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은 우리를 내려주고 삼춘 친구와 곧바로 삼춘집으로 향했고 우리는 집으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방을 비워서 사람의 온기가 없는 방은 춥고 바닥은 차가웠다. 기만이가 재빨리 기창이와 함께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나는 방을 쓸고 닦은 후 이부자리를 폈다. 오늘 낮에 가기로 했다 못 간 남산은 내일 오전에 가기로 하고 삼춘은 내일 아침에 우리를 태우러 오겠다고 했다. 삼춘 말로는 삼춘 친구도 같이 올 거라 했지만 나는 왠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린 눈으로 길은 미끄럽고 많은 계단을 오르고 산을 타는 일을 그 불편한 다리로 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쯤 되니 삼춘이 너무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권하다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오지 않길 바랐다.
"누나, 아까 그 삼춘 친구 말여 자꾸 밥 먹을 때 누나만 바라보던디 무슨 일이 있었는 감?"
눈치 빠른 막내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짐짓 모른척하며 시치미를 뗐다.
"뭔 소리여. 기만이 데리러 안면도 갈 적에 같이 가기도 해서 기냥 반가워 그런 거지. 별 뜻이라도 있을라구."
"그랴? 근디 반가울 것 또 뭐 있남?"
"......."
난 딱히 대답을 않고 씻으러 간다며 방을 나왔고, 방 안에서 기만이와 기창이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모르게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나 싶어 궁금하기도 했으나 기창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달아올라 자리를 피하려고 나와 버린 것이다. 어느새 눈은 그치고 까만 하늘에 별들이 보였다. 쨍하게 시린 하늘에 하나 둘 떠 있는 별을 보니 시골 고향집 마당에서 보던 별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점시 잊고 있던 할머니와 아버지 생각에 미치자 어서 고향집으로 내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삼춘은 약속 시간보다 30분가량 일찍 우리를 데리러 왔다. 함께 오려던 친구가 오지 않았고 외삼촌 약혼녀도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가느라 함께 오지 않았기에 시간이 단축되었던 것이다.
"준비들은 다 헌거여?"
"삼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저흰 준비 다 됐구먼유."
"그럼 차에 타고, 뭐 빠뜨린 건 없지?"
우리가 삼춘 차에 오르자 차는 남산으로 향했고, 삼춘은 명동 근처 어느 곳에 차를 대고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걸어갔다. 명동에서 남산 쪽으로 난 길을 조금 걷다 보니 일제가 만들었었다는 조선 신궁을 가기 위해 만든 계단길이 나왔다. 우리는 그 계단길을 열심히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오르고 나니 남산의 정상부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정상부까지 또 다시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어제 내린 눈이 응달진 곳에는 녹지 않고 남아 있었지만 해가 비치는 곳에는 눈이 녹아 길이 드러나 있었다. 삼춘은 동서남북 방향을 돌며 서울의 주요 곳을 설명해 주었다. 북쪽으로 보이는 북악산과 그 앞에 있는 경복궁과 중앙청 그리고 남산 바로 앞에 있는 명동성당이 보였다. 동쪽으로 보니 성곽이 일부 헐린 흥인지문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한강 인도교와 철교가 복구되어 있었다. 저 한강 다리는 전쟁통에 끊어져 많은 사람이 피난도 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고 했는데 휴전 후 복구를 했는지 사람들과 차들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한강 철교를 보니 문득 전쟁통에 부모를 모두 잃고 우리 집에 버려졌던 은수가 생각났다.
"맞다. 기창아, 너 은수 생각나지? 그 은수 집 어디인 줄 알어?"
"그건 왜?"
"왜긴, 우리 서울 올라와 살기 시작하면 은수부터 만나기로 한 거 까먹은 겨?"
"아니, 생각나, 근데 우리 이제 은수 못 만나."
"은수 지금 서울에 없어."
"왜? 어디 갔는디?"
"대만에 갔어. 작은 아버지 사업 차 대만으로 온 가족이 다 갔는디 은수도 같이 갔구먼."
"언제 갔는디? 넌 언제 그걸 안 겨?"
"서울 올라오고 나서 알았어. 은수가 편지로 써준 전화번호로 전화해 봤는디 안 받더라구. 편지에 쓰기를 올해 안으로 대만으로 간다구 했구먼."
"이잉, 그려 언제 돌아온다는 건 알고?"
"모르지, 은수 작은 아버지 사업 때문에 간 것인 게 은수도 모를거여."
기창이는 은수 이야기에 풀이 죽은 채로 대답했다. 내심 서울로 오면 은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던 기창이는 은수가 대만에 가버린 일로 적잖이 실망한 듯 보였다.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구먼. 우리 기챙이 숙 상해서 어쩐다냐. 날도 추운디 구경은 이만하구 내려들 가자. 자유시장 가서 시장 구경도 하고 밥이나 먹자."
삼춘은 풀이 죽은 기창이를 다독이며 앞장서 걸어 내려가고 우리도 추운 귀와 볼을 비비며 남산 구경을 마치고 산을 내려갔다.
우리는 자유시장을 가기 위해 명동 방향이 아닌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갔다. 저 멀리 초록색 돔 지붕의 서울역 역사가 보였다. 일제는 동양 최고의 역사는 도쿄역이고 둘째는 경성역이 될 것이라면서 경성역을 지었다고 한다. 혹자는 경성역이 도쿄역 모방해 만들었다고 했지만 실제는
유럽 어느 도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건축양식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삼춘이 설명해 줬다. 우리는 그 유럽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서울 역사를 내려다 보며 남산을 내려와 자유시장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바람을 쐬며 남산을 구경하고 나니 허기가 느껴졌고 시장 안 이름 모를 식당에서 우리는 뜨거운 국밥으로 속을 채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시장에 가득 채운 온갖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불이 너서 규모가 다소 적어졌다지만 고향의 5일장에 비교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크고 물건도 많았다. 삼춘과 우리는 한참이나 시장 구경을 한 뒤 삼춘차가 있는 명동으로 갔다. 삼춘 차에 몸을 싣자 피곤함이 밀려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동생 기창이도 나와 함께 잠이 들었고, 큰 동생 기만이만 삼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나는데 너무 고단한 나는 그 소리마저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