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想念)

by 자강



윤의 집에 와 윤과 나는 별다른 대화 없이 잠지리에 들었다. 윤도 나도 고단한 하루였기에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자리에 누운 것이다. 윤의 약혼녀를 직접 만나고 보니 윤의 고충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위 장성의 외동딸로 자란 윤의 약혼녀는 말과 행동에서 주눅 듦이란 찾을 수 없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모두 그녀의 든든한 뒷배경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그런 것에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집안 내력에 시골에서 자란 윤은 한참 모자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지금의 자리와 노력을 높게 보고 그녀의 아버지가 선택한 것임을 아는 윤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다. 윤이 나보다 나은 것이라곤 단 하나. 건강한 육체로 온전한 몸이 유일할 것이다. 이렇듯 결혼도 상대의 조건을 보게 되는 각박한 세상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도 윤처럼 지고 시작하는 사랑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그녀가 부모도 없고 직업도 없는 상이군인인 나를 배우자로 생각할까? 그리고 그녀가 날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기나 한 지까지 별의별 생각을 하느라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는 밤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윤은 그의 조카들을 데리고 남산 구경을 간다고 한다. 윤이 나도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나는 여독을 핑계로 함께 하지 않았다. 이 몸으로 남산을 오르기는 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아무도 내 왼다리의 부재를 의식하는 이는 없으나 나 혼자 자격지심을 느낄 것이기에 나는 나의 불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남산에 오르면 흙냄새 나무냄새를 맡을 수 있고, 서울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며 나와 함께 가려고 윤은 나를 꼬드겼지만 나는 극구 사양했다. 윤이 가고 외로이 방에 남은 나는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바깥 온도는 겨울이 되어 제법 쌀쌀한데도 불을 땐 아랫목의 요 안은 따뜻했고 해가 든 윗목은 눈이 부시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고요히 요 위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남산에 오르는 나를 천천히 상상했다. 신사참배를 하던 조선 신궁이 있던 남산에 남산공원이 생겼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은 탁 트인 전망 덕에 서울 시내를 고루 볼 수 있었다.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정면엔 명동성당이 보이고 더 멀리 중앙청과 북악산이 보였다. 남쪽으로 돌아서 바라보니 한강이 보인다. 어느 나루인지 배를 띄워 강을 건너는 뱃사공이 보이고 강 건너 모래사장인 듯한 허허벌판이 보였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 향긋한 냄새가 함께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콧속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나는 그 냄새에 취해 무언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두세 시간을 잤을까? 하숙집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안에 계셔요? 주인아주머니가 진지 드시래요."


나는 잠결에 그러 마하고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족을 끼우고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 세수를 하려는데 식모 아이가 따뜻하게 데운 세숫물을 가져다주었다. 나이가 대략 큰 형님의 막내딸 덕순이 또래로 보였다. 나는 얼떨결에 그 식모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 너 나이가 몇 살이니?"


"왜 유? 몇 살이나 돼 보이는가요?"


충청도 사투리를 하는 걸 보니 나와 동향 사람인가 싶어 고향도 물어보았다.


"지 고향은 예산이구유. 내년이면 열 어섯살이 되는 구먼유. 이름은 명자여유. 이명자"


"그래, 어쩌다 서울살이 하게 되었니?"


"전쟁통에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공장 취직한 고모 따라왔다가 공장일 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고모가 다니는 공장장님이 소개해줘서 왔유."


"에휴, 그래 힘들진 않은 겨?"


"주인아주머니가 전쟁 때 죽은 딸이랑 나이가 같다고 하면서 엄청 잘 챙겨주는 구먼유. 야간 핵교도 보내줘서 중학교까지는 다녔유."


"주인아주머니를 잘 만나서 다행이구먼. 나도 너만한 질녀가 있는디 형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하고 오빠 둘이랑 살고 있지."


식모 아이는 고향 사람은 아니어도 같은 충청도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낯빛이 밝아져 화색이 돌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잘해준다지만, 어린 나이에 하숙생들 빨래하고 방 청소하고 설거지에 각종 심부름을 하기에 고충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의 맘이 편지 않았다. 나는 식모 아이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 말끔하게 다 먹고 상을 물려 부엌까지 밥상을 직접 갖다 주었다.


점심도 아닌 것이 늦은 아침밥을 먹은 나는 소화도 시킬 겸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윤은 점심까지 먹고 오겠다고 했으니 오후 늦게가 돼서야 올 것이기에 나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신작로로 들어선 나는 가회동 한옥촌 골목골목을 구경했다. 날은 겨울 답지 않게 따뜻했고 거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일요일 오후 서울의 거리는 시골에서 상경한 상이군인에겐 낯설고 붐비는 거리였다. 성탄절을 앞둔 서울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표정으로 기대에 차 있는 듯한 표정이었고 두 손엔 뭔가를 들고 지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든 가방과 보따리에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나 맛난 음식이 들어있기라도 한 걸까? 나는 나도 저들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기쁘게 해 줄 선물을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다시 생기길 바라며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오니 동십자각이 보이고 중앙청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저 건물이 생긴 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어도 우리는 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 땅에 조선왕조가 일어나고 무너지기까지 우리의 얼을 상징하던 궁이 일제에 의해 허물어지고 흉측한 것이 새로 생겨났을 때 통곡의 눈물을 흘리던 이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간 것인가? 힘없는 백성이 나라를 되찾았을 때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며 중앙청을 뒤로하고 윤의 하숙집으로 나는 돌아왔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