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윤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에 나는 걸어서 명동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12월이 되고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서울 하늘은 잔뜩 어두웠다. 저 멀리 숭례문이 보이고, 눈앞에 우뚝 선 남산이 어둑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또렷이 보였다. 서울을 올라올 때마다 보게 되는 전경이 반갑고 친숙한 것은 기분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일 거다. 서울역을 빠져나와 걷는 도로 곳곳에 여전히 구걸하는 이들이 보이고,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간다. 부지런히 걸어 명동에 도착한 나는 윤을 만나기로 한 명동성당에 갔다. 고딕 양식의 성당의 아치형 출입구를 지나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보이는 천장과 성모마리아 상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엄숙함으로 숙연해졌다.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부르는 성당의 유리창엔 이름 모를 성자 이야기가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내 부모님의 부모님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부터 대대로 부처님을 믿는 집안 내력으로 이 땅에 들어온 지 100년 가까운 이 종교를 난 알지 못한다. 누구는 그들을 박해하였고, 박해받은 그들은 그들이 믿는 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의란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단단한 믿음. 내 삶에도 그런 믿음을 뿌리내려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성당 내부를 돌아본 후 밖으로 나와 윤을 기다리자 잠시 후 윤가가 왔다.
"어이, 최 상사, 반갑다. 몇 시에 도착한 겨?"
"4시경에 도착해서 걸어왔제. 명동엔 뭔 일로 온 겨? 출근은 안 한겨?"
"이잉 조카들이랑 가족사진 찍느라 시간 좀 냈어. 저녁 아직 안 먹었지. 같이 가자."
윤은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내 팔을 잡고 길을 나섰다. 윤을 따라간 곳은 명동에서 이름값 좀 한다는 요릿집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윤의 조카와 윤의 약혼녀라는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반가워요. 최상사 님. 김영숙이에요. 상경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
윤의 약혼녀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 나를 이리도 반갑게 맞는 그녀의 당당함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 저변에는 윤택한 삶과 건강한 신체라는 것이 쌓여 있기 때문이라 생각을 잠시 했다. 내 시선을 정신없이 고정시킨 김영숙이라는 여자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이는 윤의 큰 조카였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차려입었을 갈색 원피스와 진주 목걸이를 한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열 살 남짓했던 어린 소녀가 어느덧 나의 마음을 훔치는 숙녀가 되어버려 내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난 이런 속마음을 들킬까 염려되어 그 아이에게 아니 이젠 그녀가 된 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만이 다시 보니 반갑구먼. 서울살이 시작한 소감은 어뗘? 속세에 다시 오니 정신이 없을 것 같기도 헌디."
나는 일부러 기만이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다 그렇지유. 뭐. 서울살이라고 별것 있을라구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거 같어유. 형님은 잘 지냈셨는감유?"
기만이는 어느새 나를 형님이라 불렀다. 열 살이 넘게 나이가 많은 삼춘 친구인 나를 형님이라 불러주니 왠지 좀 젊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잘 지냈어. 해결해야 할 일도 다 정리 잘했고."
"최가야, 그게 우째 기만이 덕이냐 내 덕 아닌 감. 자 얘기는 밥 먹으면서 더 허고 어서들 밥 먹자고."
막내 기만이와 큰 조카는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기만 하고 거들지 않은 채 조용히 밥을 먹는다. 가끔씩 나와 눈이 마주친 큰 조카가 눈으로 반갑다는 인사를 하는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착각일까? 그녀가 자꾸 나를 응시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밥을 다 먹고 윤이 그의 약혼녀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오는 사이 우리는 다방에 가 차를 마셨다. 기만이와 기창이는 젊은이답게 시원한 과일 주스를 마셨고, 그녀와 나는 따뜻한 쌍화차를 마셨다. 아직 그녀는 쓰디쓴 커피가 낯설었고 난 그런 그녀에 맞춰 같은 걸로 마셨다.
"큰형수 일을 잘 해결되신 거예요?"
"어떻게 알고?"
" 전에 말씀하셨는데... 큰형수님 험한 일 당하시고 조카분들과 헤어져 살아서 같이 살게 해주셔야 한다고요."
"아, 제가 그랬던가요? 별 얘기를 다 했네요. 주책맞게."
"제가 생각해도 잘하신 일이라 생각해요. 부모 자식이 죽지도 않았는데 떨어져 사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
"그리 마음이 따뜻하시니 누구랑 살아도 잘 사실 거예요."
"제가요? 몸이 이러니 누가 저와 함께 살 생각을 할까요?
"그리 생각은 마셔요. 전쟁통에 몸과 마음 다친 사람이 한 둘인가요? 정신만 똑바른 사람이라면 다 살아갈 방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죽지 마세요."
나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그녀가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주니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가 한순간 풀어지는 기분과 함께 삶의 희망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가까운 미래에 그녀가 나의 아내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녀도 허락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찬 밖에는 서울의 첫눈이 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내가 보아 온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윤이 오기를 기다리며 눈 내리는 풍경을 지켜봤다.
윤이 약혼녀를 데려다주고 온 시각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우린 윤의 차에 몸을 싣고 윤의 조카들이 집이 있는 재동으로 향했다. 눈 쌓인 경복궁을 지나 안국동을 거쳐 재동에 조카들을 내려주고 윤과 나는 차를 돌려 윤의 하숙집으로 향했다.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차로 가는 내내 차바퀴에 눈 밟히는 소리가 뽀드득뽀드득 들렸다. 서울의 눈 내리는 밤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내 마음에 쏙 박혀버린 탓일 것이다. 오늘 밤은 모처럼 악몽과 걱정 없이 잠이 들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