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계약한 날 저녁에 삼춘과 주인집에 방문한 우리는 주인에게 당장 짐을 들일 수 있는지 묻고 양해를 얻어 짐을 우선 옮겼다. 당장 오늘 밤엔 삼춘 집에서 잘 것이지만 손 없는 날 짐을 옮겨야 한다는 할머니의 당부 말씀에 그리한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이지만 정리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려 정리가 다 끝난 시간은 저녁 무렵이 되었다. 삼춘은 짐도 옮겨 놨으니 맛있는 저녁을 먹자며 전차를 타고 이동해 우리를 데리고 종로로 갔다. 종로 뒷골목에 생겨난 밥집들 중 한 곳에 들어간 우리는 화롯불에 구운 맛난 고기를 먹었다. 오랫동안 절 밥만 먹던 기만이도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화로에서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맛나게 먹었고, 막내 기만이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고기가 구워지는 대로 먹어 버려 삼춘이 고기 굽기에 바빴다.
"아이구, 녀석아 안 뺏어 먹는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라."
"삼춘, 이렇게 맛난 고기 지는 처음 먹는 디유. 집에서 고기반찬이라도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아버지 눈치에 새엄마 눈치까지 봐가며 젓가락 가기가 어려웠는디 이리 맘 편하게 고기 먹는 건 처음이어유."
"그래 많이 먹어라. 니 고기 먹는 거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으니께. 천천히 먹고. 알았지."
삼춘은 부리나케 사라지는 고기를 연신 구워야 했지만 맛나게 먹는 기창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마냥 말썽 많은 막냇동생 같았던 삼춘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엄마와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를 돌봐주시는 처지가 되고 나니 그 옛날 잠시나마 삼춘을 성가신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논을 팔아 삼춘의 경무대 취직을 도운 일이 그때는 그리 싫었는데 이렇게나마 보상되는 것 같아 내 마음도 편해졌다. 삼춘이 우리를 모른척하고 외면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음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이게 다 엄마가 하늘에서 우리를 돌봐주고 계셔서 그런 거라 믿으며 마음속으로 나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삼춘과 우리는 거리는 좀 되지만 소화도 시킬 겸 재동까지 천천히 걸어서 가기로 했다. 밤이 되니 거리는 행인이 줄어 조용했다. 까만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나뭇잎을 떨군 나뭇가지 사이로 애처로이 반짝이고, 겨울을 재촉하는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주인장이 가을에 이미 도배와 창호지를 새로 한 방을 내일 아침에 가서 걸레질을 하고 청소하기로 해서 오늘 밤은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기창이와 삼춘은 삼춘이 출근 전 새 학교에 전학을 시키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고, 기만이와 나는 방을 청소하러 갔다. 주인집 사람들은 아버지보다는 나이가 적어 보이는 듯했으나, 결혼을 일찍 하여서 그런 건지 하나 있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은 우리 막내와 얼추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데 이미 학교를 가서 우리는 그 얼굴은 보지 못했다.
"구들은 좋아서 방은 따뜻할 거예요. 아가씨가 누나인가 보네. 동생들 잘 살펴 줄 테니 고향 가서도 걱정 말어요."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다는 듯이 동생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해주신다. 그런 말씀을 듣고 나니 걱정은 좀 덜어지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 한구석은 동생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청소를 다 마치자 점심시간이 다 되어 어디서 밥을 먹나 걱정하는 차에 주인아주머니가 들깨수제비를 했다며 같이 먹자고 안채로 부르셨다. 나는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이제 한집 살 사이인데 밥도 같이 먹을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를 부르셨다. 주인집 안채 마루에는 두툼한 카펫이 넓게 깔려 있고 한쪽에는 장작 난로를 설치해 공기가 따뜻했다. 난로의 연통은 서까래를 따라 길게 목을 빼며 벽 쪽으로 난 창문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창문 옆으로 나란히 걸린 사진들 속에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고, 아들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와 찍은 가족사진도 보였다. 나는 그 가족사진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에휴 이사가 쉬운 일이 아닌데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수고했어요. 배고플 텐데 어서들 먹어요."
