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가 시작된 초등학교 시절 이후, 그는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아토피는 죽을병은 아니나,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병이다. 수십만 번의 손톱 세례로 피부는 이미 박살이 나있는데, 그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가렵기 때문에 상당한 짜증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운동은, 위의 증상을 더욱 촉진하기 일쑤다. 그의 경우, 가장 큰 적은 '건조함'과 '열' 이었다. 운동을 하게 되면 가장 골칫거리인 두 녀석이 즉각 원투로 찾아온다.
- 운동(몸을 많이 움직임)을 한다
- 몸에서 열이 나며, 땀이 나기 시작한다
- 몸에서 열이 나면 가렵다
- 땀이 난 상태로 긁는다
- 땀이 마른다
- 건조해지면서, 땀났을 때 긁은 상처가 자극된다
- 건조하고 따가움으로 인하여, 그가 짜증을 내며 몸에 열이 받기 시작한다
- 참으려 노력하나, 너무 가려운 곳에는 손톱을 댄다
- 손톱을 대니 너무 시원하다. 이제 온몸이 다 가렵다
- 긁는다. 온몸에 열이 뻗친다
- ...
그가 운동을 할 때마다, 아니 땀을 흘릴 때마다 위와 같은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땀이 나는 시점부터 가려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할 수도, 끝마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랬던 그에게,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운동이 생긴다. 그가 입학한 고등학교에는, 식당 건물 옆에 '공놀이장'이 있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특히나 남자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하늘을 찌른다. 점심을 먹고 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공놀이장'에 모인다. 그도 인파에 휩쓸려, 공놀이를 구경하러 간다. 이때 보았던 한 학생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 우와!
- 우와아!!
- 쟤 좀 봐! 1학년인데도 2학년이랑 실력이 비슷해!
- 와!! 2학년 선배가 먼저 말 걸잖아!
공놀이를 하는 인원들 중,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다부진 체격, 운동을 많이 한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 공을 다루는 것만 보아도 일반인과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아이에게 공이 가기만 하면, 공이 골대 네트를 가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공을 잡을 때마다, 군중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이 아이의 주특기는 '점프슛' 이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남이 하는 것을 보기보다 직접 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운동에 있어서는, 직접 할 수도 없었고 보는 것은 즐기지 않아 보지도 못했다. 그랬던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동경할 만한 이와 운동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발로 하는 공놀이는 자주 하나, 손으로 하는 이 '공놀이'는 순위가 밀리는 편이다. 그도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실제로 이 '공놀이'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운명의 장난이랄지, 군중과 그를 사로잡았던 공놀이 솜씨의 주인공은 그와 같은 반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공놀이를 시작하게 된다.
동경과 부러움으로 인한 것인가. 신기하게도, 공놀이를 할 때 그는 가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운동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려워서 벅벅 긁기 일쑤였는데, 공놀이는 그렇지 않다. 공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인가. 유치원생 이후 처음으로, 그는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공놀이가 끝난 뒤에는 똑같이 후폭풍이 찾아왔다. 땀이 마르고, 피부가 갈라지고, 가려움이 도진다. 그래도 괜찮다. 그도 운동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몸이 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공놀이를 하는 순간만큼은 가려움이 느끼지지 않는다!
그동안 못했던 운동 시간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놀이를 즐긴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남들보다 잘하고 싶고, 숨어있던 재능이 발현되어 프로선수도 해보고 싶고. 물론 그럴 리는 만무하다. 그의 점프력은 덩크슛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덩크슛이 간절하다.
10대 중 70% 가까운 시간 동안 운동과 담 쌓고 살았다. 그랬던 그가, 뒤늦게나마 운동에 눈을 뜨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돌이켜보자면, 그의 아토피를 치료할 수 있었던 약은, '가려움을 잊을 정도로 간절하게 몰입할 만한 무언가' 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