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젓가락, 팁

by 하얀 얼굴 학생

웨이트리스와 철판 요리사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그는 웨이터 일에 적응해간다. 어느덧 돌발 상황도 나름 대처할 수 있게 되어 여유가 생기자, 그는 손님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은 분위기를 내러 오는 커플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동창회나 생일 파티 등 잔치를 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마침 테이블마다 노래방 기계가 있고, 항상 중앙에서 노래를 튼다. 손님들이 마이크를 잡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 그냥 틀어져있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와인에 얼큰하게 취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테이블을 막론하고 떼창이 시작된다. 떼창을 부르는 노래는 정해져 있다.

Fun - We are young / Village People - Y.M.C.A 등 그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노래들이다.


가족끼리, 친한 친구들끼리 고급 철판요리 레스토랑에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모습을 보며 그는 슬그머니 부러움이 고개를 든다. 그가 가족의 곁을 떠난 지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났다. 그의 유심은 국제통화가 무제한이어서, 언제든지 가족들과 통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느라, 쉬느라 전화는 뒤로 밀리기 일쑤다. 어쩌다가 전화를 해도, 그는 가족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결국 짜증을 내다가 전화를 끊는다. 그는 가족들과 통화하고 끊을 때마다 항상 후회한다. 이상하게 마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상냥하게 나오질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점점 가족들에게 전화하는 것을 자제한다. 통화는 점점 짧아지고, 카카오톡으로 연락할 때가 많다. 표현은 서툴고 조금 투박하지만, 그도 가족들이 그립다. 특히 가족 단위 손님들을 볼 때마다, 그는 한국의 가족들이 생각난다. 언젠가는, 가족들에게 이런 고급 철판요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는 손님들을 관찰하면서, 몇몇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표면적인 컨셉을 일식 철판요리로 잡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식기는 수저와 젓가락이다. 레스토랑 손님 대다수는 백인이며, 젓가락 사용이 서툰 이가 많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100%다. 한국의 어린아이들에게도 젓가락질은 힘들다. 집에서 젓가락을 계속 사용하게끔 하기 때문에 사용하지만, 한국 어린아이들도 어른처럼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하는 아이는 드물다. 아직 손가락의 힘이 부족하고, 정석적인 젓가락질은 익히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또한, 중학생이 되어 정석적인 젓가락질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이른바 'X자' 젓가락질을 사용했었다.


한국 어린아이들에게도 어려운 젓가락질은, 호주 아이들에게는 극강의 난이도다. 호주 아이들은 집에서 젓가락을 쓸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끔 호기심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호주 아이들도, 젓가락을 이용해서 음식을 집는다기보다는 꼬챙이처럼 찔러서 먹는다. 가족 단위 손님이 오면, 부모들은 항상 아이들을 위해 포크를 달라고 한다. 그를 비롯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은, 아예 아이들 숫자만큼 포크를 들고 있는다. 아이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다가 난처한 기색이 보이면, 즉시 포크를 들고 다가간다. 그러면 아이들과 부모는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 손님 중에도 젓가락질을 할 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주 가끔, 젓가락질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는 손님들이 있다. 이런 손님들은 동양의 문화, 특히 식문화에 관심이 많아 일식 등을 많이 먹으면서 젓가락질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듯하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젓가락질이 서툴다. 성인들은 손에 기본적인 힘이 있어서, 이리저리 젓가락질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초보적인 수준에 가깝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보고 놀랐으나, 점차 익숙해진다. 젓가락질이 서툰 것에 대해서 배려와 이해심이라고 해야 할지, 자신은 손님들보다 젓가락을 잘 쓴다는 은근한 우월감이라고 해야 할지, 손님들의 젓가락질을 보는 그의 감상은 복합적이다. 가끔씩 젓가락을 잘 쓰는 손님들을 보면, 그는 해당 손님들의 동양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다른 이들보다 깊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손님들을 평가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는 조금씩 손님들의 외모 / 눈빛 / 말투 / 젓가락질 / 행동 등을 보며 손님의 전반적인 성격과 느낌을 예측하기 시작한다.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이 심각하게 틀린 적이 있다.


어느 날, 한 쌍의 모녀가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그가 이 모녀를 맡아, 처음부터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서비스한다. 모녀의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회색 계열의 옷이고, 머리 색깔도 흰머리가 섞여서 회색 느낌이 난다. 옷차림과 색상 때문인지, 모녀의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모녀의 얼굴은 핏기가 없이 하얗고, 얼굴 표정도 거의 변화가 없다. 그는 이 모녀를 무미건조하게 대한다. 반복되는 웨이터 일에 나태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별 감흥 없이 할 것만 하고 뒤에 서 있는다.

그런데 뒤에 서 있는 그를 모녀가 부르기 시작한다. 젓가락이 익숙지 않아 포크를 달라느니, 전채요리를 조금 더 달라느니, 밥과 된장국을 더 달라느니 등의 주문이다. 생각보다 변경 사항이 많고, 그를 부르는 횟수가 유난히 많다. 너무 많이 불러서, 나중에는 그를 부르는 소리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그는 굳이 나서서 말을 하지 않고, 모녀가 해달라는 것만 원하는 대로 해준다. 자꾸만 그를 부르는 모녀에게 슬그머니 짜증이 났기 때문에, 자칫 잘못 입을 열었다간 실수를 할 것만 같아서 입을 닫았다.


모녀의 식사가 끝나고, 그들을 밖으로 배웅할 시간이다. 그는 드디어 끝났다며 속으로 기뻐한다. 어서 가버리라고 생각하며, 모녀를 마중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모녀가 그에게 20불짜리 지폐를 건넨다. 팁이다. 덕분에 너무 잘 먹었고,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모녀의 말에, 그는 당황한다. 속으로 모녀에게 짜증을 내고 무시했던 자신이, 이 돈을 받아도 되나 의문이 든다. 그가 표정 관리를 잘해서 모녀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팁을 받을 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모녀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호주는 팁 문화가 없다. 미국의 경우는 팁 문화가 존재하며, 오히려 팁이 부가세처럼 강제되다시피 한다. 호주는 이런 팁 문화가 없다. 그는 일을 하면서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팁을 받거나 준 적이 없다. 이 모녀가 그에게 주는 팁은, 그의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팁이다. 사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모녀가 건네는 팁을 받는다. 그는 모녀를 입구까지 배웅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이 모녀 이후로, 그는 처음 보는 손님의 느낌을 알아맞히려는 시도 자체를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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