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정을 끝으로 구경을 끝낸 우리는 고종 황제의 도서관이었다는 집옥재로 이동해 집옥재와 팔우정 쪽으로 가 보았다. 삼춘이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으로 우리를 태우러 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집옥재와 팔우정은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다소 이국적이었다. 창호지를 바른 나무 창살이 아닌 유리를 낀 창문이며 보통 네모난 모양의 우리 문과는 달리 중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동그란 문의 형태도 보였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모든 전각을 돌아보고 나니 삼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추 되어 우리는 신무문을 빠져나와 경복궁 담장 아래 서 있었다. 저 멀리 북악산이 보이고 우리가 서 있는 왼쪽으로는 인왕산이 보였다. 나는 시간이 된다면 이곳 경복궁 북쪽 동네도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삼춘의 차가 도착했고 삼춘이 차에 타라는 신호를 하며 경적을 울렸다.
"그래, 구경은 잘 한겨? 궁이 넓어도 일제 놈들이 그 많던 전각을 허물어 버려서 옛날만큼 전각들이 많지 않지?"
"말로만 들었지 임금님 집을 처음 봐서 잘 모르겄구먼유."
"그랴, 어쨌든 고생했다. 기창이도 올 시간이 되었응께 얼릉 집으로 가자."
우리는 기창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귀가를 서둘렀다. 나는 이제 서울에서도 돌아갈 우리 집이 있다는 게 정말 기뻤고, 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삼춘 차는 청운동을 돌아 우리 집이 있는 재동 쪽으로 향했고, 기창이의 하교 시간에 때맞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나, 어디 다녀오는 겨? 삼춘도 같이."
"이잉 삼춘 회사 들어갔다 오는 길에 따라갔다 경복궁 구경하고 왔어. 니는 학교는 어땠어? 재미있었는 겨?"
"핵교를 뭐 재미로 가는 감? 공부하러 가재."
"우리 기창이 기특허네, 그런 생각을 다 허구."
"그랴, 기창이도 이제 고등학교 학생인디 그런 생각할 만도 하지."
삼춘과 기만이 기창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방에 들어가 불을 켰다. 불을 지치지 않는 방바닥이 차가워 나는 우선 요를 깔아 놓았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께 장작불을 파울 장작을 좀 받아왔다. 그 장작을 기만이와 기창이가 함께 아궁이에서 불을 피웠고, 삼춘과 나는 잠시 대화를 나눴다.
"니 내 친구 최가 알지?"
"기만이 데리러 안면도고 같이 갔다 왔는디 어째 모르겄유."
"이잉 그려. 그 친구가 낼모레 서울에 올라온다고 하는디 같이 만이 보드라고. 서울에서 한 번 만나기로 했응게. 이참에 보고 같이 내려가면 쓰겄다."
"그 친구분은 왜 서울 올라오는디요?"
"큰형수랑 조카들 같이 사는 집 문제도 해결되었고, 앞으로 살 방도 찾으러 오는 거지. 니도 서울 올라온 참에 얼굴도 볼 겸 내가 한 번 올라오라고 연통을 넣었다."
"아, 그래유."
"왜 싫은겨?"
"아니유 기만이 기창이 서울에 자리 잡은 일만 신경 쓰느라 그 친구분 어찌 사는지 신경도 안 썼는디, 그리 되었구먼유. 잘되었네유."
"에휴, 큰형수 식구들 집 장만한다고 지 몫으로 있던 논도 팔어 뿌리고 앞으로 그 몸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 내가 어디 일자리를 알아봐 줄라고 겸사겸사 해서 보자고 했어."
나는 삼춘 친구 소식을 듣고 반갑기도 했지만 그간 어찌 지낼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만이의 맘을 돌려준 이도 결국 그 친구분이었는데 고향 가서 또 그 어려운 일을 해결하느라 참 바빴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 사람의 삶도 참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무렵이 다 되어 나는 동생들이 피워놓은 아궁이에 고구마를 깎아 넣고 밥을 했다. 반찬으로는 주인아주머니께서 주신 김치와 고향에서 올라올 때 사 온 광천김을 참기름에 발라 구운 김에 배추된장국을 끓였는데 모두가 시장했는지 맛있게 먹었다. 삼춘은 저녁상을 물린 후 내일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말을 하고 삼춘 집으로 갔다. 우리를 건사하느라 약혼녀를 만난 지 오래되어 만나러 간다며 서둘러 귀가를 했다. 그 약혼녀를 내일이면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장차 외숙모가 될 여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기만아, 기창아 내일 가족사진 찍어야 하니께 얼릉 잠들 자. 피곤하지 않게. 알겄지."
아궁이을 지핀 덕에 따뜻해진 구들장에 깔아 넣은 요는 땀이 날 정도로 따뜻했고, 우리는 창문 밖으로 간간이 들리는 메밀묵 장사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삼춘은 일찌감치 찾아와 명동에 있는 유명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서둘러야 한다며 우리를 재촉했다. 기창이는 교복을 챙겨 입었고, 기만이는 삼춘이 사 준 샤스와 자켓을 입었는데 나는 올라올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었다.
"아이고 옷을 하나 사야쓰겄다. 명색이 가족사진인디 원피스라도 입어야 하지 않겄어.:
"지는 괜찮어유."
"아녀, 내가 안 괜찮어. 양장점이라도 가서 맞춤옷 해주고 싶은디 그럴 시간은 없고 기성복 하나 사입자."
삼춘은 서둘러 차를 몰았고 명동 사진관 근처에 있는 양장점에서 나는 옅은 갈색 원피스를 하나 사 입고 사진관에 갔다. 사진관에 도착하니 삼춘 약혼녀라는 분이 먼저 와 우리를 반겼다.
"어머 어서 와요. 반가워요. 나는 여기 삼촌이랑 결혼할 김영숙이에요."
삼춘의 약혼녀는 서울 아가씨답게 잔뜩 멋을 부린 채로 우리를 맞았다. 머리는 최신 유행하는 파마를 했고 허리가 잘록한 원피스에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목에는 커다란 진주알들이 알알이 박힌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손목에는 고급진 시계가 자랑이라도 하듯이 번쩍거리고 세련되게 그린 눈썹과 입술은 서울 멋쟁이의 표본 같았다.
"어머 예쁜 원피스 입었는데 뭔가 허전하다. 잠깐 네 진주목걸이 걸고 사진 찍는 건 어때요?"
그 약혼녀라는 사람은 내 의사는 중요하지는 않다는 듯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내 목에 그의 진주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당신이 보기에도 잘 어울리지 않아요? 인물이 더 사네. 삼촌이 돼 가지고 조카 예쁜 목걸이 하나 안 사주고 뭐 했어요. 여자는 꾸미기 나름인데. 괜찮죠? 조카분."
나는 얼떨결에 받아 건 진주목걸이를 한 채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앞 줄 의자에는 나와 기창이가 앉고 뒤줄에는 삼촌과 기만이가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는 여러 자세를 시범 보이며 서 너 차례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약혼녀도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넉살 좋게 기만이와 삼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삼춘 팔짱을 끼고 섰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서울 여자는 애정 표현도 참 적극적으로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요란한 가족사진을 찍고 다 함께 남산 구경을 가기 위해 사진관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