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는 사촌 형님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빨리 진척되어 이틀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박목수는 당분간 쓸 수 있는 장작을 가져다주었고, 흙담과 구들을 손봐준 이는 농사지은 고구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큰형수를 이웃 모두가 손가락질만 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뜻밖의 호의에 의아해하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도련님 덕분에 아이들과 지가 이리 함께 살게 되었유. 도련님 아니었으면 죄 많은 지 때문에 애들도..."
집수리를 마치고 짐을 들이던 날 아침에 큰형수는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떨구었다. 아홉 살 소년이 스물아홉이 되는 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굴곡진 일마다 함께 했던 큰형수가 눈물을 떨군다. 큰 형님이 계셨다면 흘릴 일이 없는 눈물이라 생각하니 송구한 생각뿐이다.
"형수님, 그리 생각하지 마시고 이제 아이들과 잘 생각만 하셔유. 오늘부터 아이들과 함께 사시니 걱정 마시고 행복한 생각만 하시구요. 지는 내일 상경해서 본 일 좀 보구 올게유."
"서울엔 무슨 일로 가셔유?"
"재 너머 윤가 아시쥬? 그 친구 조카 출가했다 환속허구 서울에 올라갔는디 지가 그 친구 환속 허는데 같이 갔었구먼유. 고맙다고 한 번 보자고 해유. 그라고 앞으로 살 방도도 찾아봐야 하구유."
"그러셔유. 그럼 조심히 잘 다녀오셔유. 지랑 애들 걱정은 말고유."
큰형수와 태환이, 인환이, 덕순이까지 한 집에 살게 해주고 나니 한편으로 안심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군 입대 전 모두가 한 집에서 복작복작 살던 시절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 그리움은 전쟁이 나고 내가 불구가 되니 다시는 맛보질 못할 것 같아 느끼는 허전함인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단란한 가정울 이룰 수 있을까? 불구의 몸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 지아비가 되고 아비가 된다는 건 나와는 아주 멀어진 꿈같은 일이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픔마저 느껴졌다. 밤이 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든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들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든 탓에 속이 허헌 참에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하늘은 시퍼렇고 샛별이 보였다. 아침 기차를 타자면 서둘러야 했기에 짐을 꾸렸다. 잠이라고 해야 당장 입을 옷 몇 벌 이외에 꾸릴 것이 없어 짐 꾸리는 데는 시간이 들지 않았다. 나는 세수를 하러 방을 나가 안채 쪽으로 걸어갔다.
"일어났는감. 농사 일하는 것도 아니믄서 왜 이리 일찍 일어난 겨?"
"오늘 서울 갔다 올려구유. 윤가 만나고 올기유."
형님은 그날 이후로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고, 나는 그 형님의 물음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답을 했다.
"엊저녁도 안 먹고 자던디 주먹밥이라도 싸서 가자고 가거라. 내 안사람에게 일러 둘테니."
형님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삽과 호미를 챙겨 자게를 메고 밖으로 나가며 말을 이어 갔다.
"도둑놈 조심허고 전쟁통에 서울에는 걸인과 도둑이 들끓다더라..."
그랬다. 형님은 땅에 대한 애착이 큰 나머지 내가 큰형수와 아이들을 위해
어렵게 모아 사 둔 땅을 파는 것이 못마땅했던 거였다. 게다가 이렇게 내가 불구가 되고 나니 살 길이 막막한 데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화가 난 것이었다. 형님의 생각은 이해가 되나 나는 그리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 결정엔 후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녹록지 않은 나의 앞으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눈앞의 난관부터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뒤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한 결정이니 후회는 없다.
막내 형수가 챙겨준 주먹밥과 옷가지를 꾹꾹 눌러 담은 가방을 메고 지팡이에 의지해 읍내를 향해 걷는다. 이 몸으로 걷자면 1시간은 족히 걸리겠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성한 다리로 걸을 때는 보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얗게 서리 내린 배추밭의 배추와 무가 김장할 때가 곧 왔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완상 하며 걷는 길이 오히려 내 삶의 불안들을 말끔히 소멸시키고 새로운 구상을 하게 하는 것 같아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기차역이 있는 읍내까지 갈 수 있었다.
역에 도착하니 10분 전 서울행 상행 기차가 막 떠났다고 했다. 다음 기차는 10시 30분 기차로 서울까지 7시간이나 소요된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기차표를 끊고 막내 형수가 챙겨준 주먹밥을 대합실에서 물도 없이 먹었다. 따뜻한 보릿물 한 잔이 생각나는 목메임이었다. 나는 주먹밥을 다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역 대합실을 나왔다. 대합실의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빛 덕분에 그나마 따뜻했던 대합실과는 다르게 밖은 낙엽이 뒹굴고 칼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대합실로 들어왔다. 오전 9시가 지나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대합실은 어느새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웅성거렸다. 기차가 도착할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더 남았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차에 건너편 자리에 누가 보다 버리고 간 신문이 보였다. 나는 그것이라도 읽어 볼 요량으로 지팡이를 건너편 의자로 뻗어 신문을 콕 집어 내렸고 내 앞으로 끌어 왔다. 날짜를 보니 두어 달 전인 10월 어느 날 신문이었다. 누가 찢은 것인지 모르나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반쯤 찢겨 없어졌고, 방미를 다룬 기사글이 실려 있었다. 기사 내용은 전쟁 후 한국과 미국의 군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조항과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협상 건을 다룬 기사였다. 신문을 읽다 보니 시간이 얼추 되어 가방을 둘러메고 개찰구에 가 섰다. 내 차례가 되어 기차표를 확인 후 플랫폼을 향해 걸었다. 좌석이 정해자지 않은 자유석을 끊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기차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둘러 플랫폼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그럴 수 없기에 체념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어차피 앉아가든 서서 가든 기차에 몸을 실으면 서울에 가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서두르지 않았다. 저 멀리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온다. 이제는 기차에 오를 일만 남았다. 나는 힘겹게 기차에 올라 차창 밖을 바라봤다. 천천히 가로수와 전봇대가 뒤로만 도망간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멍하니 밖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