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움직여 기차에 탄 우리는 금세 잠이 들었다. 아직 첫눈이 오지는 않았으나 동지가 갓 지난 때여서 언제 눈이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하늘은 어둡고 날은 추웠다. 차창 밖은 해가 뜨기 전이라 깜깜했고, 기차 안을 밝히는 전등이 아니었다면 사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기창이는 기차에 타자마자 기만이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기만이와 나는 짐을 기차에 무사히 실은 뒤 숨을 돌리고 나서야 눈을 붙였다. 잠이 든 지 두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었을 때 기차는 천안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울행 첫 기차를 타고 천안역을 도착한 쯤에는 해가 이미 떠서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천안역에 정차한 기차는 하행선 기차를 기다리느라 10여 분 동안 정차를 했고, 부산행 하행선이 떠난 후 출발을 했다. 경부선과 한국선이 모두 정차하는 천안역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은 모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총총걸음으로 제각기 자기 갈 길을 가고, 기차는 하얀 연기를 뿜으며 플랫폼을 떠났다. 기차가 서울을 향해 내달릴수록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논과 밭에서 신식 건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봇대의 전깃줄이 보이고 그 전깃줄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 달리기를 하듯이 내달리는 듯했다.
"누나, 배고픈데 뭐 좀 먹을 것 없어?"
"그래, 기창아, 좀 기다려봐. 누나가 아침에 삶은 달걀 챙겨 왔구먼."
한창 클 나이여서 그런지 기창이는 잠을 깨자마자 먹을 것을 찾았다. 기창이에게 삶은 달걀을 건네고 기만이에게도 건네 주자 기만이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으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 기차는 섰다 달렸다를 반복하며 내달리더니 늦은 오후가 돼서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짐은 좀 있었지만 종착역인 서울역에 내리는 것이어서 다행히 짐을 내리는 일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기창이는 공부할 책을 양손에 들고 가방을 메고 내렸고 나와 기만이는 옷가지를 챙긴 보따리를 들고 기차에서 내렸다. 플랫폼을 따라 난 계단을 오르고 구름다리를 건너니 대합실이 나왔다. 서울역 대합실은 우리 고향의 대합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엄청 크고 넓었다. 당연히 사람들도 많아 북적대는 대합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우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아버지가 집을 얻으라고 챙겨주신 돈을 잃어버리지 않게 단단히 묶은 돈뭉치를 허리에 묶고 왔다. 대합실에서 그 단단한 돈뭉치가 내 허리에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하느라 정신이 온통 쏠려 았었다. 서울에는 도둑도 많고 사기꾼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배서방 아저씨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앞장서 이끈 아이는 기만이었다. 기창이와 달리 말수는 적지만 언제나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도와주는 든든한 아이다. 우리가 인파를 뚫고 서울역의 대합실을 빠져나오니 광장 앞에서 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든 남자가 보였다. 기만이가 앞서 그 사내 앞으로 갔다.
"저, 윤○○ 분이 보내서 오신 분 맞나유?"
"네, 맞습니다. 이쪽으로 저 따라오시죠."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머리엔 기름을 발라 단단히 머리칼을 고정시킨 사내는 우리를 차가 있는 곳까지 안내를 했고, 우리는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허리춤에 묶어둔 돈이 잘 있는지 신경을 쓰며 사내를 따라가느라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는 나와 달리 막내는 처음으로 상경한 아이답게 두리번거리며 서울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나, 형 저기 봐. 말로만 듣던 남대문이구먼. 남대문. "
기창이의 신기해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 남대문을 보았다. 돌로 쌓은 단 위로 지어 올린 남대문은 늠름하게 두 팔을 벌린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처마를 치켜세우고 기세 등등 하게 서 있었다. 고향에서 본 기와지붕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크고 멋진 남대문을 보니 우리가 드디어 서울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우리는 사내가 이끈 곳에 도착해 삼춘이 고향집에 타고 왔던 차에 올라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삼춘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해가 진 서울 거리는 어둑어둑해지니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어둠을 밝혔고, 그 불빛 사이로 신식 건물과 차들이 보였다. 저 멋진 신식 건물에서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달리는 도로 옆으로 전차가 지나갔다.
