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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카르마2

78 - 계약 현황 난리

계약서 어디갔어?

by 하얀 얼굴 학생

삘릴릴릴릴릴릴리

조용한가 싶었던 사업지원팀에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문제의 발단은 '매출계약 현황 보고 및 매출계약서 취합' 업무였다. 그는 U 과장으로부터 업무를 인계 받아, 매월 1회 해당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1달간의 매출계약 현황을 PPT로 정리하여 보고하고, 그 PPT 장표 리스트에 적힌 매출계약서들을 모두 모아놓는 업무다.


같은 IT라도, 상품마다 매출계약서 품의 절차가 다르다. 어떤 계약서는 계약 후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날아와서 쌓이고, 어떤 계약서는 담당 영업과 기술팀이 개입하여 직접 관리팀에 결재를 요청한다. 두 가지 모두 다 문제다. 그에게 날아드는 계약서들의 경우 증빙이 제대로 첨부되어있지 않아 그가 재요청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영업팀과 기술팀에서 결재 올리는 계약서들은 반대로 증빙이 너무 많고 결재 기준이 빡빡하며 온갖 관리팀을 돌아다녀 위치 파악조차 힘들다.


신입사원인 그는 아직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월말이 되면, 해당월에 계약한 모든 매출계약서들을 그의 자리에 집합시키고자 고군분투한다. 그가 이 업무를 진행한 이래, 요청한 매출계약서들이 100% 취합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출계약 현황 보고를 받는 관리팀에서도, 이러한 내막을 조금은 아는 듯 싶다. 매월말, 위층 관리팀 직원이 그의 자리로 내려와 매출계약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리스트에는 계약이 40개인데 지금 이 자리의 매출계약서 실물은 왜 29개밖에 없는가. 사업부를 대표하여 그가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관리팀 직원 : 얼굴 씨 안녕하세요.

그 : 네 안녕하세요!

관리팀 직원 : 매출계약서 확인하려 왔어요.

그 : (계약서 뭉태기를 내놓으며) 아 네! 여기 지금 취합해 둔 계약서들입니다!


관리팀 직원 : 네 한번 보겠습니다.

그 : (...) 네!


관리팀 직원은 그가 미리 제출한 '계약 현황 보고 장표'와, 시스템에서 출력한 '도장 승인 내역'을 갖고 있다. 이 두 리스트를 참고하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 매월말까지, 당월에 계약한 매출계약서 실물이 제대로 취합되어 있는지

- 매출계약서의 실제 내용과, 보고 장표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 매출계약서의 실제 내용과, 인감 신청 시 작성한 내용이 일치하는지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리팀 직원의 입에서 OK 싸인이 나기를 기다린다. 앞에서 말했듯, 그가 매출계약서를 100% 취합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면 관리팀 직원은, 일단은 알겠다며 미비된 계약서들은 나중에 따로 사진을 찍든 해서 전달해달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무탈하게 진행해 왔었는데, 이번 달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관리팀 직원 : 보고 장표에는 계약이 30건이 넘는데, 계약서들은 25개 밖에 없나요?

그 : 아 네, 지금 담당 영업분들한테 요청드려 놨습니다. 월말에 도장 찍은 계약서들은, 아직 고객사에 가있는 경우가 있고요. 여기 2건은 지금 위층 관리팀 결재받고 있다고 합니다.

관리팀 직원 : 언제쯤 다 취합할 수 있죠?

그 : 고객사에서 도장을 언제 찍어주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최대한 빨리 해서 퀵으로라도 받을 수 있게끔 하겠다고 하십니다.

관리팀 직원 : 저번 보고에서, 매출 계약 현황 제대로 관리하라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지금 실물 확인 안 되는 매출계약서들은 저희 관리팀 장표에 '미비되었다' 고 보고 예정이에요.

그 : 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관리팀 직원 : 그렇게 안되게끔, 최대한 계약서 챙겨주세요.

그 : (그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 네...


