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셋이 다 모인 우리 삼 남매는 기창이 방에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새엄마가 저녁이 다 준비되었다고 알리러 옥희를 보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저기, 언니 엄마가 저녁 다 되었다고 안방으로 건너 오래."
" 기창아, 옥희 저것이 나를 보고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냐?"
"그려 맞구먼. 평상시 허지도 않던 것이 어쩐 일로 누나헌테 언니라 부르지?"
기만이는 집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어 그렇다고 치더라도 기창이와 나는 옥희가 지 엄마를 따라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걸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평소 성훈이를 서울로 보내고 싶어 했던 새엄마가 삼춘을 통해 어떻게라도 서울에 딸려 보낼 요량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삼춘과 서울을 갈 사람은 내 동생 기만이와 기창이 인데 새엄마는 염치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그건만은 꼭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 삼춘은 사랑에서 따로 겸상을 했고, 나와 기만이 기창이는 안방에서 새엄마와 옥희, 성훈이 그리고 막내 기호와 함께 밥을 막았다.
"기만이 니 절에서 고기도 못 먹었을 텐데 어여 먹어라."
새엄마가 몇 년 만에 봐서 반가워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기만이에게 닭다리를 뜯어 주는 것을 보고 우리는 모두 적잖이 놀랐다.
"됐유. 지는 닭고기 별로 안 좋아해 유. 여태 모르셨는 감유?"
새엄마가 준 닭다리를 기만이가 막내 기호 밥 위에 옮겨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다는 표정으로 막내 기호가 넙죽 받아먹는다. 그 모습을 본 새엄마는 막내에게 눈짓으로 나무라지만, 막내는 그것도 눈치 없이 못 알아차리고 해맑게 웃고만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답답하여 기만이와 기창이에게 어여 밥 먹고 우리 방으로 가자는 눈짓을 줬다. 기만이와 기창이는 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재빨리 우리는 밥을 먹고 상을 물린 뒤 다시 기창이 방으로 들어왔다.
"누나, 삼춘은 언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겨?"
"낼모레에는 휴가가 끝나서 서울 갈 거 같어. 왜 궁은 헌 거여?"
"이잉 삼춘 서울 갈 때 나도 따라가고 싶어서 그러지. 은수도 한 번 보고 싶고..."
"은수? 전쟁 때 우리 집에 피난 살다 간 그 애 말허는 거여?"
"그려 그 은수."
"니 그 애랑 계속 소식 주고받았던 거여?"
"아녀, 그건 아니고. 나도 삼춘이 그 애 작은아버지 집 찾아주고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소식 못 들었다가 얼마 전에 편지를 받았구먼."
"그래? 잘 지낸다던?"
"그런 거 같진 않어. 작은아버지가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 사장 되어서 돈은 많이 벌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핵교도 좋은 데 댕기는데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그러던디."
"에구, 그 애가 사는 게 재밌을 리가 있겄냐? 지 부모 다 죽고 작은아버지가 지를 버리고 돈만 챙겨 도망쳤는데 정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서 남보다 못할 것일 거구먼."
"그래서 그런가? 내 보고 중핵교 졸업하구 서울에 올라와 살면 안 되냐구 그러더라구. 서울서 고등핵교 다니라고 말여."
"그려? 기창이 니 생각은 어뗘? 고등핵교는 서울서 다녀 볼텨?"
"그게 참말이여? 그럼 누나랑 형은 어떻게 허구?"
"형도 니랑 서울 가 살아야 제. 내는 할머니도 계시니 집에 있어야 하지 않겄냐?"
"누나도 같이 가면 안 되는 감?"
기창이가 조르며 말하니 기만이가 타이르며 내가 집에 남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고 나서야 기창이는 떼를 쓰는 걸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삼춘이 우리가 있는 안채로 건너와 우리를 불렀다.
"기만아, 기창아 시방 다들 방에 있는 겨?"
"예"
우리는 일제히 대답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삼춘이 우리에게 말없이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밤이 되어 차가워진 공기에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
"어여, 나와 봐 공기는 차도 속은 뻥 뚫릴 것 같이 좋구먼."
우리 삼 남매는 삼춘과 함께 그렇게 밤 산책을 나갔다. 골목길은 담장 따라 심어 놓은 소국들이 은은하게 꽃향기를 풍겼고, 골목을 나와 신작로를 걸을 땐 야산 밑으로 억새들이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었다. 그윽한 달빛 아래 풀벌레와 산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삼춘이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을 초입에 세워진 장승이 있는 곳까지 걷게 되었다.
삼춘은 아버지를 설득해 기만이와 기창이를 이참에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리하마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그란디 기만이 기창이가 죄다 서울 올라가면 우리 순열이는 우짜냐?"
"지는 괜찮아유. 할머니도 돌아오시면 돌봐드려야 하니께 지는 집에 있어야쥬."
"그렇긴 해도 니도 이젠 나이도 찼고 시집가야 할 거 아니냐?"
"삼춘이나 어서 장가 가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유. 엄니가 살아 계셨으면 삼춘 장가부터 들였을 거구먼유."
"그랬겠지. 우리 누님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은 겨. 우리 내일 사돈어른 모시러 갈 겸. 누님 위패 모신 절이나 다 같이 댕겨 오자. 워뗘 좋지?"
"참말이지 유? 그러면 우리는 대찬성이여유."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밤은 깊어 달빛은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푸르스름한 빛을 내었고, 내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리고 행복한 달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