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 중심을 돌고 나오니 어느새 늦은 오후다. 멜버른까지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캔버라에서 멜버른까지는 약 700km, 7시간 거리다. 야간 운전을 감행한다면 닿지 못할 거리는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그는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 백패커스는 많이 겪어보았고, 이미 멜버른에도 백패커스를 예약해두었다. 백패커스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날인 오늘, 그는 새로운 숙소를 찾는다. 그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바로 'Couch Surfing'이다.
'Couch Surfing', 직역하면 '긴 의자 파도타기 / 소파 서핑' 정도로 해석된다. 카우치서핑은 어플의 이름이다. 여행객들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숙소가 필요한 여행객과 숙소를 제공하는 이들을 매칭시키는 플랫폼이다. 에어비앤비와 비슷한데, 차이점은 숙박료가 없다는 점이다. 선의에 기반해서, 숙박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와 문화 교류 등이 이루어진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지도가 있으며, 한국의 여행작가 중에서도 자세한 후기를 남긴 사람이 있다. 카우치서핑의 만족스러운 후기들을 보면, 하나같이 미소를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미담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있다.
낯선 도시에서, 돈이 없어서 카우치서핑으로 요청을 보냈는데 매칭이 되었다. 가보니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로컬 집안이다. 집주인이 로컬 가정식을 해주어서 맛있게 먹고, 여행자도 자국 요리로 보답한다.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집주인이 직접 차를 몰며 도시를 관광시켜주겠다고 한다. 집주인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다. SNS 주소를 교환하며, 정든 작별 인사를 나눈다.
미담을 충분히 살펴보았으니, 반대 사례도 보아야 한다. 반대 사례로는, 자고 있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접근했다는 이야기가 주다. 남자 여행객을 초대하여, 자고 있을 때 이불로 들어온다는 등의 후기다.
반대 사례는 극소수이고, 미담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는 미담을 마주하길 기대하며, 카우치서핑 앱으로 캔버라 내의 주민들에게 요청을 보낸다. 요청을 보낸 시각은 오전 9시, 그는 곧 연락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저녁 시간인 6시가 지난다. 더 지체하다간, 멜버른 도착 날짜가 지연될 지도 모른다. 그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만, 핸드폰은 요지부동이다. 아쉬움과 함께,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캔버라를 빠져나와 멜버른으로 향하는 도로를 탄다.
그가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얼마 뒤, 핸드폰이 울린다. 캔버라의 한 주민이, 그가 보낸 카우치서핑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기쁘지가 않다. 고속도로를 타고 있고, 캔버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그는 캔버라를 빠져나올 때 이미 카우치서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버렸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았을 터다. 그는 알람을 무시하고, 그대로 멜버른으로 향한다. 시간이 늦었으므로,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 정차해서 잠을 잘 예정이다. 그의 두 번째 카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