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정면 철거, 호주 난방

by 하얀 얼굴 학생

철거는 계속된다. 부지가 넓고 집이 꽤 크기 때문에, 철거할 것들도 많다. 그와 데이빗은, 집 정면에 위치한 출입문과 현관, 벽, 유리창을 철거하기 시작한다. 문짝은 남겨놓고, 현관 지붕을 이루는 아치와 벽부터 철거를 시작한다. 아치와 건물 벽은 모두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현관은 네 개의 기둥을 아치로 연결해서, 네모난 지붕을 만들어놓은 형태다. 아치는 단단하고 견고한 형태이지만, 아치를 이루는 벽돌이 하나만 빠져나가도 무너진다. 물론 그 벽돌 하나를 빼기가 어렵다. 그와 데이빗은 해머를 들고 번갈아가면서 아치를 이루는 벽돌 하나를 집중적으로 때린다. 아치를 이루는 벽돌 하나하나가 모두 하중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담이나 벽을 이루는 벽돌을 때릴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세게 때려도, 벽돌은 꿈쩍하지 않는다. 수십 번을 때려서, 벽돌을 조금씩 깨서 깎아내는 것에 가깝다. 마침내 깨진 벽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면, 해당 벽돌이 속해 있는 아치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와 데이빗은 해머로 벽돌을 깨부수면서, 언제쯤 아치가 무너질지 유의한다.


아치가 무너지고 나면, 벽돌 기둥들을 철거하는 것은 쉽다. 현관의 기둥들은 굵지 않아서, 해머링을 몇 번만 하면 건들거리기 시작한다. 건들거리는 기둥은, 해머로 밀거나 발로 밀어서 넘어뜨린다. 아치가 지탱하던 구조여서, 현관 지붕에는 벽돌이 꽤 많다. 그와 데이빗은 아치, 기둥, 현관 지붕을 와르르 무너뜨린 뒤 한동안 Wheel barrow를 이용해 벽돌들을 치운다. 현관은 쓰레기통이 위치한 도로와 가까워서, 벽돌 청소가 비교적 빠르게 끝난다.



현관 철거를 끝낸 뒤, 집 정면의 벽과 유리창을 철거한다. 원래는 유리창을 깨끗하게 떼어놓았다가 재활용할 계획이었는데, 현관을 무너뜨릴 때 벽돌이 유리창 방향으로 무너지면서 유리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계획이 조금 어긋났지만, 데이빗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청소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커다란 유리창은, 크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갈라져서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 장감을 끼긴 했으나, 자칫 잘못 만졌다간 손이 그대로 베인다. 유리 조각에 유의하면서 벽돌들과 각종 폐기물들을 치운다. 마침내 창호도 떼어낸다.


건물 정면의 벽을 철거하면서, 그는 어렴풋이 호주 개인 주택의 재료들을 파악한다. 그가 철거하고 있는 집은 부지가 넓고 수영장도 있긴 하지만, 호화로운 주택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개인 주택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가 건물 정면의 벽을 철거하면서 든 생각은, 너무 쉽다는 것이다. 건물을 이루고 있는 벽인데, 철거가 너무나도 쉽다. 오히려 바깥의 담보다도 쉽다. 해머링을 몇 번 하지 않고, 발로 밀면 건물 벽이 그대로 넘어간다. 벽이 무너지고 나면, 남은 것은 앙상한 나무 골조뿐이다.


호주의 일반적인 개인 주택들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1. 나무로 주택의 뼈대, 골조를 만든다.

2. 해당 골조를 중심으로 벽돌을 쌓아, 벽과 기둥을 만든다.

3. 벽돌을 쌓으면서, 창문과 문이 위치할 곳을 뚫는다.

4. 벽돌을 모두 쌓아 올린 뒤, 지붕은 슬레이트나 기와 등으로 마감한다.


그가 철거를 하면서 역으로 되감아본 호주 개인 주택의 건설 순서다. 한국의 주택과 다른 점은, 철근 콘크리트의 유무와 단열재의 유무다. 한국의 건설은 철근 콘크리트로 시공한 뒤, 나무 골조를 덧대고 단열재를 분사한다. 폼 단열재가 자리를 잡으면 그 위에 석고 보드 등으로 마감하는 식이다. 철근 콘크리트가 일차적으로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단열재가 덧씌워지면서 냉난방이 잘 이루어진다. 게다가 한국은 라디에이어를 바닥에 까는 온돌, 바닥 난방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열효율이 좋고 따뜻하다.


