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큰 형님을 보다 옛 일을 떠올렸던 나는 큰 조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삼춘, 진지 드셔유."
"도련님, 어여 자리 앉으셔 유. 갑자기 채린 밥이랑 찬이 없네유. 우리 도련님 국수 좋아하셨는디 그것도 못 해드리고, 우선은 이리 자시고 제가 고기 좀 끊어와서 육수 내어해 드릴게요."
"형수님, 지가 뭐 나라님도 아니구 먹는 거에 신경 쓰시고 그래유. 기냥 형수님 드시던 거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면 되는디."
큰 형수님은 언제 장만했는지 시래기 된장국에 조기도 굽고, 고춧가루 넣고 빨갛게 무친 조개젓에 김도 구워 참기름과 깨소금을 얹은 간장을 내왔다. 나는 그 정성 가득한 밥상을 받아 들고 아주 맛있게 먹은 뒤 형수가 가져다준 따뜻한 숭늉까지 먹고 나니 온몸이 노곤노곤하여 잠이 쏟아졌다.
"형수님, 지 좀 눈 좀 붙여도 되겄유. 아주 맛난 밥 먹고 나닝께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쏟아지네유."
"아이구 되구 말구유. 요 깔아드릴 테니 어여 주무시유."
큰 형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을 물리고 큰 조카를 시켜 요를 깔고 이부자리를 살피게 했다.
"삼춘, 지들은 엄니랑 할 말도 있응게 건넌방에 가 있을게유. 편히 주무시유."
태환이가 인환이와 막내를 데리고 나가고 나는 어느새 스르르 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두 어 시간이나 잤을까?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지 창문 그림자가 윗목 끄트머리에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머리맡에 있는 큰 형수가 챙겨줬을 자리끼 주전자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단숨에 물을 마셨다. 그 바람에 주전자 뚜껑이 '툭'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이 소리를 들었는지 태환이가 내가 자고 있던 방을 향해 말을 건넨다.
"삼춘, 일어나셨유?"
"이잉 방금 깼다. 들어와."
"예."
대답과 함께 들어온 태환이는 표정이 낮보다 환결 환해진 듯했다.
"그려, 엄니랑 그간 못한 얘기는 좀 한 겨?"
"예, 그란디 엄니는 집으로 자꾸 안 간다고 그라는디 삼촌이 좀 설득 좀 해 줘 봐유."
"그랴, 내 그렇잖아도 저녁에는 그럴 참이었아. 근디 형수님은 어디 가신겨?"
"삼춘, 냉면 해주신다고 고기 사러 육간 가셨구먼유 오실 때가 되는디."
인환이와 막내까지 함께 갔다더니 마침 형수님이 돌아왔는지 밖이 시끄러웠다.
"도련님, 일어나셨는 감유?"
"형 우리 왔어."
둘째 인환이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지 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풀었던 의족을 다시 고쳐 끼고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를 정리해 반닫이에 올리고 마루로 나갔다. 둘째와 막내는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가 사 준 사탕을 입안 가득 물고 신이 났고 형수는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
"도련님, 좋아하시는 회냉면 하려고 장 좀 봐 왔유. 쫌만 기다려유. 매콤한 국수 한 그릇 해드릴게유."
형수는 그때부터 손길이 분주해졌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태환이와 인환이가 하고, 형수님은 육간에서 사 온 소고기를 핏물을 빼고 황태포를 찢어 물에 불리느라 손이 분주했다. 나는 그 분주한 손길을 돕고 싶었으나 불편한 몸으로 거들다 오히려 방해가 될 듯하여 막내 조카와 놀아주기로 했다.
"넌 이름이 뭐니?"
"덕순이요. 최덕순."
"그래 우리 질녀 덕순이는 뭐가 제일 좋아?"
"엄니랑 오빠들하고 다 같이 사는 거유."
"그랴, 이젠 덕순이 소원대로 집으로 돌아가 다 같이 살 거니께 걱정하지 말어."
"참말이유? 동네 사람들이 엄마 보고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해서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다시 못 산다고 엄니가 그라셨는디유."
그랬다. 동네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은 무서웠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지도 않은 일들은 이 입에서 저 입으로 너무도 쉽게 옮겨졌고 마녀 사냥을 하듯 큰 형수는 무슨 전염병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화형이라도 시켜야 할 그런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한 때는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투사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수행해 내는 거룩한 아내였던 큰 형수는 전쟁이라는 큰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온몸으로 그 모진 바람을 다 맞고 계셨던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부엌에서는 고기 삶는 구수한 냄새가 났고 국수틀에서는 뽀얀 뜨거운 연기를 뿜으며 국수가 나오고 있었다. 이북 지역에서나 먹을 수 있는 국수를 큰 형수는 힘 하나 안 들이고 척척 해내는 것이 수라간 대숙수 같다. 손이 빠르고 야무져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조차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던 일이 그냥 듣기 좋아라 하신 말씀이 아니셨던 것이다.
