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혼인 승낙을 받은 나는 그 길로 고향집으로 향했다. 신문사 교정직 취직 소식과 혼인할 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먼저 보낸 터라 막내 형님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젠 혼인 승낙을 받았으니 형님과 함께 사주단자를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고향집에 도착해 나는 우선 큰 형수와 아이들이 사는 서당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형수님, 저 왔어유. 안 계셔유? 태환아, 인환아?"
가족들을 부르는 내 소리를 듣고 막내 덕순이가 먼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삼춘, 오셨유."
덕순이는 기쁜 목소리로 나를 반기며 내 품에 덥석 안겼다.
"우리 덕순이 잘 있은 겨? 엄니랑 오빠들은 어디 간겨?"
"큰 오빠랑 작은 오빠는 작은아버지가 불러서 밭에 보리 심으러 갔고유 엄니는 빨래하러 가셨는디유."
"그랴 알겄어. 삼춘 작은아버지 집에 다녀올 건데 같이 갈겨?"
"아니유. 그 집 가면 자꾸 지 놀려서 가기 싫어유. 그냥 집에 있을 거구먼유."
사촌이어도 피를 나눈 형제인디 놀리고 그러나 싶어 나는 기분이 언짢았다. 이게 다 부모가 하는 언행을 보고 배운 거 같아 더 역정이 났다. 막내형님께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막내형님 댁으로 건너갔다. 형님은 그간 농사일이 잘 되었는지 헛간과 마당에는 농기계들이 더 늘었고 황소도 들요 눈을 껌뻑이며 낯선 사람이라도 본 듯 나를 천천히 응시했다.
"음머."
소 울음소리에 막내형수가 부엌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 되련님 오셨유? 형님은 지금 밭에 가셔서 없는디 어서 사랑으로 들어가 계셔유."
"네 형수님. 그간 잘 지내셨지유."
"야, 지야 그렇지유. 애들 잘 커주고 농사일도 잘 되어서 먹고사는 건 걱정 없으니께유. 신문사 취직 하셨다면서유. 우째 그 힘든 일을 다 해내셨어유. 우리 같이 핵교 문턱도 못 가본 삶은 꿈도 못 꾸는 것인디 말여유."
"아, 네 다 운이 좋아서 그렇쥬. 큰 형님 아는 분 덕분에 들어갔으니 이것도 다 큰 형님 덕분이 지유."
막내형수는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내 이마의 붕대를 한 번 힐끗 바라보았다. 사랑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자니 보리 심으러 밭에 갔던 형님과 태환이, 인환이도 함께 오는 소리가 들렸다.
"삼춘."
둘째 인환이가 나를 보고 반긴다.
"언제 온겨? 저녁은 먹었구?"
막내 형님은 이미 편지를 통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고향집을 찾은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직 안 먹었유."
"그랴? 그럼 어여 들어 가자. 태환이 오늘은 엄니랑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고. "
"네."
막내형님의 뜻밖의 말에 다소 놀란 듯한 태환이가
짧게 대답했다. 나와 막내 형님이 사랑방에 들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태환이가 큰형수와 덕순이를 막내형님 집으로 불렀다. 전쟁 나기 전 이후로 처음으로 모든 식구가 모여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형님은 나의 혼인 소식을 전했다.
"형수님, 막내가 신문사 취직도 허고 혼인도 허게 되어 이리 한 자리에 모이라 했유."
"참말이어유? 아이고 너무나 잘 되었구먼유. 혼인할 처자는 어느 동네 사람인감유?"
"막내 어릴 적 친구 윤의 생질녀라고 해유."
"아, 그 광성리 마름집 처자 말씀허시는 거쥬?"
"네."
"되련님 축하해유. 되련님 성혼 소식이 지한텐 새해 선물이 되었구먼유."
"고맙구먼유 형수님."
막내 형수를 비롯해 태환이, 인환이, 순환이 등 조카들도 모두 내 성혼 소식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러면서 불구가 되었어도 아무 하자 없는 처자와 성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성혼 소식을 양가 사람들 앞에서 알리고 난 후 일은 일사천리 진행이 되어 설날이 되기 열흘 전 그녀와 나는 서울의 신문사 강연장에서 서양식 양복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취뤘다. 장인어른과 막내 형님은 고향집에서 일가친척을 모두 모시고 한복을 입고 전통 혼례를 치르기를 원하셨지만 그녀와 나는 가족과 가까운 일가만 참석하는 작지만 신식으로 결혼식을 치른 것이다. 결혼식을 치른 그녀와 나는 윤의 차를 타고 남산을 드라이브하고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기차를 타러 갔다. 이 날의 결혼식은 가슴 벅차고 떨리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와 부부가 되는 이날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