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속(還俗) 1

by 자강



발우 공양이 끝나고 뒷정리를 끝낸 윤가의 조카는 동생과 함께 그간 밀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인지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담배를 태우러 가자는 윤가의 말에 암자를 나와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작은 어촌 마을은 전깃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한 밤중이 아닌데도 사방이 깜깜했다.

"그나저나 최가야, 내일 기만이 설득해서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디 니 무슨 방도가 있는 겨?"

"뭐 뾰족한 수가 있겄냐. 기냥 내가 전쟁통에 다리 잃고 죽을 고비까지 갔다가 다시 살게 된 얘기나 해줄라고 헌다."

"이잉 그려. 기만이 속만큼 니 속도 어지러울 테니께 좋을 때로 해봐. 기만이가 중 된다는 소리만 안 하면 내는 뭐든지 다 해줄 참이여. 공부를 하고 싶다면 공부시켜주고, 서울살이 하고 싶다면 방도 얻어 줄 거구먼."

"그려, 그래야지. 돌아가신 누이 볼 면목이라도 있을라면 니는 그리해야 할 것이여. 늦었는디 이제 우리도 들어가 잠이나 자자."

깊어진 가을의 밤공기는 제법 서늘하여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밤이다. 윤가와 나는 주지스님과 선주님이 주무시는 방에서 잠을 잤는데 당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자 주지 스님이 일어나 새벽 공양을 위해 먼저 법당으로 가시고 나와 윤가도 함께 곧 일어났다. 그리고 윤가는 기만이 조카를 조용히 불러 데리고 나왔다.

"기만이 잘 잤냐?"

"네, 삼촌."

"그랴, 그럼 우리 마을에 좀 내려갔다 올까 하는디 같이 가 볼텨?"

기만이는 윤가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무작정 암자를 나가 마을 어귀 쪽으로 난 길로 향한다. 물때가 길이 드러난 시각이어서 쪽배로 건너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선술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같이 뱃일을 나가는 어부들을 위해 국밥을 파는 가게 밖으로 풍기는 국밥 냄새가 구수했다.

"기만아, 니 스님 되었다고 고기 안 먹은 지 꽤 되지? 오늘 눈 딱 감고 한 번 먹을래?"

기만이 조카는 역시 대답을 않고 가게로 향한다.

"니는 삼촌 말에 왜 대답은 안 허고 몸이 먼저 말허냐. 입은 뭐 멋으로 달고 댕기는 거여?"

"에휴, 삼촌 왜 그리 말이 많어유. 기냥 그런가 하면 안 돼요?"

"아, 그게 또 그런겨?

눈치 없게 연신 떠들어 되는 윤가에게 기만이 조카가 한 마디를 했고. 나 역시 쉴 새 없이 떠들어 되는 윤가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자 막걸리에 국밥을 먹고 있던 동네 사내들의 시선이 온통 우리에게 쏠렸다.

그 시선을 의식한 윤가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식당 주인을 불렀다.

"여기유. 국밥 세 개 말아줘유."

"아이고, 저 바다 위 암자 스님 아녀유? 새벽부터 고깃국 먹으러 온 것 보니께 환속이라도 하남유?"

뱃사람을 상대로 잔뼈가 굵은 주인은 눈치가 빨라 그런지 누구보다 상황 파악을 잘했다.

"우리 주인장 아주머니는 어째 그리 잘 안대유? 이 스님이 아니다, 야가 내 조칸디 원래 중이 될라고 헌 게 아니라 전쟁통에 인민군이 끌고 갈까 봐 절로 들어왔다가 이리된 거지. 참말로 중 될려고 헌 것은 아니어유."

"에휴, 전쟁통에 사연 없는 이가 있간유. 속이 말이 아닐 텐데 뜨근한 걸로 속부터 채워유."

말 많은 윤가의 쓸데없는 말이 오히려 낯선 곳에서는 쓸모가 있었다. 그렇게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국밥 한 그릇씩을 비우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윤가는 담배를 사러 하꼬방을 찾아 나섰고 나는 기만이 조카와 단둘이 배를 묶어둔 포구에 있는 쇠 말뚝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기만이라고 했지. 내가 조카 어릴 때 집에 간 적이 있는디 혹시 기억나는 겨?

"삼촌이랑 외할머니 심부름으로 어머니 찾아왔던 기억이 있유."

"그려 아는구먼. 윤가 어머니가 누이 생일이라고 떡이랑 음식 해서 보내는 걸 심부름으로 조카 집으로 가져다주는 일로 갔었지. 그때 누이는 여전히 이뻤는디 말여."

"엄마 돌아가시고부터 엄마 생각을 일부러 안 해서 엄마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럴 만도 하지. 내도 아홉 살에 아버지 돌아가셨는디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아버지 얼굴이 가물가물 해졌어."

"어머니 돌아가신 때의 지 나이랑 비슷한 때 그러셨네유."

"그런 셈이지.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 형님이 아버지처럼 날 돌봐주셨는디, 그 형님도 독립 운동하시다 해방 전에 돌아가셨지. 내 그때 상실감이 커서 이젠 뭐 하고 사나 자포자기하다 군에 입대했고 전쟁통에 이리 돼버렸어."

"피난 중에 그런 것이 아니고 군인이 되어 싸우다 그리 되신 거 여유?"

"그랴. 내가 근무헌 부대는 옹진군에 있었는디 38선 그어지고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군대 증감하면서 군인을 많이 뽑았어. 배운 건 많지 않고,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나라 찾으려다 조국 광복도 못 보고 눈 감으신 형님은 해방된 조국을 위해 어떤 삶을 사셨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라 지키는 일을 하기로 한 거지."