그는 상황의 심각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관리팀 직원이 돌아가고, U 과장에게 말한다.


그 : 과장님, 저희 한 달에 한번 매출계약 보고하는 거, 이번에 취합 안된 매출계약서들 관리팀에서 직접 보고한다고 합니다.

U 과장 : 담당 영업들한테 문의해서 빨리 달라고 해

그 : 네 알겠습니다.



그는 미비된 매출계약 담당 영업들에게 다시 연락을 한다.

그 : 아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요, 혹시 수령하셨나요?

담당 영업 1 : 아 그거 오늘 이제 고객사 내부에서 도장 품의한다고 합니다. 아마 빠르면 내일 찍을 것 같은데...

그 : 그러면, 저희 회사에는 혹시 언제쯤 도착할까요?

담당 영업 1 :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다음주쯤 오지 않을까요?

그 : 혹시 퀵으로라도, 빠르게 수령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혹시... ...

담당 영업 2 : 그거 해외로 나가야 되는 거라, 아직 고객사에 도착 안 했어요. 지금 조회해보니까, 쿠알라룸푸르에 있다고 하는데요?

그 : 아 관리팀에서 매출계약서를 빨리 취합해달라고 해서요. 제일 빠르게 해주시면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담당 영업 2 : 이게 고객사랑 저희가 시차가 또 다르기도 하고. 고객사가 외국 회사라 이런 도장 찍는 거 자체를 생소해하더라고요. 고객사에 다시 한번 얘기해 놓을게요.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 ...

담당 영업 3 : 아 네, 그게 월말에 찍은 계약서라 아직 고객사에 송부를 못했어요. 오늘 이제 송부하려고 합니다. ...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 ...

담당 영업 4 : 어 계약서 저는 이미 기술팀에 전달했는데? 기술팀 물어봐주세요.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 ...

담당 기술 : 그 계약서 위층 관리팀 결재 타고 있어요.

그 : 혹시 어느 관리팀에 있나요?

담당 기술 : 구매팀 문의해보세요.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 ...

구매팀 : 아직 저희는 못 받은 계약서에요.

그 : 담당 기술이 올렸다고 하는데,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구매팀 : 글쎄요. 저희 오기 전에 안전팀 들르려나?

그 : 안녕하세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지난번 요청드렸던 매출계약서 요청드립니다. ... ...

안전팀 : 아 계약서 지금 팀장님께서 보고 계세요.

그 : 혹시 결재가 언제 날까요?

안전팀 : 팀장님 외부 일정 있으셔서, 빨라도 내일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


말 그대로, 난리도 아닌 상황이다.(그가 매출계약서 취합할 때마다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다라기보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 사안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실무진에서 계약은 진행되었고, 뒷단에서 이뤄지는 매출계약 '보고'와 '계약서 취합'은 실제 계약과는 전혀 무관한 업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매출계약서 취합이 늦어져도 관리팀에서는 별말 없이 지나가곤 했다. 이번에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냥 관리를 더 열심히 하라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마침내 일이 터진다.
삘릴릴릴릴릴릴리

S 팀장 : 네 S 입니다.

전화기 속 목소리 : @#!@#%$#$^!@#^

S 팀장 : 네. 네.

전화기 속 목소리 : #@$#!@@##$!#$^

S 팀장 : 네?

전화기 속 목소리 : @#$!@#%!@##^@#!@^#@

S 팀장 : 알겠습니다.


S 팀장 : 야, 매출계약서 미비로 보고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그 : ???

S 팀장 : 지금 매출계약 현황 이거 업무 담당 누구야?

그 : (쭈뼛쭈뼛) 팀장님,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S 팀장 : 너가? U 너가 같이 하고 있는 거야?

U 과장 : 네

S 팀장 : 야 이게 무슨 소리야. 매출계약서가 왜 미비야?

U 과장 : 월말에 도장 찍은 계약서랑, 해외 법인이랑 맺은 계약은 지금 계약서가 아직 도착을 안 했습니다.

