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이와 기창이를 따라 서울에 온 지 벌써 달포가 넘었다.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얼마 간이 되었든 두 동생이 자리를 잡고 생활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머물다 오라 했지만 있어도 너무 오랫동안 서울에 머문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우리 삼 남매의 서울 생활이 궁금할 이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빼고도 또 있을 터이고 그로 인해 내가 고향 집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할 것은 뻔해 보였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창이의 전학과 기만이의 법원 서기 취직 그리고 그의 정혼. 외삼촌과 기만이 , 기창이의 암묵적 동의와 지지 덕에 승낙은 하였으나 할머니와 아버지의 반대를 어찌 넘나 하는 걱정과 집으로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저녁때가 되어 기만이와 삼촌이 함께 우리 집으로 퇴근을 했다.
"삼촌, 어떻게 하숙집으로 안 가시고 여기 오셨유?"
"이잉, 최가 오늘 환영회 회식 있어서 늦게 온다고 해서 너희들과 저녁 먹으려고 왔다."
" 에구. 마땅히 대접할 것도 없는 디 어쩌쥬?"
"뭐 내가 남이여 니들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와."
"야. 알겄유."
기만이와 삼춘이 씻는 사이 나는 밥을 준비했고 모처럼 집밥을 다 함께 먹었다. 삼춘은 제법 진지하게 니의 결혼 문제를 언급하며 , 아버지와 할머니의 반대를 어찌 설득할지를 고민해 보라고 하였다. 새엄마야 내가 누구와 결혼을 하든 관심이 없을 테니 별 걱정은 없었으나 할머니와 아버지는 엄청난 반대를 할 것이 틀림없기에 삼촌도 그 방도를 고민하는 것일 거다. 삼춘은 내일 오전 중으로 시골집에 일의 상황을 알리는 전화를 하고 결혼 승낙을 받으러 함께 가주겠다 말하고 늦은 밤이 돼서야 삼춘의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누나, 나는 누나가 좋다고 하니께 반대는 안 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 매형 되는 건 싫구먼. 누나가 뭐가 부족해서 상이군인이랑 결혼하는 겨?"
막내 기창이나 볼멘소리로 나의 결정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런 기창이를 설득이라도 하려는지 기만이가 나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기챙아. 니 내가 안면도 절에서 중이 되었다가 왜 환속하고 다시 집에 온 줄 아는 겨?"
" 형 맘에 뭔가 변심하게 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녀?"
"그려, 그 변심하게 된 이유가 뭔지 시방 아느냐 말여?"
"내는 모르지, 그랴 뭔디. 그려?"
"다 그 형님 덕분이여. 형님이 전쟁통에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되었어도 정신만은 아주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는 걸 그 때 알았거든. 그런 몸이 되고 서두 반듯하게 사는 거 포기 안 하고 자기가 애끼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거 보면서 누나를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야."
"그래. 뭔 회생을 했단 말이여?"
"글쎄. 그 형님의 큰 형수가 과부 되고 전쟁통에 큰일 당하고 조카들은 머슴 가고 형수는 친정으로 쫓겨난 상황을 알고 나서 제 몫의 땅 팔아서 한 집에 살게 해 줬단 말이지. 너 같으면 그런 결정을 그리 쉽게 할 수 있겄어?"
" 그런 일이 있었구먼. "
" 그리고 누나를 대하는 걸 보면 니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은 겨?"
기만이의 이야기를 들은 기창이는 수긍하는 뜻을 보였지만 여전히 그를 역성들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런 기창이의 맘을 이해하는 나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튿날 나는 점심시간에 삼춘을 만난 기만이로부터 삼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엄청난 노여움으로 전화를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저녁나절에 그가 돌아오는 일요일에 덕수궁 데이트를 하자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잔뜩 들뜬 목소리였다. 삼춘과 기만이 기창이가 모두 보는 자리에서 그에게 청혼을 받고 승낙을 하였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를 넘어설까 고민하는 사이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오늘 그에게 아버지께서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신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대문을 열고 나가니 집 앞에는 말끔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맥고모자를 눌러쓰고 한껏 멋을 부린 그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웃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함께 가는 길은 행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