"아, 그러셨구먼유. 그런디 어쩌다..."

"이잉, 이 다리 말인감?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이 쏟아 부운 포탄에 맞아서 이리되었어. 다리를 잃고 나서 상이군인이 되니 살아서 뭐 하나 싶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 이 몸으로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불구가 된 모습을 보는 것도 두려웠거든. 그렇게 힘든 시기를 부산의 병원 병상에서 2년을 가까이 지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지. 집에 있는 큰형수와 조카들. 하늘에서 날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 어머니와 큰 형님. 그때 결심했어 몸이 불구라고 맘까지 그리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말이지."

"......"

"힘들다고 내 앞에 닥친 어려운 상황을 피해버리고 도망치면 그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이 또 힘들어져. 그건 사내로써 부끄러운 일인거지. 그래서 난 어떤 상황이라도 내 목숨을 스스로 저버리거나 도망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만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으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고 그때 담배를 사러 갔던 윤가가 왔다.

"아침나절이라 하꼬방 문도 안 열어놓고 아까 국밥집에서 손님헌테 담배 얻어왔다. 최가야 너도 한 대 태워라."

"하도 안 와서 담뱃잎 따러 간 줄 알었다."

"그러게 말여. 담배 구허기다 이리 어렵다 잉. 우째 분위기가 이상허다. 기만이 너 우쩔겨? 삼촌 따라 서울 가서 공부 좀 해볼겨? 내 니 엄마랑 아버지 벌 면목이라도 챙길라믄 니 멱살이라도 끌구 가야 하는디 니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기고 다만 여자 몸으로 니 데려갈라고 여기까지 따라온 누이도 생각 허야 안겄냐. 기창이도 니 없응게 아주 코가 쑥 빠져 있드라. 니 새엄마 싫다고 니만 피하고 나면 누이랑 기창이 우찌 살겄냐. 그러니께 집에 가면 좋겄다는 것이 이 샘촌의 생각이여."

"야, 갈게요. 집에 글구 삼촌 따라 기창이랑 저 서울 갈 기구먼유. 약속 지켜주셔야 해유."

"참말이제. 니가 집으로 간다면이야 내 뭘 못해주겄냐. 최가야 니도 들었지? 집에 간다는 말 말여."

"그래 들었다. 사내가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안 되지."

"야 그러믄 얼릉 서두르자 갈 길이 멀다. 선주도 오늘 아침 일찍 나선다 했으니 우리도 그 새우젓 트럭 타고 가야 혀."

그렇게 약조를 한 기만이와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암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해가 떠서 사방이 환해지고 바다는 붉게 물들어 윤슬로 출렁였다.

암자에 들어서자 우리를 찾아다닌듯한 윤가의 질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 왔다.

"아니 새벽부터 어딜 다녀와요. 한참 찾았잖아유."

"왜 니만 버리고 갔을까 그란 겨? 사내들끼리 할 얘기도 있구. 절 아랫마을도 구경하고 했는디 뭔 호들갑이냐."

"미리 말씀 허구 가야쥬."

"에고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고 있는디 어찌 말 허고 간다냐. 어여 밥 먹고 집에 가자. 기만이도 같이 갈 거니께 그리 알고."

"진짜로요? 기만아, 니 집에 진짜 가는 겨?"

그렇게 윤가와 나 기만이는 비밀 회동이라도 한 듯이 껄껄 웃으며 암자로 들어왔다. 그런 우릴 지켜보던 윤가의 조카는 보살님이 아침 공양 차리는 소리가 분주해 황급히 부엌으로 가 도와야 한다며 몹시 궁금해하며 부엌으로 갔다.

아침 공양 발우를 끝내고 우리는 서두러 짐을 꾸렸다. 난 짐이라곤 꾸릴 것도 없어서 자던 방만 치우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윤가의 조카가 나왔다.

"삼촌, 기만이한테 뭔 말해서 맘을 돌렸유?"

"너도 궁금허냐? 내도 궁금해서 시방 그 얘기 듣고 있다."

"아니 삼촌도 모르면 누가 알어유. 시방 저짝이 하는 말 듣고 기만이가 맘 바꾼다고 허는 거여유?"

"그렇지. 어디 기만이가 식구들헌테 지 속을 보이는 놈이냐? 오히려 남이 더 편할 수도 있는가 보제."

피붙이나 삼촌이 아닌 생판 남인 너의 말에 맘을 바꾼 기만이에게 서운함이 느껴졌는지 윤가의 조카는 나를 향해 잔뜩 눈을 흘겨보았다.

"워따 무서워 살겄냐. 어쨌거나 다 같이 집에 가게 되었응게 좋은 일 아니어. 어서 서둘러 가자. 선주님 차 얻어 타고 갈라면 이러고 있으면 안 돼야."

잔뜩 화가 난 조카를 피해 윤가눈 구렁이 담 넘듯 자리를 피했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고 멍하니 서 있다.

"고마워 유. 그 짝 덕에 기만이 데려갈 수 있게 되었구먼 유."

뜻밖에 조카는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그런 조카의 말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그런 사이 기만이는 승복을 벗어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나왔다.
가을이 깊어 해가 짧아진 날 때문이라도 서둘러야 했던 우리는 선주님의 새우젓 트럭에 몸을 싣고 윤가의 차가 있는 포구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차에서 모두가 생각에 빠져 멀어져 가는 바다를 지긋이 바라볼 뿐이다. 이제 나도 집에 가야 한다. 기쁘고도 두려운 일이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