"네, 감사해유. 잘 먹겠습니다. "
기만이와 나는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인사를 하고 수제비 한 그릇씩을 뚝딱 비웠다.
"배고팠나 보네. 한 그릇 더 줄까요?"
"아니어유. 배부르구먼유."
"아가씨, 부모님은 안 계신가? 이사하는데 같이 오실만도 한데... ."
"예, 어머닌 제가 11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진 몸이 불편하셔서 같이 못 왔구먼유."
"에고,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미안해요."
"괜찮구먼유. 외삼춘이 부모님 대신 잘 살펴줘서 큰 어려움없어유."
"그러게요. 삼춘이 중앙청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우리도 믿고 방을 줬어요. 그래 얼마나 든든해요."
삼춘의 근무지가 중앙청이라는 것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서 복덕방에서 방을 알아볼 때도 이렇게 방을 내주는 주인집 주인에게도 그 어떤 증명도 필요 없는 보증 수표가 되었다. 점심을 다 먹고 주인아주머니가 내주신 과일까지 얻어먹은 우리는 기창이가 다니게 될 학교가 궁금하여 천천히 학교까지 걸어갈 요량으로 집을 나왔다.
"기만아."
"응, 누나. 왜?"
"저기 말이야, 아까 너 주인집 마루에서 수제비 먹을 때 혹시 그 집 사람들이 찍은 가족사진 봤냐?"
"잉, 봤제. 근디 그건 왜 물어?"
"이잉, 우리도 그 가족사진이라는 거 찍을까 해서.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다 모일 시간이 있을까도 싶고, 그냥 사진으로 남겨 놓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구 말요. 서울 온 김에 삼춘이랑 다 같이 찍으면 어떠겄냐?"
"그거 좋은 생각인디. 삼춘헌테 말해 보면 좋을 거 같은디. 내가 삼춘이랑 기창이 만나면 얘기해 볼게."
기만이도 흔쾌히 좋다 하니 이젠 삼춘만 좋다 하면 나는 당장이라도 사진관을 가고 싶었다. 그때였다. 골목길을 돌아 신작로로 나가려는데 마침 삼춘이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삼춘, 기창이는 어떻게 학교는 잘 갔남유?"
"그랴, 내 기창이 교실 들여보내고 교장 선생님이랑 얘기 나누다 오느라 좀 늦었다. 밥은 먹었남?"
"주인아주머니가 들깨수제비해 주셔서 먹었구먼유. 그나저나 삼춘은 드셨는감유?"
"잉, 내도 회사 직원들 만나서 늦은 점심 먹고 오는 길이다. 근디 어디 가는 길이여? 길도 잘 모를 텐데."
"야, 기냥 나와 봤유. 기만이 학교도 궁금허구 해서유."
"그랴, 이참에 삼춘이랑 경복궁이나 가 볼텨? 삼춘 사무실도 잠깐 들려야 해서 시방 갈 참인디 니들도 같이 가자."
"그래도 되유?"
"되고 말고. 삼춘 처도 그쪽에 있어서 타고 와야 하니께 어여 가자."
중앙청은 원래 일제 때 경복궁 전각들을 허물고 세운 건물이니 삼춘이 근무하는 곳이 곧 경복궁이 있는 곳이라 우리는 삼춘을 따라가면 되는 거였다. 경복궁 아니 중앙청에 도착한 삼춘은 일을 보러 사무실로 갔고, 우리는 경복궁을 구경했다. 할머니 말씀으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흥선대원군이 엄청난 돈을 들여 재건하였다고 했는데, 일제가 그 많던 전각을 부수고 조선총독부를 세우는 바람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경복궁을 직접 보시지도 않고 어찌 아셨는지 신기했지만, 기만이와 나는 그 슬픈 경복궁의 역사를 알고 나서 이렇게 직접 와 보니 그 안타까움이 더 컸다. 기만이와 나는 근정전을 지나 안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갔고, 경복궁의 후원인 향원정에 도착했다. 향원정 근처에는 함화당과 집경당이 있었다. 이곳 향원정에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산책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고 저 건청궁에서 시해를 당했을 명성황후를 떠올리니 그 슬픔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