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토피와 함께한 지가 어언 10년이 넘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법칙이다. 하루에 3시간씩 약 10년을 투자할 경우 1만 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아토피 환자인 그는 하루 종일 가려움을 달고 살았으니, 아무리 적게 잡더라도 3시간씩은 긁었을 터다. 그렇다. 그는 '긁기의 달인' 이다.
그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자신의 신체에 대고 직접 임상 실험을 했다.
- 어떻게 긁으면 상처가 나나
- 어떻게 긁으면 시원한가
- 어떻게 긁으면 시원하지도 않은데 상처만 나나
- 어떻게 긁으면 시원하면서도 상처가 덜 날까
그의 경우, 항시 피부 상태가 박살인데다 너무 많이 긁어댔다. 즉, 시원하면서도 상처가 덜 나는 쪽으로는 방법이 개발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많이 긁을수록 더 시원했기에. 그리고 많이 긁을수록 필연적으로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컸기에. 그의 임상실험 결과, 시원함과 상처는 결국 정비례 관계였다.
손톱을 대는 것을 100% 막을 수는 없다. 또한, 상처가 나는 것도 100%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긁는 순간 만큼은 가능한 한 시원하게 긁는 것이다. 긁는 행위의 중지 여부는 횟수와는 상관이 없다. 결국 어느 정도 시원함을 느껴야 긁는 행위를 멈출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시원함을 느껴버리는 게 피부 보호 차원에서도 좋은 것이 아닐까. 피부에 치명적인 손톱 자국을 남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시원하게 긁어버리리라.
나름 전략적인 듯한 계획을 세웠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가려움은 그의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긁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가려움이 찾아올 텐데. 시원하다고 긁는 행위를 멈춘다? 아토피 환자의 피부는 진물로 뒤덮이고 피가 흐르고 피딱지가 앉은 상태에서도 가렵다. 그의 전략과 피부는 아토피에 완벽하게 패배했다. 발달한 것은 그의 손톱과 긁는 방법 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그는, 아토피를 앓으면서 여러 상상을 한다. 시원하게 득득 긁을 방법이 없을까.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등 부분.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면, 어머니는 피부가 상한다며 등을 제대로 긁어주지 않는다. 그는 그럴 때마다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자신의 등을 긁을 수 있다면. 그가 발명한 손톱과 긁기법으로 미친 듯이 시원하게 긁어버릴 수 있을 텐데. 등의 연결 부위를 로봇처럼 분리해서, 신경 다발이 유지된 상태로 빼내어 그의 정면으로 끌어올 수는 없을까. 내부가 다 열려서 보기에 좋은 모양은 아니겠지만. 얼른 긁고 다시 결합하면 될 터다.
위와 같은 그의 망상은, 영화나 텍스트에서도 소재를 가져오곤 했다. 공포 영화 '가발'에서, 머리에 피가 나도록 손톱으로 긁어대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이 장면을 보면서도, 섬뜩하다기보다는 시원할 것 같다는 감상이 앞섰다. 실제로 연기를 하는 배우도 시원하다는 듯한 웃음을 띄었다.
성경에서 '욥'의 이야기를 봤을 때다. '욥'은 피부병이 도져, 깨진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 피가 철철 흘렀다고 한다. 그는 이 내용을 읽으며, 욥의 도구 사용 능력에 감탄한다. 깨진 기왓장이라. 절단부가 날카로워서 등에 대고 문대면 아주 시원하겠다.
아니, 아예 부두인형을 사용하면 어떨까. 영화를 보다보면, 인형에 저주를 걸고 못을 박을 경우 그 대상자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나타나기도 하지 않던가. 이 부두교의 저주법을 접목해서, 그의 신경을 어떠한 인형에 모조리 이식해버리면 어떨까.
가려울 때는, 그 인형을 긁으면 그가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영화처럼 실제 피해가 옮겨오면 안되니, 피해는 인형에만 한정되게끔 저주를 조절해야겠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인형을 아주 신나게 긁어버리리라. 인형의 피부를 아예 갉아버려, 갈아버려.
솜으로 만든 곰 인형 같은 거라면, 천이 다 헤지고 튿어져서 안의 솜뭉치가 다 밖으로 삐져나오겠지. 상관 없다. 내 몸도 아니고. 시원하기만 하다면. 솜뭉치 삐져나온 위로 계속해서 득득 긁어주마. 솜만 남아도 계속해서. 책임 없는 쾌락.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즐거울까.
달인의 손톱과 긁기를 이겨낼 피부만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긁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