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에서 다시 남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면, Byron bay(바이런 베이)가 나온다. 바이런 베이는 호주 대륙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해변이다. 날씨가 화창하고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어, 서핑하는 이들이 특히 즐겨 찾는 관광지다. 골드코스트는 높은 빌딩이 몇몇 보였지만, 바이런 베이는 빌딩은커녕 높은 건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이런 베이의 명성은 워낙 대단해서, 그는 바이런 베이에서 며칠 머물 예정이다. 오랜만에 백패커스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간다. 그가 보기에, 바이런 베이에는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유럽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20대 초반 워홀러들이 많다.
같은 워홀러라도 인종과 국가에 따라 일정한 모습과 패턴이 있다. 그를 비롯한 한국인 워홀러들은, 적당한 크기의 백팩에 더해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유럽인들은 조금 다르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이들이 없진 않으나, 유럽인 워홀러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거대한 백팩이다. TV 다큐멘터리 / 스포츠 용품 광고 / 히말라야 등반에서나 볼 법한, 어린아이 키보다 큰 백팩을 메고 다닌다. 그는 이 배낭이 마음에 들어서, 스포츠 용품점에 찾아간 적이 있다. 캐리어가 없으면 양손이 자유로워질 수 있고, 배낭 모양도 괜찮다. 그러나 가격이 사악하다. 기본 몇 백 불에서 시작하며, 1000불을 훌쩍 넘는 것들도 많다. 그의 바퀴 빠진 캐리어는 은퇴하지 못한다.
바이런 베이에 있는 유럽인들은 배낭을 숙소에 놔두고, 서핑 보드를 빌리거나 사서 서핑을 한다. 그는 서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서핑 보드를 이곳에서 처음 본다. 서핑 보드는 생각보다 거대하다. 홀쭉하긴 하지만 길이는 사람 키 정도여서, 모래사장에 눕혀놓았을 때와 박아서 세워놓았을 때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치 원시 부족민들의 전투에서 쓰는 단단한 방패 같다. 그가 예약한 백패커스는 해변에서 가까운 곳인데, 그가 밖으로 나갈 때마다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모여 있다. 파도가 올 때마다 그 파도를 타려고 안간힘 쓰며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는 자신도 한 번 시도해볼까 생각했지만,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관둔다.
그는 바이런 베이 백패커스에서 약간 겉돈다. 돈을 벌려고 너무 치열하게 생활한 직후여서 그런지, 그는 노는 방법을 까먹은 듯하다. 또한, 바이런 베이 자체의 분위기도 한몫한다. 바이런 베이는 정말 순수 관광지에 가깝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이들은 관광과 서핑이 주목적이다. 관광과 서핑, 이는 그가 그리 가치를 두지 않는 것들이다. 백패커스 내의 사람들은 매일 술을 마시고,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일어나서는 서핑을 한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질릴 때가 되면 그레이하운드(일종의 시외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현지인들처럼 일하고 생활하는 '진정한 여행'을 추구하는 그는, 관광과 휴양에 특화된 바이런 베이의 분위기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다.
그런 그도 바이런 베이의 자연경관에는 넋이 나간다. 호주 대륙 가장 동쪽에 위치해서인지, 해변에 서서 바라보면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높은 건물이 없고 빛 공해가 적어서, 밤하늘의 별도 잘 보인다. 그는 일부러 해가 진 뒤에 해변가로 나간다. 바이런 베이의 밤하늘은 브리즈번의 밤하늘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가끔씩 바람이 강하게 불고, 밤하늘은 더 넓고 반짝거린다. 한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보면서, 브리즈번을 떠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그다.
밤하늘을 즐기고 있던 그의 뒤편에서, 무언가 오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늦은 밤이라 해변에는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터다. 제자리에 서서, 모래사장 이곳저곳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신이 느꼈던 오묘한 기운의 출처를 파악한다.
모래사장 구석 수풀이 약간 우거진 곳에서, 한 쌍의 남녀가 번식 행위를 하고 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겠지만, 그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봐버리고 말았다! 그는 부러움, 질투, 분노, 외로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낀다. 헛웃음이 나온다. 더 이상 밤하늘과 교감할 기분이 아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