S 팀장 : 야 이거 관리팀 장표에 '계약서 미비'로 떡 하고 적어놓는다는데. 그러면 이거 윗분들 다 보게 된단 말야. 계약서 지금 어딨어?

그 : 아 그게... 지금 고객사에 도착해있거나 해외 배송 중입니다. 그리고 위층 관리팀 결재 타고 있는 계약서도 있습니다.

S 팀장 : 야 그게 말이 돼? 월말까지 매출계약서 전부 다 취합되게끔 해야지. 지금 당장 연락해서 매출계약서 오늘까지 다 제출하라고 해.

그 : (그게 되나?)

U 과장 : 네, 다시 한번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관리팀이랑도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S 팀장 : 그래. 얼굴이가 지금 이 업무 맡고 있다고?

그 : 네!

S 팀장 : 이 매출계약서 업무 이거 중요한 거야. 매출이랑 직결되는 거니까. 도장 찍고, 월 말일까지는 매출계약서가 전부 너한테 와있어야 해. 물론, 막 29일 30일 날 찍으면은 취합되기가 힘들겠지. 그러면 그럴 때는, 너가 사원이지만 나한테 직접 얘기를 해. 이거 지금 도장 찍으면 월말까지 못 오니까,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달 1일 날 찍자고. 직급을 떠나 업무 관련해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만약에 누가 안된다고 하면, 나한테 바로 얘기해. 이거는 오너 할아버지가 도장 찍으라고 해도, 너가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 : (...?) 알겠습니다.


매출계약서 관리 및 취합 업무를 위해, 매월말에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말고 다음달 초까지 미룬다라. 신입사원이 그가 생각하기에도,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싶다. 매출계약과 매출계약 관리. 무엇이 더 중요한 우선순위인가. 그의 생각은 타당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관리 및 취합을 위해 월말에 찍을 매출계약서 도장을 다음달 초로 미루는 경우를 그는 보지 못했다. 그렇게 월말에 도장을 찍은 매출계약서들은 당연하게도 말일까지 도착할 수 없었으며, 이를 소명하고 송구스러움을 표하는 것은 항상 사업지원팀의 하얀 얼굴 사원이었다.


아무튼 그와 U 과장은 매출계약서를 찾아 또다시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물론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다. 전화했을 시 답변도, 그가 이전에 연락했을 때의 답변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관리팀은 '계약서 미비'로 보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업지원팀은 미봉책을 제시한다.



U 과장 : 월말에 찍은 계약서들은 일단 퀵으로 최대한 빨리 받기로 했습니다.

S 팀장 : 언제 도착한대?

U 과장 : 이틀 내로 도착한다고 합니다. 해외 법인으로 간 계약서가 문제입니다.

S 팀장 : 그건 안된대?

U 과장 : 네 이제 막 고객사에서 수령했는데, 당장 찍고 보낸다 해도 5일은 걸린다고 합니다

S 팀장 : 일단은... 우리 쪽 도장은 찍혀있고. 걔네만 찍으면 되는 거잖아? 걔네 도장 찍으면 그거 스캔본이라도 파일로 달라고 해.

U 과장 : 알겠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매출계약서 실물은 100% 취합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위층 관리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이 달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매출계약서 '미비'로 윗분들에게 보고하겠다던 서슬 퍼런 관리팀은, 그와 U 과장이 취합하여 보낸 매출계약서 '사진'과 '스캔본 파일'을 받아들이고는 너그러이 보고를 철회한다.


이후 매출계약서 취합, 매출계약서 내부 품의 업무 등의 관리 업무는 더욱 더 고도화되기 시작한다. 훗날 돌이켜보면, 이 날의 사태는, 매출계약 관련 재래식/아날로그 관리의 역사적인 출발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회사에서 말하는 '관리'의 실체를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다.


얼마 뒤 이 관리 업무는, 매출계약의 범주를 뛰어넘고 확장되어 '도장 관리' 부문 업무로 진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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