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수가 아침부터 밥을 하는지 아랫목 구들이 따뜻해지고 부엌으로 난 작은 쪽문 틈으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저 아침이 이 집에서의 마지막 아침밥이 되길 바라며 자고 일어난 이불을 개어 반닫이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되련님 더 주무시지 벌써 일어났는감유? 밥 헐려면 멀었는디."
"아녀유 형수님. 지가 뭐라도 도우려고 일어놨슈. 오늘 이곳에서 먹는 아침밥이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구먼유. 오늘 같이 가실 거죠? 오늘 안 가시면 다음엔 더 힘들어유. 막내 형님도 그렇고 태환이 인환이 때문이라도 이참에 결정해야지 미적거리다가는 못 갈 수 있으니께유."
형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러마하고 대답을 했다.
"참말 잘 정했슈. 애들도 얼릉 깨워 준비해야겄구먼유. 인환아 태환아 일어나거라. 아침밥 먹고 집에 가자."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이 깬 아이들은 큰 형수도 함께 집에 가는 지를 먼저 물었다.
"삼춘, 오늘 엄니도 같이 가는거유?"
"그랴, 다 같이 갈거구먼. 엄니랑 덕순이까지. 짐이라고 해야 별로 없응께 우리가 짊어지면 되지 않겄냐?"
"그류 지게에 싣고 가면 되지유. 걱정 마슈. 저나 인환이나 머슴 살이 하면서 심든 일 많이 해서 지게 짐 지는 건 일두 아니구먼유."
다리가 불편한 나를 안심시키기라고도 하려는 듯 큰 조카 태환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태환이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우리는 큰 형수가 차려준 아침밥을 든든히 속을 채우고 짐을 꾸렸다. 어린 덕순이와 큰 형수의 살림살이는 생각보다도 더 단출해서 옷가지와 이불 두어 채 그리고 그릇들 몇 개만 챙겼다. 형수의 친정 식구들은 전쟁통에 모두 죽고 남은 이들이라야 일가뿐인데 형수가 시집에서 쫓겨와 친정에 와 살아도 왕래가 거의 없어 간다는 말을 따로 알릴 필요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곳에 와 살았으니 근 삼 년을 넘게 살았던 친정집을 떠나려니 큰 형수는 눈물을 흘렸다.
"엄니, 울지 말어유. 이젠 우리 다 같이 살게 된 좋은 날인디 왜 울어유."
"그랴, 인환아 어미가 미안허다. 어여 가자."
큰 형수는 볼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덕순이의 손을 잡고 머리에는 옷보따리를 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 이 모습을 큰 형님도 지켜보고 계시리라. 나는 형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제대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한 채 지팡이를 쥔 손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가을이 깊어 낙엽을 떨군 나뭇가지들이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고 걸음을 재촉하여 걸으니 오성리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서자 막내 형수가 우리를 맞았다.
"아이구 형님 오셨유. 고생 많으셨쥬? 어서 안채로 드셔유. 되련님도 같이 오르시구유."
"형님은 어디 가셨는감유?"
"야, 보리 파종 전에 밭 갈아 돼서 가셨구먼유. 곧 오실거여유. 안채로 들어가 계셔유."
큰 형수와 나, 태환이, 인환이 그리고 덕순이까지 안방에 들어가니 방은 어느새 빈자리가 없이 꽉 차 발 디딜 공간이 나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기거하셨던 방이 이리 작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자니 밖에서 막내 형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은 막내 형수에게 우리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큰 소리로 역정을 내는 듯했다. 그 소리에 놀라 막내 덕순이는 딸꾹질을 했고, 태환이와 인환이도 긴장하는 낯 빛이 역력했다. 이윽고 형님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다들 들어와 앉아 있는 겨? "
"형님, 왜 그러는 거여유? 큰 형수랑 애들이 시방 어디 못 올 때 왔는감유? 집에 와야 할 이들이 온 것이구먼유. 왜 그리 매정하게 굴어유? 큰 형님을 어찌 볼라 그러시냐구유. 소리 지르지 말고 제 말 좀 들어 보슈."
역정을 내던 막내 형님은 내 말을 듣고 어쩐 일인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형님, 단도직입적으로다가 말허는디유. 내 몫으로 가져갈 땅 있지유. 그 땅 형님께 드릴테니께 돈 좀 마련해 줘유. 그 돈으로 큰 형수랑 애들 살 집 장만할라니께."
"아니 뭐여? 니가 다리까지 잃어가며 받은 월급으로 산 땅을 왜 저것들한테 줘 뿌리냐? 죽 쒀서 개 주는 감 말여?"
"아니 뭔 소릴 그리 허슈. 전쟁통에 사람도 죽고 난리도 아니게 세상이 어지러웠는디 그 험한 꼴 당한 사람 위로는 못해줄 망정 개 취급허면 쓰겄어유. 내 아버지 서당으로 쓰던 집 고쳐서 큰 형수 살게 헐 것이구먼유. 그리 아시구 돈 만들어 줘유."
나는 막내 형님이 더 큰 소리를 치지 못하도록 선수를 쳐서 으름장을 놓고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런 내 막무가내 행동을 보고 짐짓 두려웠는지 막내 형님은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길로 안채를 나와 사랑채에 있는 내 방으로 왔다. 우선 큰 형수와 아이들은 내 방에서 자고 나는 행랑채의 막내 형님의 아이들 방에서 잠을 잤다. 내일 아침에는 아버지의 서당을 청소하고 손을 보기로 했다. 하루빨리 집을 정리하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