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을 물리고 형님과 나는 그간 지나온 이야기를 하러 사랑채로 향했다. 대청마루에서 내려와 의족에 신발을 신기고 있는 나를 형님의 둘째 아들인 어린 조카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니 삼촌 처음 보지? "
아이는 답이 없다.
"삼촌 다리가 이상하지? 전쟁통에 포탄을 맞아서 이리되었어. 삼촌 다리 보니께 무서운 겨?."
"아니유. 우리 동네 친구 아버지도 목수 일하다 전쟁 나고 팔 하나를 잃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디유. 그 친구가 맨날 양조장으로 막걸리 사러 심부름 가는 거 봤유."
"그랴? 그럼 그 친구는 핵교는 댕기는 겨?"
"워디유. 아부지가 그리되고부터는 그 친구 엄니가 열무도 팔러 다니고 읍내까지 품 팔러 댕겨서 엄마 대신 집안일하느라 핵교 안 다닌 지 꽤 됐유."
"그런 사정이 있구먼 딱 허기도 하다."
"삼촌은 그럼 우째 살아 가실라구유?"
내 옆에서 어린 조카가 제법 어른스럽게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게 어찌 살아야 할까? 나 역시 그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니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겨. 삼촌 성가시게 하지 말고 어여 방에 가서 내일 핵교 갈 준비 하고 자라."
조카아이가 나를 성가시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형님이 조카아이를 나무란다. 사실 아이는 날 성가시게 한 것이 아니라 각성하게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니던가.
형님은 나를 재촉하여 빨리 사랑채로 건너가자고 한다. 나는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신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사랑채로 갔다. 형님을 따라 사랑채로 가니 농사일에 진심인 형님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정리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큰 형님이 쓰시던 사랑채에는 온갖 책들이 가득해서 학교 도서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각종 농기구와 종자를 담은 봉투들로 채워진 마당과 마루는 옛날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낯설기만 했다.
"아니, 부산 병원에서 퇴원한 지가 언제인디 이제야 온 거여?"
"윤 가가 서울 중앙청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잠깐 들러 보고 오다 보니께 이리 늦었유. 근디 큰형수랑 큰 형님 애들은 다들 어디 간 거유?"
"아, 그게 말이지 말여. 참 내도 난감허다."
"왜 유? 뭔 일 있어유?"
"큰형수가 말이다. 전쟁통에 큰일을 당하고 애를 낳았는디 그 애가 죽었어. 그 일이 있고 형수는 친정으로 가고 애들은 머슴 살러 갔다."
"형님, 지금 뭐라 말허는 거유? 형수랑 애들이 우째 되었다고 유?"
"내도 별 수가 읎었다. 형수가 그리되고 내 식솔 거느리기도 힘든 판에 그 애들까지 다 건사하기 힘들어서 지들 밥은 굶지 말라고 머슴 보낸 게 뭐 그리 잘못했다고 그러냐? 니는 다리가 고 모양 돼 가지고 병원에 누워있지 형수는 동네 사람들이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 허지. 참말이지 집에 같이 살기 힘들었어."
"아무리 그렇다고 그리하면 되겄유? 형님. 큰 형님 생각하믄 그리하면 안 되지유."
나는 막내 형님의 어이없는 처사에도 화가 났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지긋한 병상에서 누워 내 신세만 한탄하고 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주채할 수 없는 화로 연속 소리를 질렀고, 그 누구도 나를 말리는 이가 없었다. 나의 분노는 옆집에 사는 작은 집 식구들까지 귀에 들어갔는지 작은 아버지와 사촌 큰 형님까지 집으로 발걸음을 했다.
"아니 이게 누구여? 모석이 아녀?"
"작은 아버지 오셨유?"
"내가 시방 니 인사나 듣자고 온 줄 아는 겨? 모석인 언제 온겨? 그라고 왜 저리 통곡하고 있는 겨?"
"예, 큰형수 일 듣고 저러는 구만유."
"그러게, 왜 애들까지 머슴 보내서 저런 사단을 만든 겨. 니 자 승질 물러서 그런 겨? 내일이라도 당장 두 아이 집으로 데려와야지 그리 안 하면 그냥 끝나진 않을 겨."
작은 아버지는 형님에게 뭐라 한참을 말씀하시고 내겐 말도 없이 댁으로 가셨고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들을 다시 데려올 방도를 생각했다. 형님은 작은 아버님 배웅을 하고 나서 내 눈치만 보다 안채로 들어갔고, 나는 홀로 사랑채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전쟁으로 불구가 된 건 나만이 아니었다. 큰형수와 태환이, 인환이 그리고 이름도 아직 모르는 막내까지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큰 형님 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유? 제게 이 상황을 헤쳐갈 힘을 주세유.'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다음날 아침. 난 막내 형님을 앞세워 두 아이가 머슴을 살고 있다는 이웃 마을 박 지주 집을 찾아갔다.
"형님, 혹시 저 애들 머슴 보내면서 받은 돈 있어유?"
"돈은 안 받었구. 돌 투성이 밭뙈기 좀 받았는디..."
"지금 뭐라 하셨유? 아니 애들은 그 땅뙈기 좀 받고 팔어 먹은 거여 시방."
"네가 뭘 팔어 묵었다고 그랴."
"애들 머슴 보내고 박 지주헌테 밭떼기 받았다면서유 지금."
형님이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박 지주라는 이가 마당으로 나왔다.
"아이고, 최서방이 어쩐 일이여?"
"저기유, 시방 여기 우리 애들이 머슴 산다고 왔다는디. 그 애들 당장 데려오슈."
"누구신디 우리 머슴 애들 찾으슈?"
나는 모르쇠 하고 있는 박 지주를 향해 큰소리로 삿대질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어디서 수작이여. 내 새끼들 데려오라 말여. 내가 누군지 알고 시방 그러는 겨. 내는 전쟁통에 인민군을 수도 없이 죽인 사람이고, 니까짓 것들 수십이 덤벼도 끄떡없는 놈이여. 나 건드리면 니들 먼저 죽는 것일 테니께 어여 우리 애들 데려와."
나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찾았고, 박 지주라는 이는 나의 으름장에 지레 겁먹은 얼굴로 사람을 시켜 두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아니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디 잠깐 기다려 보슈."
난 머슴 오는 대가로 받은 밭뙈기는 다시 가져가라고 말하고 두 아이를 그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두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삼춘 ..."
전쟁이 나기 전 보고 7년이 더 흘러 본 두 아이는 몰라보게 장성했건만, 나를 보자마자 내 품에 안겨 눈물만 흘리는 어린아이였다. 이렇게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