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면서생(白面書生)

by 자강



막내 형님은 큰 형수와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것이 불편했는지 생각보다 일찍 돈을 마련해 주었다. 땅을 사겠다는 임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사촌 형님께 돈을 융통하고 형님이 갖고 있는 돈을 더해 내게 주었다.

"자, 니 원하는 대로 돈 해줬응께 빨리 집 수리해서 살게 해 줘라. 그리고 나중에 땅값 올라도 물러달라는 소리 같은 건 허지 말고."


저런 말씀을 하는 걸 보면 내 땅을 살 임자는 형님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 내가 땅을 팔아 집 고칠 돈을 마련하겠다 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형님은 땅에 욕심이 많은 사람답게 땅을 사 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 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나는 큰 형수와 아이들이 살 집을 하루라도 빨리 손볼 수 있었으리라. 나는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20년 가까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서당 집에 가보기로 했다.


서당 집은 말 그대로 폐가가 다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동네 훈장님으로 계실 적 큰 형님을 비롯해 넷째, 막내 형님과 나는 나란히 아버지께 천자문부터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을 배웠고 큰 형님은 사서삼경(四書三經)까지 배우셨다.


어릴 때부터 훈장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신 아버지는 글 읽기를 좋아하고 먹고사는 데에는 도통 능력이 없으셔서 살아계실 때까지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불리셨다. 그런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겐 조부가 되시는 할아버지께서도 백면서생의 삶을 사셨다 했다.


때는 구한말. 어린 왕을 대신해 섭정(攝政)을 하던 대원군이 임오군란을 이유로 청나라에 끌려가자 즉위 후 10여 년 만에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고종 임금이 갑오개혁을 단행해 버리자 성균관 유생을 목표로 글공부에 매진했던 조부는 진사의 직책을 끝으로 그 꿈을 잃게 되셨다고 한다. 세상은 양반이다 상놈이다 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과부의 재가(再嫁)도 허용되고 상투도 잘라버리는 등 빠르게 변해 가는데 홀로 사서삼경 속 옛 성현의 말씀만 되뇌시는 삶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알면서도 당신도 그런 아버지의 삶을 또다시 밟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뼛 속까지 선비였던 아버지는 단발령에 반대해 상소를 올리고 궁 앞에서 도끼를 들고 가 읍소를 하던 집안 형님의 의지를 받드시기라도 하려던 것인지 살아생전 상투를 올리셨고, 그렇게 사시다 삶을 마치셨다. 그때 내 나이 아홉 살이니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어두운 등잔불 아래 누워 계신 아버지는 볼이 움푹 패어 옛날의 그 위엄은 사라졌고 마디가 앙상한 두 손은 큰 형님의 손을 잡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시던 일만 기억이 난다.


"현아, 내 이제 이 세상과 하직해야 할 것 같구나. 나라를 잃은 지 몇 년인지도 가물가물해서 기억이 나지 않고 어린 철이와 석이를 두고 눈을 감으려니 차마 편히 감을 수가 없구나. 특히 저 막내 석이를 잘 부탁한다. 내 늦은 나이에 석이를 얻고 뛸 듯이 기뻤으나 끝까지 있어주지 못하고 가는 게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는 옅은 기침을 뱉어내시면서도 큰 형님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나를 걱정하는 말씀을 계속 이어가셨다.


"아부지, 안 되유. 그리 가시면... 전 아버지 없이 어찌 살라고 그리 가신다고 허슈."


나는 옅은 숨을 힘겹게 몰아쉬시는 아버지가 행여 듣지 못할까 봐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생떼를 썼다. 큰 형님이 우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그때였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들이쉬던 숨이 멈춘 것은.


"아버지."


그렇게 눈을 감으신 아버지는 해마다 제삿날에나 영정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고, 전쟁에 동원되어 전사하신 큰 형님과 작은 집에 양자로 갔다는 둘째 형님을 제외한 칠 남매는 홀로 되신 어머니와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어머니와 큰 형님은 해방이 되기 전 생을 달리하셨고,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는 동족상잔의 전쟁 통에서 살아남은 가족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도 살아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서로를 위해야 할 판에 남보다 못한 대접을 하는 막내 형님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사실 큰 형수보다는 내가 더 컸다. 일본으로 징용을 가서 고생해서 그런 것인지 배움이 짧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양해야 할 처자식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 형님은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런 형님을 보고 있자니 야속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측은함도 느껴진다.


"삼춘, 여기서 우리 이제 사남유?"


아버지의 글방에서 잠시 옛 생각에 빠져 있느라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한 듯하다. 큰 아이가 연거푸 내게 말을 건넸다고 했다.


"이잉, 그려. 집에 사람이 안 산 지 오래되어서 손볼 때가 많구먼. 지붕도 새로 올려야 허구 깨진 구들장도 새로 깔고, 비가 새서 썩은 들보랑 서까래도 손 봐야겠다."


그랬다. 오랜 세월만큼 늙어버린 아버지의 글방도 아버지의 서책도 이제는 옛 것이 되어 엿장수에게 줘 버려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그런 집을 고쳐 다시 살아야 하니 마음을 단단히 추슬러야 했다.


부서진 집은 고칠 데가 좀 많았다. 지붕은 사촌 형님이 만들어 놓고 남은 것들을 가져다 쓰기로 했고, 깨진 구들장은 아랫목 쪽만 수리하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지붕을 얹기 전 들보와 서까래 수리는 아랫마을 박 목수가 해주기로 했다. 그 일만 해도 하루 꼬박 걸린다 하니 이래저래 닷새는 족히 걸릴 것이다. 돈은 재료값을 선 지불했고 잔금은 집수리가 다 끝나면 주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집수리를 하기 전 아이들과 나는 아버지의 글방에 있는 서책들을 정리했다. 아버지의 손 때가 묻은 서책들은 말없이 고스란히 책가(冊架)에 꽂혀 있어서 정리라고 할 것은 없었으나 구들을 걷어 내어야 하니 방 밖으로 옮겨야 했다.


"할아버지는 이리 어려운 한자를 어떻게 그리 술술 읽으셨을까요?"


작은 아이가 묻는다.


"그러니 훈장 선생님을 했지. 나는 맨날 글공부를 못해서 아버지께 혼이 났는디 니 아버지는 글을 술술 읽어서

아버지께 맨날 칭찬만 들었단다."


"참말이유? 내가 공부 잘하는 게 다 아부지 닮아서 그런 거구먼유."


안환이는 기억도 나지 않을 아버지 얘기에 신이 나서 계속해서 아버지 얘기를 해달라 하고 큰 아이 태환이는 말없이 서책을 보자기에 쌓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큰 형수가 아이들과 내가 먹을 고구마를 삶아왔다. 막내 형님의 눈을 피해 막내 형수가 준 것을 형님이 밭일 간 사이 삶아 온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은 형님에겐 해당하지 하는 말 같아 속이 몹시 쓰렸다. 그리고 나는 하루빨리 분가를 해야겠다는 맘만 앞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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