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테러를 한 지 이틀째 밤, 드디어 메인 쉐프가 전화를 받는다. 그는 벅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통화를 시작한다. 메인 쉐프는 적반하장이다.
그 : 잘 지냈나? 돈을 언제 주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
쉐프 : 분명히 전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금 나는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다.
그 : 네가 돈을 주면 나도 이렇게 전화하지 않는다. 돈을 내놔라.
쉐프 : 너는 내 가족들과의 식사를 방해하고 있다. 이 더러운 아시안 녀석,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 :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돈이나 내놔라.
쉐프 : 나는 너를 시티 중앙에서 강간할 거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를 발가벗기고 강간해버리겠다. (I will rape you in the middle of the city, infront of everyone)
그 : 게이냐? 돈을 내놔라.
쉐프 : 너를 반드시 강간하겠다. 더러운 아시안 녀석,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 (Go back to your country)
그 : 니 부인하고나 떡 쳐라. (Fuck your wife)
쉐프 : 당연히 나는 내 부인이랑 떡칠 거다. 전화하지 마라.
그는 고용주인 메인 쉐프와의 통화에서 처참하게 패배한다. 그가 호주에서 여러 일을 하면서 영어가 꽤 늘었다고는 하지만, 싸우는 영어는 제대로 터득한 적이 없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욕지거리와 저주가 떠오르지만, 이를 영어로 표출해낼 수가 없다. 영어 실력이 애매해서 그 자신은 욕을 하지 못하는데, 상대방이 하는 욕은 따박따박 잘 들린다.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심장소리가 들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름대로 욕한답시고 말한 게 부인이랑 떡 치라는 말이다. 메인 쉐프 입장에서 전혀 타격이 될 말이 아니다. 차라리 예전 육가공 공장처럼, 귀마개로 귀를 막고 Fuck you만 외치는 편이 그의 정신 건강에도 낫고, 상대방에게도 타격이 있으리라. 그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정신을 뒤흔들고 후벼 파는 욕을 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 아니다. 외국어로 싸우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이후에도 그는 전화를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쉐프가 받고, 때로는 부인이 받는다. 전화 연결이 될 때마다 의미 없는 악담이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경고한다. 고용주 부부는 한결같이 그에게, 그가 자신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위협하고 있다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고용주 부부는 딱 봐도 인도인으로,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일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들도 호주 출신이 아니면서, 그에게 '더러운 아시안' /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커뮤니티에서나 보던, 듣기 굉장히 희귀하면서도 전형적인 욕이다.
그는 군대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와 같은 나이인데 1년 먼저 군 생활을 시작한 선임이 있다. 해당 선임은 성격이 꽤 더러운 편이었는데, 유격 훈련 당시 그를 앞에 세워두고 소리 지르면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말을 했다. "꼬우면 군대 빨리 오던가" 였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가 고용주 부부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는 욕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 전형적이면서도 희귀하고, 유치하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는 고용주 부부가 그에게 퍼붓는 악담을 들으며 멘탈이 흔들린다. 특히 그를 강간하겠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난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밤만 되면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린다. 항상 최악을 염두하는 성격 때문인지, 잠자리가 편하지 않다. 미치광이 고용주가 지인들을 동원해서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떻게 하나, 도심에서 강간하겠다고 했으니 도심 쪽은 피해야겠다 등의 생각이다. 그는 인도인을 잘 모른다. 인도에는 동성애 문화가 있어서, 남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이 흔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그가 읽었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배경이 인도인데, 남성을 강간하는 장면이 있다. 고용주 부부로 인해, 인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증폭된다.
그는 이 악덕 고용주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는 신변에 유의하면서, 나름의 대비를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쓰는 망치를 항상 손에 잡히는 위치에 둔다. 공사 현장에서 버려지는 자재 중, 쇠파이프 같은 막대기를 몇 개 주워서 가지고 다닌다. 고용주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으니, 못해도 영주권 이상의 비자를 가졌을 터다. 호주 이민 사회 내에 인도인은 상당히 많고, 우버 기사 등 특정 일자리에 많이 포진한다. 만일 이 고용주가 다른 인도인들을 동원한다면, 그로서는 불리하다. 인원수가 안된다면, 무장이라도 단단히 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되지만 만일, 정말 만일 최악의 사태가 온다면, 그는 결코 혼자서 이승을 하직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 주변에서 그를 지켜줄 수 있는 동료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숙소에 사는 중국인들? 그가 항상 음식을 포장하는 푸드코트 음식점 주인? 그때, 조쉬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