그렇게 식구 모두가 달려들어 준비한 저녁상을 차려 놓고 모두가 빙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후루룩 국수를 먹는다. 이 자리에 큰 형님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니 국수에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지면서 짠맛을 더 추가한다.
"삼춘, 시방 엄니가 만든 국수 맛있어서 우는 거여유?"
둘째 녀석이 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는지 엄니 음식 솜씨를 자랑하듯이 거든다.
"니는 뭐 안다고 그리 까부는 겨? 기냥 국수나 어여 먹어."
"알겠구먼. 근디 참말로 맛있지. 우리 엄니 국수는. 시상 천지 이런 맛은 어디서도 맛 못 보는구먼."
"그래 맞다. 니들 엄니 손맛은 우리 엄니 손 맛보다도 더 좋은 거 내도 인정헌다."
오순도순 그렇게 둘러앉아 먹는 저녁이 얼마만인지 나도 형수도 아이들도 오랫동안 이 자리가 그리웠던 시간을 보내왔다. 이제는 모두 오늘 저녁처럼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형수와 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를 하기 위해 안방으로 건너왔다.
"형수님 그간 고생 많으셨유. 지가 옹진에 있던 마지막쯤에 넷째 형님 편에 편지를 통해 형수님 소식 물었을 땐 다들 잘 있다고 해서 안심했었는디 전쟁이 나부려서 소식이 끊기고 참 답답했유."
"지도 전쟁 나고 도련님 생사가 궁금했어슈. 근디 무엇보다 피난을 가야 하나 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디 큰 도련님이 농사짓던 거 다 버리고 피난 갈 수 없다고 하고, 지도 애들 셋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보니께 인민군이 마을로 들어 왔거 먼유."
큰 형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 큰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제가 지송혀유. 큰 형님이 눈 감으시면서 형수님과 애들 잘 지켜달라 허셨는디... 큰 형님 뵐 면목이 없유."
"그게 어디 도련님 탓인가유 다 전쟁 때문이지 유..."
그랬다. 전쟁은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벌을 줬다. 아니 어쩌면 착한 사람에게 더 큰 벌을 주기도 했다. 우리 집은 국군이 된 나로 인해 인민군이 제일 먼저 인민재판이다 뭐다 들쑤셔 놓았고, 큰 조카 태환이를 인민군으로 끌어가려고까지 했던 걸 막내 형님이 농민 위원장이 되어 막아서 다행히 그 러한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큰 형님이 독립운동 허신 이력은 인민군에게도 큰 귀감이 되어 여러 모로 덕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을까 인민군 소좌가 우리 집에 머물게 되고 인민군의 밥을 해 주던 큰 형수를 인민군 소좌가 겁탈하는 일이 벌어진 거다. 그 후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인민군이 다시 북으로 쫓기며 다시 평온을 되찾는 듯하였으나 뜻하지 않던 임신으로 형수는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제가 죽은 아이를 낳자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저를 화냥년이라고 했구먼유. 그런 동네 사람 등살에 큰 도련님이 저를 친정으로 가 있으라고 하셨구. 애들도 머슴살이를 보냈드라구유."
"지송허유."
"저야 화냥년이라 욕먹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애들을 머슴 보냈다는 소리 듣고 억장이 무너졌었구먼유."
"그려서 지가 애들 데려 온 거구먼유. 그리고 이 참에 형수도 집으로 돌아가유. 친정집도 형수 말고는 아무도 없잖유. 지가 이젠 형수 님하고 애들은 지켜줄 테니께 지만 믿고 가유. 안 그러면 저 죽어서 큰 형님 못 봐유."
나의 결연한 의지 때문인지 그간 외로이 힘들게 버텨온 세월에 힘이 드신 건지 큰 형수는 내 말에 따르기로 하고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이제 남은 일은 집으로 돌아가 큰 형수님과 아이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일만 남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나도 고단한 몸을 풀어헤쳐놓고 잠을 청했다. 보름달이 밝아 창문에 머문 댓잎 그림자가 선명했다. 나는 그 댓잎을 세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다. 오늘 밤이 보름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