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 Fair work
자신에 대한 의심
지인들에게 섣불리 알렸다가 일이 커질 수 있다. 그는 홀로 해결하고자, 최후의 수단으로 Fair work Ombudsman에 전화한다. 페어 워크 옴부즈먼은, 한국의 노동청 같은 기관이다. 이 기관에 신고하면, 밀린 임금을 대부분 받아낼 수 있다. 그는 전화로 고용주 부부를 더 자극해서 일을 크게 만드느니, 호주 정부 기관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는 고용주 부부와 전화로 싸우면서, 너무나도 명확하게 따박따박 들려오는 욕을 들으면서, 정신이 피폐해져 있다. 2주가 넘는 오랜 싸움으로 인한 피로와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는 고용주 부부가 다른 인도인들을 동원해서 그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 괜히 외진 길을 피하고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피한다.
그는 페어 워크에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한다. 담당 공무원은 그에게, 해당 상점의 이름과 위치 / 민원인의 이름과 위치를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주소를 알릴 생각이 없다. 혹시라도 그의 정보가 고용주 부부에게 유출되어,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는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망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소를 밝히지 않고 신고할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전화 속 공무원은, 아쉽지만 민원인의 주소를 밝히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는다. 일단 그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구두와 문자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카페에 출퇴근할 때 펀치 머신을 사용하긴 했지만, 근무시간표를 악독한 고용주 부부가 그대로 놔두었을지 의문이다. 그는 페어 워크가 개입하더라도 이 사건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고, 지나친 불안감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가 싸우고자 마음먹고 강하게 나갔다면, 페어 워크에 당당하게 신고했다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겁에 질려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페어 워크는 한국의 노동청처럼 강제력이 강한 정부 부처다. 카페를 운영하는 고용주 부부에게, 페어 워크로부터의 전화나 제재는 그야말로 극약 처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당시의 그는 겁에 질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에 급급하다. 끝나지 않고 질질 끄는 싸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지거리에 점점 질린다. 뭐 대단한 금액을 받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의심이 피어오른다. 이 점이 가장 한심하고, 슬프면서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의심을 품어선 안된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의심을 품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이전에, 뉴스나 지인들에게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 갑갑해하곤 했다. 피해자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화를 내긴커녕 소극적이다.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측이 적반하장이며 당당하다.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인데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원하고 하소연하는 꼴이다. 종국에는 피해자들이 질려서, 아예 돈을 포기하곤 한다. 주변의 누군가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도, 공연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오히려 돕겠다는 이를 만류한다. 이런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피해자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사기를 당할 여지를 스스로 자초하는 바보 같은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니,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야성적인 마초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속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고 새파랗게 어린 청년일 뿐이었다. 그는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요구하는 것에 조금씩 의심을 품는다.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차피 못 받을 돈이면, 괜히 문제 일으키느니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