"아저씨, 저것이 전차 맞지요? 내 머리털 나고 전차 처음 보는데 참말로 신기하구먼유. 아저씨는 전차 타보셨쥬?"
"네, 시간 될 때 제가 전차 태워드릴게요."
"참말이어유?"
넉살 좋은 기창이는 우리를 마중 나온 사내에게 아저씨라 부르며 삼춘이 계신 곳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차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삼춘이 일한다는 중앙청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사내가 삼춘을 만나러 간 사이 우리는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나는 가만히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중앙청 뒤로 한 때는 우리에게도 있었던 임금님이 살아다는 집이 보였지만, 일제가 만들었다는 저 중앙청 뒤로 보이는 임금님의 집은 왠지 작아 보여서 나를 슬프게 했다. 잠시 후 사내는 보이지 않고 삼춘만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나왔다
.
"어이구 다들 수고했구먼.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내 이제 퇴근을 하니께 맛난 저녁 먼저 먹으러 가자."
우리는 삼춘이 안내하는 밥집으로 가 저녁을 먹고 삼춘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집을 보러 다녀야 하니께 오늘은 일찍 자고, 서울 구경은 천천히 허드라고."
삼춘의 집은 중앙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우리가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도 가까웠다. 삼춘의 차에서 짐을 내려 방으로 옮긴 후 간단히 씻은 우리는 이내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삼춘 하숙집에서 차려준 아침을 먹고, 나와 기만이는 삼춘과 함께 우리가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 복덕방을 갔고, 막내 기창이는 어제 서울역에 우리를 마중 나왔던 사내와 전차를 타고 서울 구경을 갔다.
"기만이 니도 기창이랑 같이 서울 구경 갔어도 되는디 뭣하러 복덕방까지 가는겨?"
"누나 뭔 소리 허는 겨. 우리가 살 집인디 나도 꼼꼼히 살피고 정해야지. 서울 구경이야 앞으로 서울에 살 것인디 천천히 보면 되지."
"그래 기만이 말이 맞다. 어여 가자."
우리가 살 집은 삼춘의 하숙집에서 가까운 재동 근처에 얻기로 하고, 재동에 있는 복덕방 중 가장 크다는 곳을 찾았다. 우리가 복덕방의 문을 열자 두 분의 어르신이 장기를 두시는지 인기척이 나도 일어나시지 않은 채 장기 두는 자리 옆에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만 한다.
"한 수만 두면 끝이니까 어서 거기 앉아 계셔요."
복덕방 주인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장기를 만지작 거리며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재동에서 가장 크다는 복덕방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어서 탁자 하나에 큰 소파가 하나 그 옆에 등받이가 없는 의자가 3개 있고 벽에는 서울 전체가 나오는 큰 지도 하나와 재동을 비롯해 종로 일대의 지적도 그려진 지도가 걸린 것이 전부였다. 20여 분이 흘렀을까 장기 판이 끝나고 우리는 복덕방 주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재동 일대의 방을 소개하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방 몇 개나 필요해요? 신혼집 얻나?"
"아니고요. 제 조카들 인디 삼 남매가 살 집이 필요합니다."
"독채로 얻을 거요, 셋방 얻을 거요?"
"그게 아직 어린 학생이 하나고 이제 갓 스물 된 아이들인데 독채 살기는 좀 그렇고 주인장 좋은 데루 셋방 좀 골라주시죠."
"가만있거라. 그럼 방은 두 개면 될까?"
"아녀유 지는 서울 살 거 아니닝께 남동생 둘이 살 방으로 좋은데 알아봐 주세유."
그랬다. 기창이는 학교를 더 다녀야 했고 기만이는 취직을 하기 위함인데 난 할머니도 그렇고 서울에서 할 일이 없었다. 우선은 그리 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나는 방 하나에 부엌이 달린 그리고 주인장이 좋은 집이면 족했다. 나의 설명에 복덕방 주인은 재동국민학교에서 멀리 않은 곳에 있는 한옥집의 문간방이 있는 집 몇 군데를 보여줬고,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인심이 좋다는 주인의 집에 계약을 했다. 기만이와 기창이의 새 집을 잘 마련해 줬다는 안도감에 나는 긴장이 스르르 풀려 다리가 무겁고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