보였다. 큰 형수의 친정집이다. 큰 형님이 살아 계실 때조차도 한 번도 안 와 봤던 큰 형수의 친정집을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그저 하늘에 계신 큰 형님께 죄스러울 뿐이다.
"엄마, 엄마"
둘째 인환이가 부르는 소리에 안방 문이 열리고 사슴 눈망울을 한 큰 형수가 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여? 인환아, 태환아... 도련님."
모자 상봉이 이뤄지고 눈물바다가 된 정경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난 고개를 사립문 밖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큰 형수가 눈물을 훔치며 나를 향해 왔다.
"에구머니나, 도련님 다리가 왜 그러유?"
"...... "
"시상에나, 전쟁통에 다쳤다는 소리는 들었는디 이맨큼이나 다친 줄 몰랐는디 어떻게 살아오셨유?"
"지송해유 형수님..."
"아이고 도련님..."
큰 형수는 나를 보고 크게 놀라 울음을 그칠 줄 몰라하고 막내 질녀가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왔다.
"도련님 우선 방으로 들어가셔유. 시장하실 테니 밥부터 드시구유. 니들도 어여 방에 가 쉬고들 있구 알았제. "
"예."
형수는 울음을 그치고 우리에게 먹일 밥을 차리러 부엌으로 가고 두 아이와 난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에 시집올 때도 가세가 기울어 변변한 살림살이도 못 가져왔다던 큰 형수는 여전히 빈곤한 삶을 살고 있었다. 벽지를 바른 지는 오래되었는지 군데군데 종이가 찢겨 있고, 벽에 걸린 시렁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방에 형님의 영정 사진과 형님과 형수가 찍은 결혼사진만 달랑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사진 속 큰 형님 모습에 시선이 머물러 한참을 바라보았다.
1944년 큰 형님이 돌아가신 던 해 병석에 누워 계시던 큰 형님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내 손을 부여잡고 당부의 말씀을 허셨다.
"모석아,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너에게 형수와 애들을 부탁하고 가야 할 것 같구나."
"형님, 큰 형수가 그리 걱정되면 힘을 채리시고 일어나셔서 지켜드리야지. 우째 그리 말씀 하신대유?"
"미안타, 내가 떠나고 큰 형수가 힘들 때 힘이 되어 주고, 혹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나 대신 짝을 지어주거라. 젊은 나이에 시집와서 고생만 허구 앞으로 살 날이 많을 텐데 홀로 세 아이를 키우기 어려우니 반드시 그리해 다오."
"형님, 그런 말씀은 마시고 기운 차리고 일어나기나 해유."
나는 큰 형님의 마지막 당부를 들으며 큰 형님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삼일 후 나는 어머니로부터 큰 형님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