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춘의 휴가 마지막날에 맞춰 기만이와 기창이가 함께 서울로 가는 일은 무리였기에 우선은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할머니께서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으신듯 암자에서 계시길 원하셨지만 내가 극구 말려 집으로 함께 가시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 나절에는 집에 도착해야 했기에 서둘러 짐을 꾸렸다. 이 암자에서 석 달을 넘게 지내신 할머니의 짐은 생각보다 챙길 것이 많았다. 우리를 먹이시겠다고 손수 따 말리신 고사리부터 옷가지와 불경 등을 차에 싣기 위해 나는 그것들을 보자기에 차곡차곡 쌓았다.
"어휴 형님 이리 가실라구유? 애들도 다 모이고 당장은 집으로 가시는 거는 좋은디 애들 서울 가부리고 힘들면 다시 오셔두 되니께 그리 허슈."
"그랴 동상. 내 일단 가 봄 새. 그라고 그간 고마웠구먼."
"그리 말씀이랑 허지 마시고유. 조심히 가시구유. 니들도 잘 가고 사돈도 조심히 운전하시구 서울까지 무탈하게 잘 올라가셔유."
"예 보살님도 무탈하세유."
"할머니 저희 가유. 엄니 기일에 다시 뵐게유."
"오냐, 조심히들 가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이모할머니의 배웅을 받은 우리 일행은 암자를 나와 산 길을 걸어 삼춘 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기창이는 고단했는지 잠이 들었고, 삼춘과 나 할머니는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오솔길을 달리던 차가 광성리를 도착할 쯤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사돈어른 기만이와 기창이 서울 올라가면 순열이도 걱정거리가 좀 줄테고 나이도 있으니 짝을 찾아줘야 허지 않을까유?"
"그러게 말유. 내가 할미가 돼 가지구 나이가 다 찬 애를 자꾸 붙잡고 있었구먼유. 그런데 어디 마땅한 혼처가 있을까유?"
"그것일랑 지가 서울서 알아 볼게유. 제 인맥을 다 이용해서라도 좋은 혼처 알아볼 테니께유."
"할머니랑 삼춘은 뭔 걱정을 그리허신대유? 지가 시집 가면은 할머니만 달랑 집에 남을 텐디 새엄마 등쌀에 어찌 사시라구 그런데유. "
"그건 니가 걱정하덜 말어. 아범이 없는 것도 아니구 니 혼처가 정해지고 기만이 기창이 서울 가서 공부도 잘 마친다면이야 내 소원이 없겄어."
할머니는 당신보다 손주 걱정에 새엄마의 못된 행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런 할머니의 맘을 알기에 더 집을 떠나기가 어려운 건 나만의 걱정일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나는 집에 도착했다. 기만이와 기창이는 할머니의 짐을 차에서 내리고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저희 왔어유. 할머니도 모시고 왔구먼유."
할머니를 모시고 사랑채에 들어가 아버지를 부르는데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할머니, 잠깐만 기다려 보셔유. 제가 안채로 가 볼게유."
그때였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로 아버지께서 사랑채로 들어오시고 계셨다.
"아이구, 어머니 오셨유."
"그랴 내 이제 왔네. 그간 잘 지내는가?"
"아이구 어머니 지야 잘 지냈는디 암자에 기거하신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쥬?"
"아닐쎄 내 집보단 불편해도 마음만은 편히 지냈어. 얘들 새어미는 어딘 간 게야? 집이 왜 이리 조용한 겨?"
"야, 성훈이 데리고 읍내에서 볼 일 보고 온다 했는디 아직 안 왔구먼유."
"뭔 볼일로 읍내 간 거여?"
"예, 기만이 서울 간다는 소리에 성훈이도 보내겠다고 해서요. 집 구해주는디 이사 날짜 잡으러 갔어유."
"아니 망둥이도 아니구 성훈이는 뭔 일로 서울 보낸다는 거여? 기만이 기창이야 서울에 지들 삼춘이 있으니께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디 워디 돌봐줄 이도 없는 성훈이는 서울이 어디라고 가겠다는 거여?"
"그게 말여유... 그래서 아랫녘 논 팔아서 집을 장만해 달라고 허네유."
"그럼 아범은 그리해줄라 그런거여? 전쟁 때 성훈이 인민군 끌려갈까 봐 친정으로 도망가고 전쟁 끝나서 온 사람 뭐가 이쁘다고 그리허는가 말여. 막말로 자네 자식도 아닌데 말여. 기만이가 왜 머리 깎고 절로 갔는지 생각해 봤는 감? "
아버지는 할머니의 노여움을 살 것을 알면서도 새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기만이와 기창이가 서울 간다는 소리에 때는 이때다 싶어 성훈이도 서울 보내려는 새엄마는 집안의 갈등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리 갈등하시는 사이 읍내에 갔다던 새엄마가 성훈이와 옥희 그리고 막내 기호와 함께 집으로 왔다.
"할머니, 언제 오셨유?"
막내 기호만 반갑게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성훈이와 옥희는 지 엄마 옆에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어머니 오셨유. 지가 읍내에 댕겨올 일이 있어 이리 늦었네유. 곧 저녁 준비할 테니 아범이랑 말씀 나누고 계셔유."
새엄마는 이 상황을 짐짓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저녁밥을 핑계로 안채로 가버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삼춘은 속이 답답한지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칡과 등나무가 배배 꼬인 듯한 이 상황을 어찌 풀어야 하나 하는 새로운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