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을 찍고 남산 구경을 가기로 한 우리는 서둘러 사진관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삼춘이 회사에 갈 일이 생겼다며 삼춘의 약혼녀와 우리 삼 남매를 남겨 놓고 가버린 상황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 정경이 다 보인다는 남산 구경을 하자는 삼춘의 말에 잔뜩 기대를 한 우리 삼 남매는 또다시 삼춘을 기다려야 했고, 아직은 어색한 삼춘의 약혼녀와 삼춘도 없이 기다리는 일은 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멋쩍게 삼춘을 기다리자니 무엇을 하며 기다리나 하고 고민을 하는데 삼춘 약혼녀가 명동 성당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이모할머니가 암자의 주지 스님이시고, 할머니께서 불자이신데 우리 보고 유럽 사람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만나러 성당에 가자고 한다. 아마 이 자리에 할머니가 계셨다면 택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달리 어딜 갈 곳을 몰라하던 차에 그녀의 제안에 딴지를 걸진 않았다.
삼춘의 약혼녀가 우리를 이끌고 간 명동성당은 잔뜩 흐린 하늘을 찌르기라도 할 듯이 높고 뾰족한 첨탑이 솟아 있었다.
"절에 다녀서 성당은 처음이죠? 나는 천주교 신자라 이런 성당에서 일요일마다 미사를 봐요. 이 명동성당은 구한말에 세워져서 60여 년의 세월 동안 우리나라 천주교를 상징하는 성당이에요."
약혼녀는 성당에 관한 설명을 할 때는 사진관에서 보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 변화가 종교적 신념에서 발현된 것인지 역사적 배경지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아치형으로 된 입구에 난 문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단이 보이고 그 단까지 길게 길이 난 양 옆으로 의자들이 줄을 맞춰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형형색색의 유리로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유리창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거였다. 날이 흐려 쨍한 햇볕은 아니었지만 알록달록한 유리창 너머 아주 희미한 빛들이 들어와 성당 안을 밝히고 있어서 분위가 왠지 엄숙해 보였다.
"자 여기 의자에 앉아요."
약혼녀는 옆으로 길게 뻗은 의자에 우리를 앉게 안내했고, 그녀가 믿는다는 하나님과 성모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설명했다. 부처님을 믿는 할머니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을 것 같아 이 상황이 난 좀 웃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살짝 나왔는데 그 소리를 그녀가 듣게 되었다.
"어머, 제 얘기가 좀 지루했나요? 아니면 어디 불편한 건 아니죠?"
"죄송해유. 그냥 딴생각하다 웃음이 나왔어유. 오해는 마셔유."
"아, 내 생각만 했네 재미없는 얘기 듣느라 지루했겠다. 우리 삼춘올 기다리는 동안 맛있는 케이크나 먹으러 갈까요?"
약혼녀는 또 우리를 데리고 그녀의 단골집이라는 케이크집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아주 달다단 빵을 먹으면서 단판빵을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를 위해 여기에 있는 빵들을 사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맛나게 빵을 먹은 나와 동생들은 다시 약혼녀를 따라 저녁을 먹기로 한 요릿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삼춘과 삼춘 친구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기만이를 데리러 함께 안면도를 갔다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좀 더 되었다. 삼춘말로는 해결해야 할 집안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는 친구는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려 상경한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 지도 궁금했던 나는 그가 빨리 나타나기를 내심 바랐다.
요릿집 직원이 안내한 자리로 가 30분쯤 기다리니 삼춘과 친구가 함께 왔다. 삼춘의 약혼녀는 우리가 인사를 하기 전에 처음 만나는 삼춘 친구에게 덥석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어머, 반가워요. 최상사 님. 김영숙이에요. 상경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
느닷없이 먼저 안사를 하는 그녀에게 놀랐는지 당황함이 삼춘 친구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그런 어색한 상황을 모른 척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는데 그가 먼저 기만이에게 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기만이 다시 보니 반갑구먼. 서울살이 시작한 소감은 어뗘? 속세에 다시 오니 정신이 없을 것 같기도 헌디."
그의 인사에 동생 기만이도 말을 건넸다.
"다 그렇지유. 뭐. 서울살이라고 별것 있을라구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거 같어유. 형님은 잘 지냈셨는감유?"
기만이는 어느새 그를 형님이라 불렀다. 열 살이 넘게 나이가 많은 삼춘 친구인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걸 보고 나도 적잖이 놀랐는데 그 역시 그래 보였다.
"덕분에 잘 지냈어. 해결해야 할 일도 다 정리 잘했고."
"최가야, 그게 우째 기만이 덕이냐 내 덕 아닌 감. 자 얘기는 밥 먹으면서 더 허고 어서들 밥 먹자고."
막내 기창이와 나는 삼춘과 그가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듣기만 하고 거들지 않은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가끔씩 나와 눈이 마주친 그와 눈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다였다. 저녁 식사가 다 끝나고 삼춘은 약혼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러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또 삼춘을 기다려야 했기에 다방에 가 차를 마셨다. 기만이와 기창이는 날이 추운데도 과일 주스를 마셨고, 나는 따뜻한 쌍화차를 마셨다. 난 아직도 서울 멋쟁이들이 죽고 못 산다는 쓰디쓴 커피가 낯설었다. 도대체 숭늉보다 못한 그 맛이 뭐가 좋다고 비싼 돈을 들여 먹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멋이고 낭만이라는데 나는 그런 낭만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데 그도 나와 생각이 같은 것일까? 그도 나와 같은 쌍화차를 마시니 말이다.
"큰형수 일을 잘 해결되신 거예요?"
"어떻게 알고?"
"전에 말씀하셨는데... 큰형수님 험한 일 당하시고 조카분들과 헤어져 살아서 같이 살게 해주셔야 한다고요."
"아, 제가 그랬던가요? 별 얘기를 다 했네요. 주책맞게."
"제가 생각해도 잘하신 일이라 생각해요. 부모 자식이 죽지도 않았는데 떨어져 사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
"그리 마음이 따뜻하시니 누구랑 살아도 잘 사실 거예요."
"제가요? 몸이 이러니 누가 저와 함께 살 생각을 할까요?
"그리 생각은 마셔요. 전쟁통에 몸과 마음 다친 사람이 한 둘인가요? 정신만 똑바른 사람이라면 다 살아갈 방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죽지 마세요."
우리가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창 밖에 눈이 왔다. 눈은 서울의 첫눈치곤 제법 큰 함박눈이 내려와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우리 모두 그 함박눈을 보고 있는데 약혼녀를 데려다주러 갔던 삼춘이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8시. 이제 삼춘 차를 타고 집에 갈 일만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말없이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봤다. 온 세상이 깨끗한 함박눈으로 하얗게 쌓여 모든 걱정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