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決斷)

by 자강



할머니와 아버지의 언쟁이 있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삼춘은 서울로 올라갔다. 삼춘을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새엄마가 사랑에서 나왔다. 새엄마는 나를 향해 무서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안채로 가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새엄마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으나 할머니가 걱정되어 먼저 할머니께 갔다.

"할머니, 지 순열이 여유. 들어가도 되지유?"

"그랴 어여 들어와."

할머니는 기운은 없어 보이셨으나 그래도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이신지 한결 편안해 보이셨다.

"밤새 잘 주무셨유? 아버지 말씀에 많이 언짢으셨쥬? 지가 아버지랑 잘 말해 볼게유. 그란디 아침부터 새엄만 뭔 꿍꿍이인지 아버지 방에서 나오던디유."

"아무래도 성훈이 땜에 땅 팔아달라 허지 않았겄냐?"

"아버지가 새엄마가 그리 닦달하니 성가시기도 하겠지만 그 등쌀에 못 이겨 땅 팔어줄까 걱정이네유. 지가 가볼게유. 좀 누워 계셔유."

나는 할머니를 이부자리를 다시 펴드리고 곧장 아버지가 계신 사랑으로 갔다.

"아버지 지 순열이어유. 들어가유."

아버지는 말없이 연죽(煙竹)에 담배를 넣어 태우고 계셨다.

"식전부터 뭔 담배를 그리 피우셔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 말씀드리니 아버지는 피우시던 담뱃대를 내려놓으셨다. 나는 곧바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입동이 지난날의 공기는 차가웠으나, 담배 연기 자욱한 방안을 말끔하게 치워주기에는 적당했다.

"아버지, 새엄마가 자꾸 성훈이 때문에 논 팔어 달라고 허지유? 그리하실 생각이면 기만이한테도 똑같이 주셔야 해유. 아버지 친자식도 아닌 성훈이한테 새엄마는 왜 자꾸 돈을 줘라 마라 허는지 모르겄어유. 아버지 참말로 그리 새엄마한테 끌려다니시기만 하면 지도 기만이 기창이랑 다 같이 서울 올라가 버릴 거니까 그리 아셔유. 알겄지유."

아버지는 내 협박에 대답은 안 하시고 두 눈을 감은 채로 누우셨다. 새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나까지 아버지를 몰아세우니 고단하시긴 하겠으나 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만, 부리는 새엄마를 보고 있는 것이 부아가 났다. 아버지는 알겠다는 눈짓을 하시고는 연신 나가 보라고 손을 흔드신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 사랑채를 나왔다. 아버지에게 드릴 말씀은 다 했으니 이젠 기만이와 기창이에게 가보려는데 마침 기만이가 사랑채로 왔다.

"누나 여기 있었구먼."

"왜? 무슨 일 있는겨?"

"그것이 말여. 삼춘이 서울 올라가면서 우리 자는 방에 이걸 놓고 가셨구먼."

기만이 손에는 편지와 돈이 들어 있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편지에는 서울 올라와 삼춘집을 찾아오는 방법을 적은 글과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아울러 서울 올라올 때 기차 삯으로 쓰라고 돈을 좀 주고 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삼춘의 배려에 우선 놀랐고, 생각보다 많은 돈에 또 한 번 놀랐다. 삼춘이 주고 간 돈은 차비를 하고도 그 열 배가 넘을 만큼의 액수였다. 나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동생들의 입단속을 시키고 새엄마가 알지 못하도록 재빨리 품에 숨긴 뒤 할머니 방으로 갔다.

"할머니, 주무셔유? 저 들어가유."

"오냐 어여 들어와."

나는 행여나 옥희나 새엄마가 알아차릴까 염려가 되어 주변을 살핀 후 할머니에게 삼춘이 주고 간 돈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다 들으신 할머니는 우선 서울을 가서도 필요할 수 있으니 잘 보관하라는 말씀과 함께 아침을 먹고 천천히 서울 갈 짐을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짐이라고 기만이는 없을 테이고 기창이 공부할 책 몇 권과 옷 정도만 챙기면 되기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은 안방에서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아버지가 모두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수저를 드시기 전에 숭늉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씀을 하셨다.

"오늘 같이 기쁜 날이 요 근래 없었는데 내 참 기쁘다. 기만이도 다시 집에 돌아왔고, 어머니도 오시고 기창이도 기호도 상급학교 갈 일만 남았고. 그라고 기만이 기창이 서울에 가게 되어 무엇보다도 기쁘다. 서울 가 더 큰 공부 해서 좋은 데 취직도 하면 될 것잉께 말여."

아버지는 성훈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기만이 기창이 얘기만 하신다.

'그럼 성훈이는 서울에 가지 않는다는 뜻인가?'

나는 새엄마의 표정부터 살폈다.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는 걸 봐서 이번에는 성훈이가 서울에 가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논도 팔지 않으시는 건가? 기만이 학비랑 기창이 학교는 또 어찌 가야 하는 건지? 나는 잠시 아버지의 말씀이 더 이어지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기만이 기창이 핵교랑 살 집도 알아봐야 하고 해서 목돈이 필요하니께 내 배 서방네 소작 준 논 팔아서 돈을 마련해 줄 거고. 어머니도 그리 아시고 자네도 그리 알고 있게나. 일이란 것이 다 순서가 있는 것이니께. 그라고 성훈이는 서울 가서 뭐하고 살지 더 생각해 보거라."

아버지가 말씀을 끝내자 그 누구도 말을 못 하고 밥을 먹었다. 새엄마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는 더 의심스러웠지만, 간만에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결단을 내려 기강을 잡아 준 것에 속이 시원했다. 이젠 수일 내로 서울에 올라가면 될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삼춘을 만나 기창이 학교도 보내고 은수도 만나러 가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흘 후 우리 삼 남매는 서울 가는 기차를 찼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