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by 자강




한 시간 가량 새우젓 트럭을 타고 안면도 포구에 도착한 일행과 나는 선주님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윤은 서울을 방문하면 꼭 뵙자며 선주님께 연락처를 주었고 윤의 두 조카는 뭍으로 오면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두 손을 가지런히 합장한 채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안면도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선주 님의 새우젓 배를 타고 다시 윤가의 차가 있는 옹암 포구로 갈 수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배는 옹암 포구에 닿았고, 이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지만 윤가 일행과 달리 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다시 윤 가를 따라 서울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차피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니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해결되었지 싶다. 너도 이젠 고향 집 가야 허고, 마침내 누이 집 가는 길에 니 고향마을 지나가니께 니 집까지 태워다 주면 되겄제?"

"아녀, 갈 길이 뭔데 기냥 읍내에 내려줘."

"야, 니 그 몸으로 읍내에서 고향 집까지 걸어갈 판이여? 옛날 같지 않으니께 자존심 세우지 말고 내 말대로 혀. 조카들도 그리해야 맘이 편할 거고, 어여 타."

윤 가의 말처럼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읍내에서 고향 집까지 25리는 족히 걸어가는 것은 무리라 생각해 하는 수없이 차에 몸을 실었다. 차는 독배를 출발해 읍내를 지나 하천 위 다리를 건너 둑길을 따라 달린다. 저 멀리 보이는 오서산 아래 내 고향 집이 있다. 이맘때면 억새가 아름다운 오서산이 저 멀리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전쟁이 나기 일 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입대를 했지만 전쟁이 나고 몸이 이리되고 보니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큰형수와 태환이, 인환이 다섯째 큰 형님과 아직 얼굴도 못 본 다섯째 형수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향 집까지 가는 이 길이 가시밭길처럼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저기유. 덕분에 우리 기만이 데리고 가게 되었유. 증말 고맙고먼유. 고향 집 가셨다가 정리되시면 삼촌이랑 서울에서 한 번 뵈어유."

"응, 그랴. 기만이 기창이 내 둘 다 서울로 데려갈라 하니께 니도 집안 식구들 만나 회포 풀고 다시 상경해라. 내가 니 일자리도 만들어 놓고 할 테니께."

나는 윤 가의 말에 그러마 하고 짧게 답을 하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담산리 마을에 들어서고 돌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차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는 어느덧 고향 집 당산나무 앞에 도착을 했다.

"워따, 이제 정말 헤어지는가. 최 가야, 암튼 빠른 시일 내에 서울에서 다시 보자. 내 이제 간다. 연락하마."

"안녕히 가셔유."

윤 가와 두 조카가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작은 가방 하나와 지팡이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나를 내려 준 윤 가의 차는 흙길 위를 달려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멀어졌다.

차에서 내린 나는 지팡이를 고쳐 잡고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을 내딛자마자 다섯째 형님이 징용 가던 날 모두가 무사히 다시 돌아오기를 빌던 굿을 한 고향 마을 당산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는 여전히 전쟁통에도 굳건하게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세 갈래로 갈라진 골목길에서 우리 집이 있는 오른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면도 암자에서 출발할 때는 아침이었던 시간은 두 개의 포구와 읍내를 거쳐 고향 집까지 오는데 하루 해가 다 가는 시간이 걸리다 보니 집마다 저녁밥을 짓느라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무렵이 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나의 걸음은 더디었고, 그 덕에 나는 몸이 성할 땐 보이지 않던 길 옆 텃밭에 심어진 배추와 무를 보며 걸었다.
발걸음을 더 옮기니 작은 아버님과 사촌 형님이 사시는 집의 감나무가 보인다. 감나무는 못 본 사이 훌쩍 커버려 가지를 주채하지 못하고 담장 밖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감나무를 보며 저 담장을 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군분투했을까 하는 생각이 미쳐 감나무에게 조차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 이젠 그리도 그리워하던 내 고향 집 대문 앞에 닿았다. 아직 대문을 걸지 않아 앞마당이 보이고, 닭들이 흙을 쪼고 있는데 집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형수님, 태환아, 인환아..."

불러도 답이 없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안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낯선 여인이 밥을 하다 나오는지 머리에는 무명천을 두르고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밖으로 나왔다.

"누구신지유? 서방님은 아직 논에서 안 오셨는디유."

나는 부엌에서 나오는 여인을 보는 순간 생각했다.

'아, 저분이 다섯째 형수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형수님. 저 이 집 막내입니다."

"아이구, 지송혀유 되련님. 지가 되련님을 첨 봐서 못 알아봤구먼유. 성님 이젠 오실 때 되었으니께 우선 저짝으로 앉으시유."

다섯째 형수나 나나 서로 처음 보는지라 멋쩍고 어색한 터인데 큰 형수와 이이들은 보이지 않으니 나는 도통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더 궁금해졌다. 전쟁 전 넷째 형님의 편지에서는 고향 집 식구들이 다 무탈하다 했는데 전쟁 통에 죽은 것인지 무슨 변고를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속이 마구 타 들어갔다.

"형수님, 큰형수님은 어디 가셨는가요? 집에 안 계시네요. 조카들도 안 보이고."

"그게 말이어유..."

다섯째 형수라는 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큰형수와 다르게 땅딸한 키에 옆으로만 퍼진 몸을 한 형수는 작정하고 무슨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서 있다.

그때였다. 등에 지게를 메고 손에는 낫 두 개를 들고 집으로 들어서는 이는 다름 아닌 다섯째 형님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여. 모석이 아녀."

형님은 나를 보자마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고, 내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니가 부산 병상에서 보낸 편지와 윤 가 녀석이 전해준 소식으로 다쳤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만 워찌 된거여? 다리 하나는 워따 버리고 온 겨? 걸을 순 있남?..."

형님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고 그로 인해 난 내가 묻고 싶은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나는 계속되는 형님의 질문에 차차 답을 허기로 하고, 지금은 다섯째 형님의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쓰고 있는 내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짐을 풀고 저녁밥이 다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청마루가 있는 안채로 갔다.

저녁상은 조촐했다. 보리밥에 김치, 배추 된장국 그리고 무장아찌. 구두쇠 형님 탓에 한창 자랄 조카들에게 고기는 아니어도 생선 한 마리 오르지 않은 식탁이 내가 다 미안했다. 전쟁 전 집을 떠나고 삼 년의 전쟁을 치러 돌아온 고향 집은 예전의 그 집이 아닌 것 같아 너무나 낯설었다. 큰형수와 아이들, 어머니가 없는 고향 집. 삼 년의 전쟁은 우리들 모두를 낯선 타인으로 만든 거 같아 서글픔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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