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그늘

by 자강



박 지주 집을 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막내 형님은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걷기만 했다. 내가 평소 성품과는 다르게 그리 성정이 거칠어져 말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기도 했겠지만, 박 지주에게 받아 돌밭을 농사 지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밭이 아까워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삼춘, 언제 집에 오신 거 여유? 다리는 또 왜 절구유? 괜찮으신 감유?"


큰 아이 태환이가 걱정 어린 말투로 내게 물었다.


"이잉, 이제 아주 돌아왔어. 다시는 집 안 떠날 거구먼. 그리고 다리는 전쟁 중에 인민군이랑 싸우다 이리되었다."


"을매나 다친 거유? 이 가짜 다리하고 평생 살아야 하남유?"


조금 어린 둘째가 물으니 큰 아이가 눈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줘어 박는다.


"왜 때리는 겨? 성은 삼춘이 이리되었는데 속상허지도 않은 겨?"


"야, 나라고 속이 안 상하겄냐? 속 상한 거로 치면 우덜보다 삼춘이 더할 건디 그걸 말해서 뭣허냐. 니는 시방 생각이 있는 겨 없는 겨? 이잉."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덧 우리 마을에 다다랐고 일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촌 형님이 마을 당산나무까지 마중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고, 참말로 고생 많았구먼. 워디 아픈 데는 없는 겨?"


사촌 형님은 두 아이를 보자 멋쩍고 미안한 맘에 횡설수설하며 나와 막내 형님의 눈치를 살폈다.


"자는 화가 많이 난 거 같으니 박 지주헌테 어찌 말하고 애들 데려온 겨?"


"애들 안 내놓으면 다 죽여버린다고 허고 데려 왔유."


"박 지주 그 사람 보통이 아닌디 니 으름장에 겁을 많이 먹었나 벼. 그려 애들 데려오고 밭은 돌려주기로 헌 거여? 모철이가 그 밭 지극 정성으로 개간했는디 아깝게 됐구먼."


"형님, 그깟 밭뙈기가 애들보다 귀한 거여유? 사람이면 양심이 있으야지. 지 조카 팔어서 땅 얻는 놈이 워디 있유. 처자식도 없는 이가 아니고서야 그럼 안 되지유."


"그랴 니 말이 맞구먼. 어린것들이 뭔 죄를 지었다고... 그리하면 안 되지."


사촌 형님은 내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허고 걸음을 재촉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태환아, 내 친정 간 니 엄니랑 막내 동생도 다시 집으로 데려와 다 같이 살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거라. 알겄지."


"삼춘 참말이유? 그리 된다면 전 삼춘이 하라는 건 죄다 할 거구먼유. 우리 엄니 꼭 데려와 줄거지유?"


나는 두 번 세 번 묻는 아이에게 다짐을 해주고 두 아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막내 형수는 이미 형님이 집을 들어가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두운 낯빛으로 나와 두 아이를 맞았다.


"어이구, 어서 오니라. 그간 고생 많었제? 내가 미안타. 니들 돌봐줘야 할 판에 머슴살이나 시키구. 그렇다구 니들 작은아버지 너무 미워말어. 알겄지?"


막내형수는 그래도 남편이라고 막내형님을 감싸고돈다. 징용 갔다 온 후로 유난히 땅에 집착하는 막내형님이 가여워지는 것이 형제애가 꿈틀거려서인지 힘없는 나라의 같은 족속으로 아픔을 공유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없던 악이라는 악은 끌어다 다 소진한 탓인지 집에 돌아오니 온 힘이 빠지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져 저녁도 먹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두 아이는 데려왔으니 되었고, 이젠 큰 형수와 막내만 데려올 일만 남았다. 그리할라면 당장 집부터 마련해야 하는디 무슨 수로 네 식구가 살 집을 마련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장 급한 대로 아부지가 서당으로 쓰시던 집을 고쳐 살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났지만, 아부지 돌아가신 후로 버려진 집을 고치는데 얼마 간의 돈이 필요할 것이기에 그 돈을 장만해야 한다. 막내 형님에게 이야기해 봤자 이도 안 들어갈 터이고 아쉬운 대로 윤에게 임시변통을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저녁밥을 다 먹었는지 태환이와 인환이가 사랑채로 건너와 나를 찾았다.


"삼춘, 들어가도 돼유?"


"그랴, 어여 들어와."


"삼춘, 엄니는 언제 모시러 가유?"


"잉, 내일 당장 가 보려고 허는디 니들도 같이 가면 쓰겄다. 니들 엄마 못 본 지 얼마나 되었냐?"


"전쟁 끝나기 전이니께 1년은 더 됐어유."


"에구 그려 고단 헐 테니 어여 씻고 와라. 네 이부자리 깔아 놓을 테니."


어린 나이에 아비를 여의고 그 끔찍한 전쟁을 겪어낸 어린것들이 엄마마저 헤어져 살았으니 그 슬픔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어두운 전쟁의 그늘은 아이들에게까지 드리워졌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