그가 철거하는 호주의 개인 주택은, 단열재가 아주 적다. 그가 폐기물을 줍다 보면, 황토색 털조각 같은 것이 간혹 발견된다. 단열재다. 하지만 이 단열재는 상당히 드물다. 단열재 시공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미미하고 우선순위가 한참 떨어지는 듯하다. 그는 철거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사는 숙소가 왜 이리 추운지 깨닫기 시작한다.



두터운 철근 콘크리트에 단열재까지 꼼꼼히 시공하는 한국의 주택은 외부 공기가 잘 차단된다. 하지만 호주의 개인 주택은 그렇지 않다. 각목을 활용한 나무 골조, 이 나무 골조를 살짝 덮는 벽돌 구조물은 철근 콘크리트처럼 외부 공기를 촘촘히 막아주지 못한다. 기본 구조 자체가 얇은데 단열재도 별로 없다. 창문과 벽돌 틈으로 외풍이 숭숭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또 한 가지 이유로, 난방 방식의 차이도 있다. 한국은 온돌에서 착안한 바닥 난방 방식을 사용한다. 호주를 비롯한 서구권 나라들은 바닥이 아니라 공기를 데우는 난방 방식을 사용한다. 온풍기나 난로 등을 틀어서 공기를 데운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거실에 설치된 굴뚝과 연결된 모닥불은 공기 난방의 일환이다.


온돌을 활용한 바닥 난방 방식은 효율이 좋다. 바닥을 데워버리기 때문에, 쉽게 식지 않는다. 하지만 공기 난방 방식은 효율이 떨어진다. 공기를 데워놓아도, 데워놓은 공기가 날아가버리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철거하면서 본 바에 의하면, 호주의 개인 주택들은 공기를 가둬놓기에 그리 적합한 구조는 아니다. 나무 골조에 벽돌을 감싼 구조는, 공사 기간과 비용은 적지만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바깥바람이 숭숭 들어올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는 비싸고 공사 기간이 오래 걸리지만 공기를 가둬놓는 데는 용이하다.



호주에서도 비싼 단독 주택이나 고급 아파트 단지 등은 철근 콘크리트와 단열재를 이용해 시공한다. 해당 건물들은 어차피 외벽과 구조가 두텁고 단열 시공이 잘 되어 있어서, 공기 난방이던 바닥 난방이던 냉난방이 잘 된다. 하지만 목재와 벽돌로 빠르고 얇게 지은 호주의 일반 주택들은, 원체 효율이 잘 나지 않는 공기 난방 방식을 사용하는 데다가 그 데워진 공기조차도 밖으로 빠져나가기 쉽다. 그는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서구권 영화에서는, 창 밖으로 눈이 내리는 겨울날 집 안에서도 스웨터 등 옷을 두텁게 입고 담요를 덮는다. 가족들은 모두 집 안의 화로나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나 핫초코 등을 마신다. 집 안에서도 커피나 핫초코의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춥다는 뜻이다.


한국은 대형 건설사와 시공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건물을 제대로, 막힌 형태로 짓는다. 호주와 서구권은 소형 건설사, 개인 시공자들이 건물을 비교적 빠르고 열린 형태로 짓는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두텁고 제대로 지은 건물은 개인이 함부로 구조를 바꾸고 보수하기가 힘들다. 얇고 열린 형태, 가벼운 재료로 지은 건물은 살던 이가 재료를 사서 직접 개보수할 수 있다. 건물을 이루는 재료와 두께로 인해, 냉난방의 용이성과 개보수의 용이성이 결정되는 셈이다. 한국은 드물지만, 호주에서는 개인이 살면서 직접 집을 짓고 개보수하는 성향이 강하다. 조금 춥고 불편하더라도 직접 만들어가는 집, 직접 만드는 추억이나 재미는 없지만 살기 편안한 집,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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