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산책을 마치고 들어 온 우리는 할머니를 모시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엄마께 올릴 공양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자정을 넘겨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 되어서 울어대는 닭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6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나는 서둘러 부엌으로 가 어제 준비한 음식을 소쿠리에 담기 시작했다. 서리가 내린 뒤란에 가 홍시를 만들려고 장독대에 널어 둔 감과 감주도 챙겨 담았다. 내가 분주하게 장독대와 뒤란을 왔다 가다 하는 사이 새엄마가 아침밥을 하러 나왔는지 부엌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니는 어쩐 일로 일찍 난 겨?"
"아버지가 말씀 안 하신가 봐유. 지 오늘 삼춘이랑 엄마 공양하러 가유. 글구 할머니도 모시고 올 거고유."
"따로 말씀 안 하셨는디. 내가 어찌 알 겄냐?"
"그래유? 아버지 어제 사랑에서 주무셔서 아직 말씀 안 하신가 봐유."
새엄마는 내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부엌을 나갔는데 아마도 아버지께 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새엄마한테 또 시달릴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내가 새엄마 눈치 보느라 엄마도 못 보러도 가나 싶어 화가 났다. 새엄마가 우리 집에 들어온 후로 엄마 제사를 해마다 절에서 지내는 것도 싫었는데 엄말 보러 가는 것조차 못마땅하니 정말이지 지긋해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는 말은 새엄마를 위해 만든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엄마가 그러든 말든 난 준비를 마저 하고 기만이와 기창이를 깨우러 방에 갔다. 두 아이는 벌써 일어나 언제 출발해도 될 정도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기만이를 시켜 삼춘은 어찌 준비하고 계신지 알아보고 오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삼춘과 기만이가 함께 안채로 왔다.
"다들 잠은 잘 잔 겨? 엄니 만나러 간다고 좋아서 잠을 설 친 건 아니지? 다 준비되었으면 아버지께 인사하고 출발허자."
우리는 삼춘과 함께 아버지께 인사를 하러 사랑채로 갔다.
"아버지, 일어나셨유?"
아버지는 대답은 안 허시고 사랑방의 창을 열고 우리에게 어여 가라는 손짓을 하셨다. 아마도 새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계신 듯했다. 다행히 삼춘 차가 있어서 오서산 중턱에 있는 이모할머니의 암자까지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게 된 것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우리 누님 만나러 가는 걸 아는지 하늘도 참 청명하다. "
"그러게요. 삼춘. 엄마 뵈러 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겄어유."
삼촌의 말에 평소 말이 없던 기만이가 맞장구를 쳐준다.
"그랴, 누님도 니 보고 싶었을 텐디 이렇게 가게 되니 좀 좋으냐? 기챙이는 괜찮은 겨? 졸리면 눈 좀 붙여라."
"지는 괜찮구먼유."
차는 광성리 고개를 넘어 오성리로 향했고 얼마 후 오서산 초입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차로 갈 수 없기에 우리 일행은 차에서 데려 걷기 시작했다. 날은 가을이 깊어진 것을 충분히 느끼기에 충분히 찼다. 공양할 음식을 쥔 손은 시렸고, 코 끝으로 느껴지는 찬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오니 폐부가 시리게 느껴졌다. 기창이와 기만이는 좀 앞서가고 그 뒤를 나와 삼춘이 뒤따랐다.
"기만이랑 기창이는 내가 핵교도 보내고 잘 데리고 있을 테니께 니는 이제 좋은 혼처 알아봐서 시집 가야 허지 않겄냐?"
삼춘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런 삼춘의 걱정에 답은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기만이와 기창이가 서울로 가고 나마저 집을 떠나면 할머니는 또 어찌 지낼 실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기러기 떼가 하늘을 가르며 무리를 지어 날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 녀석은 대열을 벗어난 녀석들이 없도록 수시로 뒤를 살피며 날아간다. 내 마음도 저 녀석과 같다는 생각을 순간 했다.
삼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르다 보니 이모할머니의 작은 암자에 도착했다. 발 빠른 기만이와 기창이가 먼저 도착해 할머니를 찾았는지 삼춘과 내가 암자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서는 암자 마당에 나와 계셨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삼춘을 보시자 합장한 채 인사를 하셨다.
"에구 우리 새끼들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겨? 밥은 먹었남? 사돈총각도 오시고 간 밤에 꿈이 좋더니 이런 일이 있으라 그랬구먼 "
"예, 사돈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쥬?"
"전쟁통에 용케도 살아남아서 내 이리 살고 있구만유. 기만이는 출마했다가 환속을 어찌 한 거여? 사돈총각은 또 어찌 같이 오구."
할머니는 세상과 등지고 사신지 오래된 까닭에 궁금한 것이 많으셨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하셨다.
"할머니, 지가 외삼촌께 기만이 있는 암자 같이 가서 데려오자고 부탁드려서 이렇게 올 수 있었구먼유."
"아휴, 이리 고마울 때가 다 있나. 추운디 어여 방으로 들어가자."
삼춘과 기만이 기창이는 할머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이모할머니와 공양 음식을 채리러 부엌으로 향했다. 공양 준비를 다 마치고 명부전에 모신 엄마의 위패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렀다. 전쟁이 나고 엄마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러 암자로 향하던 길에 인민군을 만나 숨 가쁘게 도망쳐 집으로 되돌아오던 일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엄마를 뵈러 오지 못했고 그렇게 마음의 짐만 잔뜩 쌓여 갔는데 이제야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된 셈이다.
'현비유인윤씨신위(顯妣孺人尹氏神位)' 그 곱던 엄마는 어디로 가고 나무 위패에 이름만 남았는지 그립고 그립다는 생각에 눈물만 흘렀다. 눈물만 흘리다 끝나버린 엄마의 축원을 끝내고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었다.
"어르신, 제가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디 기만이와 기창이를 데리고 갈라 합니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래도 큰 공부 하려면 서울로 가는 게 좋을 듯싶은데 그리해도 될까요?"
"나야 사돈총각이 그리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지 유. 새아기 그리 가고 나서 새사람 들이고 엄마 사랑도 잘 못 받고 자란 어린것들한테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섰는디 내가 해준 것도 없이 이리 살아온 게 미안구먼유."
"그리 말씀은 허지마슈. 다 으르신 가르침 덕분에 우리 조카들이 심성 반듯하게 자랐구먼유. 하늘에 계신 누님도 그리 생각 헐 것이구유."
삼춘의 청에 할머니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젠 서울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나는 괜스레 마음만 바빠져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았고, 오서산 중턱에 있는 암자가 천길 깊은 물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